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벽을 쌓으며 외 4편
동진
석벽을 쌓으려고 돌들을 부려놓으니
모양도 제각각이요 크기도 제 나름이라
속으로 놓을 자리를 가늠하며 생각한다.
모난 돌도 쓰일 때 가 따로 있다드니
둥근 돌 놓고 나면 틈새에 제격이고
넓은 돌 앉힌 자리엔 공이 돌이 받쳐줄까
허구 헌 날 소임 없이 나다니던 한 사형이
목탁 한 벌을 사서 두드리기 시작하는데
돌 한단 목탁소리 한 단 속웃음 한단 쌓아볼까.
밤송이 벌어지는 날
선방 언덕아래 밤나무 두어 그루
위에서 내려다보니 탐스럽게 익어간다
어느 날 밤송이 하나 살며시 벌었는데
바람도 고요한데 가지가 흔들리고
언 듯 가지사이 청설모 두어 마리
후두둑 밤을 떨구고 부리나케 내 닫는다
덩달아 뛰어가 보니 벌써 물고 사라졌다
남은 한 알 주워들고 가만히 살펴보니
애벌레 한 분이 먼저 시식이 끝난 뒤다
벌레 먹고 남은 부분 먹으면서 생각하니
사람이 잘난 체해도 서열이 한 참 뒤라
집세도 문서도 없이 사는 생生들 가볍겠다.
된장 독
어릴 적 울 어머니 언제나 배불뚝이
내리내리 아시동생 배안에서 자랐었지
둥그런 배를 보듬고 발효하는 세월이여
동생이란 글자 속에 이응이 두 개인데
둥근 알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네
지금도 우리 어머니 둥근 배로 서 계신다.
묵
큰 스님 아침마다 등산길에 주워 오신
도토리 모아놓으니 자루에 가득이라
장날에 가루를 빻아 도토리묵 해 먹었네
기도 온 보살님도 맛있게 먹었는데
밥 먹고 간식으로 덤으로 먹었는데
다람쥐 한해양식을 간식으로 날렸을까.
시간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서 사용하려니
작동이 되지 않는다 고장인가 살펴보니
방전이 되고 말았다 쓰지도 않았는데.
<수상소감>
얼마 전 당도한 기쁜 소식
산사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습니다. 기상청의 기록으로 56년 만에 찾아온 혹한이라고 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추위라는 놈인데 아마도 이 혹한을 유아기에 겪었기 때문일까요.
입춘 날 아침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보며 입춘의 봄기운 때문일까요 웬일인지 상스러운 조짐이 들었던 것은 얼마 전 당도한 기쁜 소식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니고 또 돌이켜 보면 오래 망설이고 벼르던,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던 작은 꿈을 향해 한 걸음 가까이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설레임 때문입니다.
많이도 늦었지만 늦은 만큼 더 설레고 기쁩니다. 길고도 지리 했던 산사에 봄이 고대 올 것만 같습니다.
항상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기 위해 수행하고, 공부의 한 방편으로서 時 作에 임하겠습니다.
부족한 졸작을 추천해주신 불교 문예에 감사드리며 어려운 時의 길 동행이 되어 준다는 약속으로 여기고 아이처럼 마냥 기쁘게 時를 향해 줄레줄레 좇아갑니다.
동진/ 2013년 《불교문예》 등단. 현재 통도사 서운암 감원.
첫댓글 석벽 쌓는 힘든 작업에 돌 한단 , 목탁소리 한단 , 속웃음 한단..
세상만사 여유롭게 생각하면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상 잘했습니다 회장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