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리니
며칠
전에 내가 사는 뉴저지 지역에 내린 눈이 30인치(75cm) 정도 되었다니
엄청난 양이다. 미국에 35년째 살고 있어도 이런 폭설은 몇 번 겪지
않았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전쟁 중에 눈이 한 자(30cm)나 내린
적이 있었다며 두고두고 그 폭설을 얘기했는데, 그때보다 두 배 이상의 눈이 내렸으니 아버지가 이런 눈을 보았다면
굉장한 얘깃거리로 삼았을 것이다.
나이
들어서 백수 처지가 되니 이제는 눈이 내려도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자동차에 쌓인 눈을 치울 일,
눈 때문에 개점휴업일 가게….등등의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이룰 때를 생각하면 나이
드니 마음이 편하구나 싶다. 그렇게 지겨웠던 눈도 이제는 즐길 수가 있으니 말이다.
일기
예보보다 훨씬 일찍 눈이 내리기 시작한 날 밤에 블라인드를 올려놓고 창밖으로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을 밤늦게까지 바라보며 위스키 잔을 기울이니
마음이 참 푸근했다. 오랫동안 끊었던 밤참이 생각나서 라면 반 개를 끓여서 안주 삼아 먹으니 이런 호강이 따로
없다. 위스키가 아니고 정종이나 막걸리면 더 좋으련만 식탁에 열 병 가까이 놓인 술병 중에서도 하필이면 그
두 가지 술은 없다. 들뜬 마음 같아서는 밤샘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술에 취해서, 잠에 취해서 그리고 체력도 달려서 그리 하지 못했지만, 평소보다는 퍽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눈이 제법 쌓이자 L.A.로 출장 간 둘째 딸이 걱정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나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예보를 믿고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기로 돌아오겠다며 떠났는데 뉴스를 보니 벌써 많은 비행기 편이 취소되었다고 했다.
태어난 지 반년 된 젖먹이를 안사돈에게 맡기고 떠났는데… 하늘의 뜻에 맡겨야지 어쩌겠나.
안사돈이 워낙 씩씩하니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눈은
늦은 밤부터 그 다음 날 밤까지 꼬박 하루를 채우고 나서야 멈추었다. 뉴스를 보니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도로,
집 그리고 자동차를 보여주며 외출을 절대 삼가라고 했다. 심지어 뉴욕시 당국은 외출한
사람은 체포하겠다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 주차장을 내다보니 수많은 눈 더미만 보였다.
외출은 꿈도 못 꿀 일이고 차를 꺼낼 일이 난감했다.
둘째
딸은
L.A.에서 출발하지 못했다는 이 메일을 보내 왔다. 그러고도 두어 번 떠나는 시간을
알려 주고, 또 취소되었다고 연락하고 그러다가 예정보다 48시간 늦은
새벽에 JFK공항에 도착했다. 젖먹이를 두고 떠나서 눈 때문에 귀가가
늦어져서 답답할 텐데도 전화로 들은 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눈
때문에 외출을 못 하니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자고, 먹고, 놀고, 먹고, 놀고, 먹고, 마시고 또 자는 수밖에. 눈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를 골라서 눈 풍경만 다시 보았다. ‘설국’, “오 겡끼데스까?”라는 대사로 유명한 ‘러브 레터’, 그리고 ‘파고(Fargo)’ 같은 영화를.
큰딸네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영상통화로 아이들 재롱을 보았다. 필라델피아도 눈이 엄청나게 내려서 가족이 오붓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별로 할 얘기가 없어도 아이들 노는 걸 보기만 해도 즐겁다.
끼니때마다
그렇고 그런 음식(좀 수위가 높은 표현인가?)을 얻어먹다가 팔을 걷어붙이고
내가 만들 줄 아는 요리 두 가지를 아내에게 대접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황태 콩나물 라면과 조갯살을
잘게 썰어 넣은 링귀니 (Linguine). 변변치 않아도 아내는 연신 맛있다고 감탄하며 초보 요리사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매일 점심 후에 영화를 한 편씩 감상했다. 재미있는 것, 우스운
것, 심각한 것 그리고 그저 그런 것을 고루 보았는데, 그 중에는 어린
레너드 디 캐프리오와 비교적 젊은 로버트 드 니로가 공연한 흔치 않은 영화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거기에
얽힌 얘기, 이를테면, 뉴저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기막히게 예쁜 앤
해서웨이가 한때는 수녀 되기를 희망했었다는 얘기, 영화에 나온 식당 얘기,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했던 다른 영화 얘기 등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에는 부부간에도
나눌 얘기가 별로 없어서 늘 따로 놀았는데 폭설 덕분에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온종일
눈이 내리던 날 이른 저녁에 아파트 로비에는 때아닌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술 몇 병에 군것질거리 몇 가지가 준비된
조촐한 술자리에 여남은 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여서 하하 호호 웃으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손자들과 손녀들 얘기, 최근에 읽은 책 얘기, 먼저 주에
아파트 영화 감상실에서 함께 본 영화 얘기…모처럼 찾아온 폭설이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눈이
그친 다음다음 날 주차장에 나가 보니 자동차 앞뒤, 좌우 그리고 위에 눈이 수북이 쌓여서 차를 꺼낼 일이 난감했다.
나는 쌍지팡이를 짚고 지내니 아예 눈을 칠 생각도 못 하고 나이 든 할매(아내)가 눈치겠다고 덤비다가는 몸 상하기에 십상이니 아예 아르바이트하는 흑인 아이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모처럼 성당에 가려고 나섰다. 아파트 주차장 앞으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서 난 작은 숲에 짐승 여러
마리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차에 올라 보니 귀여운 새끼 사슴 한 마리가 내 차 바로 앞에 앉아서 나뭇잎을
오물거리며 뜯어먹고 있었다. (사진) 그러다가 가끔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겨우내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도 전혀 굶주린 기색이 없다.
아무튼, 이런 폭설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다.
폭설이
내렸어도 집 안에만 있었으니 별로 불편한 건 없고 오히려 많은 걸 즐길 수 있었으니 하는 일 없이 나이 들어가는 것도 이럴 때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자주는 말고 그저 한 해에 한 번 정도만 큰 눈이 내리면 좋겠다.
(2016년 1월29일)
첫댓글 서울에서만 살면 그런 눈은 거의 볼 수없다. 아마 아주 어렸을 때는 많이 내렸을 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 기억이라~~지금 그정도로 눈이 내린다면? 여기선 여유롭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순 없을 듯~~허긴 그런 눈이 아니라도 지금도 주말이 되면 어쩐지 마음 속까지 깊이 쉴 수 있다는 여유로움이 있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않을손가?
뉴저지는 서울과 날씨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살아보니 좀 달라. 봄과 가을이 짧고, 장마철이라는 게 없고, 습도가 조금 낮고, 눈이 마음 먹고 내리면 무지막지하게 퍼붓고...때로는 3월말이나 4월초에도 폭설이 내리는 등 종잡을 수가 없더군. 그래도 제설 작업이 신속해서 폭설이 내려도 그 다음 날에 출근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좀 불편하기는 해도.
오래만에 카페에 들어왔네. 눈밭의 초롱초롱한 사슴눈을 보니, 옛날 눈 많이 오던 날 저질렀던 타의반 자의반 죄행들이 떠올라 반성이 되는군. 국민학교시절 선생님들에게 끌려가, 전교생이 겨울눈밭 몰잇군이 되어 많은 산토끼를 잡았고, 그 토끼는 상급반 여학생들의 가사실습이란 명목으로 토끼탕으로 끓여져 선생님들 술안주가 됐었지, 우린 교실 밖에서 침을 흘리며 구경이나 했지. 전방에선 폭설에 먹이를 찾지 못한 새들이 군대 취사장 잔밥 버리는 곳에 몰려오면 빗자로 두들겨 바로 참새구이식 산새구이를 해 술안주 했고. 때론 산돼지도 총으로 잡아 잔치를 벌이기도 했지. 잔인한 추억이지만 그것도 그리우니 내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