제10회 시산맥 작품상
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 / 오늘
지중해의 검은 돛을 펄럭이는 순백의 애인들 붉은 달이 녹은 바다는 위태로워서 건널 수 없고 괴여*, 네가 돌아오지 않음으로 기다림은 완성된다 알바이신 지구의 파고가 높은 날에는 이슬람틱한 휘파람이 떠밀려왔고 그런 밤이면 돌계단이 목에 감기는 악몽을 꾸느라 하루를 잊었다 돛을 품은 채 너를 기다린 적도 있다 그루밍 되는 슬픔 속으로 뒤늦은 네가 뛰어들길 바랐기 때문이다 밤의 기척을 뒤적거리면 한 움큼의 웃음 너를 타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증오하게 하는 것은 쉽다 돌아오지 않는 증오는 타락을 완성시키는 꿈이어서 이 광기는 한때의 우리에게서 온 것 어떻게 할 거야 너는 지겹도록 묻지만 지금은 혼돈을 지킬 차례 괴ㆀㅕ**, 돌아오지 않을까 봐 무서워지는 고백 어쩌면 검은 웃음 축축한 우리라는 균형
다시, 이별을 말하는 내게 서럽게 울다가 고개 들어 너는 말한다
지금 당신의 표정과 이 시간을 본 적이 있어
이별이 처음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내 애인이 살고 있는 그라나다에도 우기가 끝나간다
* 괴여: 내가 사랑한다.
** 괴ㆀㅕ: 내가 사랑을 받는다.
-----
제10회 시산맥작품상 예심을 뚫고 올라온 9편의 작품들의 반짝임이 그와 같았고 최종심 3편(「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 「종이인간」, 「잉여의 나날」)의 광휘는 결정 장애를 일으킬 만큼 황홀하였다. 찢어질 듯 얇아져가는 실존의 아픔을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묘사한 「종이인간」과 잉여와 잉어 사이의 불화를 담담하고도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 「잉여의 나날」도 더할 나위 없었으나 마지막 낙점은 「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에 찍었다.
수상작품은 지금 여기와 그라나다 사이의 불화,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의 불화, 슬픔과 광기 사이의 불화를 소리와 색채, 외래어와 古語, 입말과 관념어 등을 넘나들며 매끄럽게 직조하여 신비로운 시편을 완성하였다. 믿음이 가는 시인이 수상할 수 있어서 기쁘다.(안차애)
두려움을 넘는 시적 갈망
최종으로 남은 3편의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면서 마지막 손길이 간 것은 오늘 시인의 「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였다. 시의 매력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오늘 시인의 작품이 주는 매력은 다음과 같았다.
좋은 시는 절실함에서 비롯된다. 그 절실함을 음악과 춤의 도시 그라나다에서 자신과 타자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우리로 설정한 것은 화자의 현실과 이상을 뛰어넘으려는 신선한 발상이다.
“괴여 네가 돌아오지 않음으로 기다림은 완성된다” “네가” 라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우리” 라는 관계에 대한 성찰이 이 작품의 치밀한 구성을 암시하며 화자는 애인을 찾는 시심에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부근의 요새와 술탄들의 여름 궁전, 대성당의 벽옥을 쓰다듬는 그리움과 상상력의 날개를 저어간다.
시인의 전언은 이러한 시적 장치를 통해 존재성을 드러내며 주관적 사유가 객관적 공감을 얻는다. 그것은 내면의 꿈꾸는 비상이 이별, 증오, 타락, 광기를 견디며 휘파람을 부는 것 같다.
자신만의 이미지와 감각으로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과정이 마치 그라나다의 오묘한 색깔의 대리석처럼 투명하게 전개된다.
여기와 거기라는 공간과 “지금 당신의 표정과 이 시간을 본 적이 있어” 라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넘나든다.
“축축한 우리라는 균형”은 나와 또 다른 나 혹은 타자와 우기를 겪으며 관계의 무게와 조화로운 거리의 중심을 잡는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말로 유도한 내재된 문장의 힘은 이 작품을 선정작으로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에게 최고의 스승은 외로움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며 최애의 애인은 흡인력과 작품성을 골고루 갖춘 매력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시인의 「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는 고독한 현대인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뛰어넘는 시적 자아의 승리이다. 축하드리며, 이 돛을 달고 더욱 깊고 맑은 시의 바다로 나아가길 빈다.(오현정)
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비는 직선으로도 사선으로도 먼 데를 건너와 십방의 대지를 적셔 줍니다. 비는 여러 가지의 비유로 발견되기도 합니다. 예의 우요일이 되어 주기도 하고, 적막 풍경의 한 자락을 대변하여 주기도 하다가, 가슴을 앓는 소녀의 창가에 소녀의 앓는 소리를 내포하다가 지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비와 빗소리는, 비가 지나간 자리의 이후에서도 한참을 남아있어 주었다가 떠나갔던 사실을 환기하여 봅니다. 저에게로 건너온 일단의 시들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각각의 비들이 토로하여 주었던 빗소리의 기억 속으로 기대어 보았습니다. 한때는 시단의 주류지대를 점유하였던 난독의 병폐들과 그 아류적인 흔적을 발견하는 일에게로 잠시 촉각을 곤두세워 보았습니다. 무릇 시에게서도 시의 기척이며 소리와 소문들이 시가 지나가고 난 적막한 순간의 뒤에서도 빗소리처럼 남아서 복무하여 주었기를 바랐던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진열대 위의 화려한 브랜드와 미용실의 간판들과 성형의 바늘자국들이 횡행하는 말초적 시의 시대에 모처럼의 귀한 작품들을 일별하는 자리에 불러내어 주어서 매우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빗소리의 강변으로나마 제 시의 미욱한 감식안의 일부분을 피력하여 보았음을 간주하려 합니다. 수상자에게 무한한 신뢰와 더불어 축하의 마음을 전하기로 합니다.(정윤천)
- 심사위원 : 오현정 정윤천 안차애 시인
오늘 시인이 제10회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이며 상금 3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