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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30.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 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눅6:27-31)
27 “But to you who are listening I say: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28 bless those who curse you, pray for those who mistreat you. 29 If someone slaps you on one cheek, turn to them the other also. If someone takes your coat, do not withhold your shirt from them. 30 Give to everyone who asks you, and if anyone takes what belongs to you, do not demand it back. 31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27 “But to you who are listening I say: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말과 말씀
우리는 온통 세상 말들을 듣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듣고
직장에서 듣고
가족에게 듣고
하지만 우리는 특별한 날을 정해서 특별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다른 말씀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성경을 통해 듣는 것입니다.
혹은 성령 하나님을 통해 강대상에서 듣는 것입니다.
물론 말과 말씀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차이를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향해 손을 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도 이 사람을 향해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손이 말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을 그가 듣자 그 사람이 편 손을 내민 것입니다.
세상 말만 사용해 왔던 우리에게 마른 손이 여지없는 실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는 말씀이 실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실상으로 여긴 것이 허상이었음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의 그 말씀을 2,000년 전에 이 땅에서 보이셨던 것입니다.
물론 태초에 그랬습니다.
그 말씀 앞에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혼돈은 허상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 이틀 사흘 여섯째 날까지 바로 그 말씀이 실상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단 교주들도 바로 그 말씀을 한다고 거짓말을 해대니 하는 말입니다.
모든 말씀은 그 내용이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말씀은 철저히 정의와 사랑의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신비주의를 내세우며 상식을 무시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말씀을 제대로 구분하려면 몰상식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까불지마를 상식선에서 판단하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 소리입니다.
신비를 내세우면서 몰상식을 전하는 마귀 장난질을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바이든이라고 분명히 들었는데 날리면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5,000만이 공개적으로 나는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계몽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우기는 것이 세상 말입니다.
빤쓰 운운하는 비윤리를 신령한 말로 위장하는 몰상식입니다.
뉴라이트의 몰상식을 말씀으로 주장하는 원로 제사장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의와 사랑이 상식적으로, 역사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을 이릅니다.
*듣고 있는(you who are listening I say)
미국에 갔더니 거지도 영어를 잘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영어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아버지께 영어 듣지
어머니께 영어 듣지
텔레비전에서 영어 듣지
그렇게 듣다 보니 미국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저는 한국말을 듣고 자라서 한국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말 때문에 딴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성경 말씀을 듣고 있는 중(you who are listening I say)입니다.
전혀 딴 나라 하나님의 나라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말씀에 실감이 잘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소년의 도시락을 치켜드시더니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1인분 도시락이 20,000인 분이 된 것입니다.
사람마다 배도 고프고 신기해서 삼사인 분을 거뜬히 먹어치웠습니다.
그랬으니 소년의 일인 분 도시락이 2만 X 3 해서 6만 명분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65.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요6:65)
그런데 그 능력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라도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보다는 자신이 자신을 더 잘 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제 아침이었습니다.
옆집의 김서방이 자신을 부른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가보자는 것입니다.
이웃집 김서방의 손에 끌려서 예수님께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도 않은 하나님 손에 끌려온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그를 따르지 않았다.(요6:66)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도 않은 공기를 쉴 새 없이 들이키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 역시 사람 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 사람에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기대를 가지고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 이 사람을 뜯어서 고치소서!
생각을 해보세요.
저 역시 죄인에 불과합니다.
제 말이 여러분을 감동시키다니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삶의 길을 바꾸다니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하는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령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저는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전하는 중입니다.
설령 이해가 된다고 해도 현실성이 전혀 없는 말씀입니다.
사랑한다고 결혼한 제 마누라와 이혼을 하는 세상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니 죄인들에게 황당한 말씀입니다.
말이 되는 것을 전하라고 하신다면 제 공로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말씀을 목사로써 설교하고 외우고 인용하고......... 그 일을 해왔습니다.
저는 제주도 한라산 중산간의 봉성이라는 곳에서 목회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던 40년 쯤 전입니다.
그 가난한 이 깡촌 한라산 중산간에서 그의 형이 유명대를 다녔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동생이 연이어서 그 대학을 입학했습니다.
아마 1960년대 였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봉성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 부모는 경사 났다고 밭을 팔아서 임 교우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 돈을 형에게 부쳤습니다.
그런데 형이 동생 대학 입학금으로 친구들과 술 마셔버렸습니다.
임 교우가 칼을 들고 서울역 앞에서 형을 칼로 찔러 죽여 버리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학교는 못 가고 한라산 중산간에서 소를 몰고 밭을 갈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정신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즉 분노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 교회에 왔을 때 성경을 선물로 주었더니 7독 정도를 했습니다.
저는 이 두꺼운 성경에서 딱 한 마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의 가슴에 박히기를 기도했습니다.
형을 사랑하세요라고 꼬집어서 그 말씀을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봐 하며 나에게 칼 들고 달려들까 보아서였습니다.
실제로 그 일을 당한 우리 교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그가 농약을 마시고 말았습니다.
제가 보증을 서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마침 제가 중환자실 그 분 옆에 있을 때였습니다.
닝겔이 덜렁거리고 복잡하게 뒤엉킨 호스들 사이로 모니터에서 찍 소리가 났습니다.
직선이 쫙 그어지는 것입니다.
의사 몇이 험한 얼굴로 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병원의 으슥한 벽으로 나를 몰아붙였습니다.
니가 뭔데 보증을 섰냐고 나에게 따졌습니다.
그들은 시골 교회 목사에게 병원비 받기 다 틀렸다는 것을 눈치챈 것입니다.
그럴 줄 나도 알았습니다.
그 날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저는 우리 아이들 다 놔두고 감옥행이라며 하나님께 마구 뒹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임 교우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분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렇게 일반 병동으로 옮겨져서 저에게 눈물을 흘리며 간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더니 본인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셨다는 것입니다.
이놈, 임 아무개 일어나라! 호통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그 경험 후에 그 분은 주일이면 만사 제치고 교회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잘 되나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였을 겁니다.
교인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분이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다가 앞차를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 후에 그 분이 사택에 있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저를 보더니 목사님 나 약 마셨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앞에서 팍 쓰러진 것입니다.
119를 타고 병원으로 직행했습니다.
그렇게 영 이별하고 말았습니다.
임 아무개!
내 일생에 나 자신을 두고 그렇게 낙담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너 목사 맞느냐는 질문을 나에게 수없이 던지며 제주도 돌밭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다음에야 확인했던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면 원수보다 자신이 먼저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백 데나리온
어느 농촌의 경로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농약을 탄 음료수를 마시고 마을 어르신들이 죽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화투 놀이를 하다가 몇백 원을 잃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돈 잃은 그 분을 누군가 약 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음료수에 약을 타버린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특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조리 일만 달란트의 탕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고백입니다.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고백입니다.
21.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22.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려고 하셨습니다.(골1:21,22)
구원얻었다는 말은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께 일만 달란트 빚졌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 용서 받은 그 사람이 자신에게 100 데나리온의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돈으로 쉽게 환산하면 5,000만원을 용서 해주었더니 100원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화투판에 100원에 불과합니다.
그 100원 때문에 화를 내면서 친구를 때리고 옷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이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용서 못한 그를 매 때리고 옥에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100원을 빚을 용서 못 해서 당한 일입니다.
그 고발이 세상에서는 정상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을 그 사람이 일만달란트 용서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만 없었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죄인에게는 어마어마한 100원이지만 그것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27.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27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8 bless those who curse you, pray for those who mistreat you.
*대상
국어 사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사랑을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없는데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 대상이 특별합니다.
그 사랑할 사람이 원수여야만 합니다.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32 “If you love those who love you,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love those who love them.
33.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33 And if you do good to those who are good to you,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do that.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성경이 다루지 않습니다.
제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은 세상 연속극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원수를 대상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 성경은 우리에게 바로 그 사랑의 대상을 정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저주하는 사람입니다.
또 우리는 모욕하는 사람입니다.
내 대학 입학금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신 형님입니다.
*칼을 보습으로
형이 친구들과 어울려 대학 입학금으로 술 마시는 통에 자신의 운명이 정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칼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불행하게 뜨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잘 대하는 것입니다.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은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입학금으로 술퍼마신 형님을 형님으로 깍듯이 대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요구가 말도 안된다고 여기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의 예언이 그것입니다.
4.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5. 오너라, 야곱 족속아! 주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사2:4,5)
하나님의 말씀이니 반드시 이루어질 일인데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또다시 2,000년이 흘렀는데 말입니다.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천궁 2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무장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합니다.
핵폭탄도 만들고.......
이제 세상 종말 10분 전인가 5분 전인가 라는데 세계사에서 이 이사야의 말씀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헛말인가?
하지만 확신하건데 성령 충만의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라니 몸을 앞뒤로 흔들고 소리 질러대는 그 일이 아닙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1,22)
그것은 헛깨비 같은 짓입니다.
성령에 충만이란 원수도 사랑하게 되는 사람의 변화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면 원자폭탄이 발전소의 연료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변하면 말입니다.
29.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29 If someone slaps you on one cheek, turn to them the other also. If someone takes your coat, do not withhold your shirt from them.
29절의 말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생각도 할 수 없는 제안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왜 오른 뺨을 맞은 사람이 원수에게 왼뺨까지 내밀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돌려대라!
속옷도 벗어줘라!
꼭 이 말씀의 근거를 찾자면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일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는 일만 달란트 용서를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 받은 그 1/500,000을 보임으로 최소한의 신앙고백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5,000만 원을 용서 받았으니 100원어치 용서하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또 다른 선례를 보이신 것입니다.
34.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그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막15:34)
우리는 100원인데 주님은 5,000만원의희생을 십자가에서 치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희생을 이해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으로써 그 십자가의 처형을 이해하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냥 목숨까지 내맡기신 것입니다.
그 신뢰를 보이신 것입니다.
46.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부르짖으시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셨다.(눅23:46)
다시 이르지만 에덴에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의 가장 중앙 사람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과일 나무를 심으신 것입니다.
그 일은 욕하고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로 심각한 일이구나 이해가 되었더라면 그 일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냥 과일 깎아서 부부가 나누어 먹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거부했을 때입니다.
아담 이브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류가 죽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엄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단 한 가지 그 말씀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신앙합니다.
지금 미국은 10개 러시아는 13개 중국은 7개 핵 폭탄으로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북한도 한두 개 거기에 낄까?
나 죽을 바에 모조리 함께 죽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이 원수도 사랑하게 된다면 그 핵폭탄들이 발전소의 원료가 될 것입니다.
30.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 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0 Give to everyone who asks you, and if anyone takes what belongs to you, do not demand it back.
*보상
이 30절의 말씀에서 꼭 이 부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0.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0 do not demand it back.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일에는 본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요한 복음3:16절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던 내용입니다.
도대체 의의 값을 전혀 지불할 수 없는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독생자가 생명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 희생을 하시고 사람에게 어떤 대가를 찾으시려고 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죄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저리신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겉옷을 요구하는 원수에게 속옷까지 줘버리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욥의 주제도 그것입니다.
그는 의인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실제는 욥은 예수님의 상징이셨습니다.
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31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그리스도적 공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의 정신을 정리하신 것입니다.
완전히 남의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12월 4일의 일을 기억합니다.
눈깔을 부라린 자가 계엄을 선포하자 국회 유리창이 깨지고 헬기들이 줄줄이 마당에 내려앉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이란 팔레스타인의 땅 거기에서 펼쳐진 일들이 이 땅에 터진 것입니다.
8살 쯤 여자아기가 죽은 동생의 다리를 잡고 끌고 가는.......
이 자는 이런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죄인이 자신들이 느끼지도 못하는 죽음의 현실을 공감하신 것입니다.
술 퍼마시며 세상은 즐겁다고 비틀거리는 자의 슬픈 운명을 지신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자식의 앞길을 위해 기러기 부부를 택한 사람들을 뉴욕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장애 자식을 위해 이민을 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헬레켈러 기념관이 있는 우리 마을을 택한 것입니다.
어린 자식이 부모의 뜻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의 미래를 먼저 읽고 그 희생을 택한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남의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에 충만이 되는 원수도 사랑하는 종말이 오면 에스겔의 말씀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에스겔은 틀림없이 핵 전문가였을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우리 집 겨울 난방 연료가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9.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서 성읍마다 주민이 바깥으로 나가서, 버려진 무기들을 땔감으로 주울 것이다. 큰 방패와 작은 방패, 활과 화살, 몽둥이와 창을 모아 땔감으로 쓰면, 일곱 해 동안은 넉넉히 쓸 것이다.
10. 그 무기들을 땔감으로 쓰기 때문에, 들에 나가서 나무를 주워 오지 않아도 될 것이며, 숲에서 나무를 베어 올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또 전에 자기들에게서 약탈해 간 사람들을 약탈하고, 노략질해 간 사람들을 노략질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겔39: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