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길 1구간인 백악구간은 창의문에서 백악을 넘어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백악(북악산, 342m)은 옛 서울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높다. 공극산(拱極山), 면악(面岳)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세가 ‘반쯤 핀 모란꽃’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다. 한양도성은 백악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가 100m 정도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곳에서 7212버스를 타고 윤동주문학관에서 내리면 1구간 시작되는 창의문이다.
북문 또는 자하문이라고도 하는 창의문은 1396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에 세운 문으로, 돌로 쌓은 홍예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의 문루가 있다. 4대문 중 북대문인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었으므로 경기도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왕래했다.
창의문은 인조반정 때 능양군을 비롯한 의군이 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반정을 성공시킨 유래가 있는 곳으로서, 누문 다락에는 인조반정 때의 공신의 명단을 적은 게판이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아쉽다.
창의문 안내소를 돌아서 꺾어 들어서면 백악구간이 시작된다.
계단을 한참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눈 안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아름답다.
어느새 숙정문루까지 왔다.
본래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불렀던 숙정문은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위치하였다. 1395년(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고 한다.
와룡공원을 지나 내려가다 보면 성균관대학교 후문이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마을버스를 타도 되겠지만 죽 내려가면 북촌한옥마을을 지날 수 있다.
어느집 모퉁이에 놓여있는 석상이 너무 해학적이라 한 컷 찍어본다.
강회동 성당이 위치한 북촌일대는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하여 1795년 4월5일 부활대축일에 최인길(崔仁吉, 마티아)의 집에서 조선 땅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