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대상
할머니의 등긁기/ 신솔원
할머니는 날마다 날이 다 단 낡은 호미 하나 들고 땅의 등을 긁어주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땅들은 더욱 가려운 모양인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어서 어서 등을 긁어 달라고 성화를 한다고 해요 그러면 할머니는 새벽부터 공터로 나가 손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 시원하게 땅의 등을 긁어준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거에요 할머니가 공터로 나가신 건
가족들 모두 멀리 떠나고 혼자 남은 할머니는 등이 더욱 가려우셨데요 등이 가려워 누구라도 손가락에 힘을 넣어 한번만 긁어주면 시원하겠다 하셨데요 효자손이 있었지만 할머니의 가려움을 풀어주기에는 너무 좁고 옹색해서요 엄마, 삼촌, 이모 업어 키우며 어느 날은 뜨거운 오줌도 받고 또 어떤 날은 배고프다 칭얼대는 눈물도 받아낸 등이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아무도 닿지 않는 등이 자꾸만 자꾸만 가려워진다구요
그래서 생각하셨데요 해마다 만물을 키워낸 저 땅은 얼마나 더 가려울까 하고
두꺼운 시멘트 딱지까지 앉은 땅은 춥고 긴 겨우내내 웅크리고 떨며 다복다복 등 긁어줄 사람 하나 기다렸을거라구요
오늘도 할머니는 낡은 호미 하나 들고 공터 곳곳 등 긁으러 가요
나는 할머니 등 긁으러 가요
운동장
중간놀이 시간이야 어서 나와 아빠처럼 배꼽에 투레질해줄게 파릇파릇 올라온 잔디위를 맨발로 걸어볼래? 엊그제 비가 왔지만 햇빛 가득 들여와 공차기 좋아
어서 나와 점심시간이잖아 굵은 돌, 유리조각 다 골라냈어 뭐든 할 수 있어 철봉에 매달려 뒤로 넘어볼래? 딱지치기는 모래 날리면서 해야 제맛이지 오래전 구슬치기 하던 형들 구슬 내가 잘 숨겨놨거든 놀다가 힘들면 느티나무 아래 누워도 좋아 비사치기 납작돌은 저 등나무 구석에 있단다
어서 나와 내 배 위에서 놀던 네가 보고 싶어 오늘 하루, 휴대전화 사물함에 꼭꼭 숨겨두고 나랑 놀지 않을래? 구름사다리, 정글짐 마구 올라보지 않을래?
눈사람
눈사람 곁에 누운 사람 보았어요
지하철 입구에 종이박스 깔아 놓고 누운 사람 보았어요
카세트에 담은 옛날 노래 시장입구에 틀어놓고 누운 사람 보았어요
병든 소 병든 돼지 병든 닭 산채로 땅에 파묻고 누운 사람 보았어요
태풍에 쓰러진 벼 일으켜 세우고 떨어진 과일 줍다가 누운 사람 보았어요
사계절 내내 녹지 않는 눈사람 보았어요
아버지 같은 눈사람들
제5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우수상
미안해서 / 이서영
우리 반에서 제일 달리기 잘하는 민호
며칠 전에 자전거 타다 다쳐서 절뚝절뚝 목발 짚고 간다.
나는 민호 앞을 쌩 지나가지 못하고 살살 뒤따라간다.
할아버지 자랑
민이 할배랑 하던 내기 장기도 그만 두고 의료기, 약 파는 곳에도 안 가고 휴대폰 문자판만 두드리는 우리 할아버지
복지관에서 만난 고희자 할머니에게 문자 보내느라 안경을 썼다 벗었다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 이모티콘도 막 날리더니 “내 잘 하제?” 우리 할아버지 자랑이 늘었다.
덩달아 식구들 웃음도 늘었다.
이유가 있어
놀다 늦게 들어 와도 맛있는 것 달라고 하면 언제나 챙겨주던 엄마.
이제 혼자 해보라며 전기밥솥 사용하는 법 가스 불 켜는 법 일러주더니 계란 프라이도 만들고 라면도 끓여보라 한다.
왜 해야 되냐고 투덜거렸는데 그 이유 오늘 알았다.
엄마가 입원하는 날.
제5회 천강문학상 / 아동문학(동시)부문 심사평
어린이,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시가 되어야
동시를 자칫 어린이들만 읽거나 어린이들이 짓는 시로 착각하는 이가 가끔 있다. 어린이가 지은 시는 아동시라고 하고 어른이 동심으로 지은 시를 동시라 한다. 동시는 동심이 시속에 녹아있어야 하고 쉽고 단순 명쾌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동시는 어린이가 주독자이지만 어른이 오히려 더 많이 읽어야 한다.
제5회 천강문학상 동시부문 참가자가 142명에 응모편수는 1,034편이었는데,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7명에 123편이었다.
동시를 문학(예술)적으로 얼마나 잘 표현 되어 있고 그 속에 교훈성이 융합되어 있는가를 기준으로 심사를 했다. 대부분의 작품 수준이 높고 버리기에 아까운 작품들이어서 고심을 했다. 간혹 동시의 시어로서 알맞지 않은 작품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너무 언어의 유희같은 감각적인 시도 섞여있어서 잘못된 동시의 인식과 세태를 느끼기도 했다.
주위의 일상적인 가족 이야기를 감각적인 말재주를 표현으로 하기보다는 더 특별한 소재로 깊이 있고 감동적, 문학적으로 표현한 시가 좋은 시다. 그런 시가 바로 <대상>으로 뽑힌 ‘할머니의 등 긁기‘ 작품이다. 도시에 사는 어린이들이 읽으면 얼른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울 것이다. 자식들이 시골을 버리고 객지로 떠나버린 후, 홀로 남은 할머니의 외로움을 절실하게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부모의 존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기 위해서 만물을 길러낸 땅의 가려움으로 대신 긁어준다는 시상에서 가슴이 서늘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마지막 연의 ‘나는 할머니 등을 긁으러 가요’란 표현은 바로 지은이의 효심(교훈성)이 배어있다. 부모와 땅의 은혜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인들의 비인간화 정신을 일깨워 준다. 땅과 할머니의 등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절창 동시다.
우수상으로 뽑힌 ‘미안해서’는 친구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우정을 재치있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할아버지의 자랑’은 대상인 ‘할머니의 등 긁기’처럼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나 표현을 좀 더 시적으로 다듬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상>과 함께 응모한 ‘운동장’ 역시 싱싱하고 밝고 즐거운 운동장, 활기차고 용기 가득한 운동장을 재미있는 표현으로 시화한 우수작품으로서 시인의 수준이 고루 높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 : 정용원 (동시인,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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