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나무
조선왕실 문장으로 사용된 오얏꽃
▶사람 홀로 속절없이 바쁘다
한 행자승이 속세로 내려왔다. 태평한 대지大地위에 무심한 산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몇 날을 걸어보아도 보이는 것은 말없이 살고 있는 초목들. 그 속에 오직 어리석은 사람만이 분주스레 오고 갈 뿐이다. 행자승은 발길이 무거웠다. 세상 살아가는 참 지혜를 보고 오라시던 스승께 돌아가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아뢰니 스승께서는 껄껄…웃으시며 그렇다면 다 보고 온 게지. 더 무엇이 있겠느냐. 태평한 대지, 무심한 산천, 말없이 살고있는 초목들 그 외에…
풍진세상 골몰하여 만사를 그르쳤으니
돌아보니 삼십여년 세월이 허사로다.
서원사에는 비바람불고 밤은 급히 오는데
복사․오얏꽃은 말이 없고 봄 절로 가도다.
汨沒紅塵萬事違 / 回顧三十二年非
西園風雨夜來急 / 桃李無言春自歸
「禪詩」 법호 虛白. 明照 조선시대스님.
태산은 원래 꿈쩍도 않는데 흰구름 스스로 오고가더라. 泰山元不動 白雲自去來. 복사꽃 오얏꽃도 시절인연을 만나 말없이 피고 지고 봄은 왔다가 절로 가는데 태평한 자연 속에 사람만 홀로 속절없이 바쁘다.
▶고향집 울타리에 피던 꽃
오얏 이李자 성씨를 쓰는 사람 가운데 오얏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려나.
순우리말 이름 오얏나무 그 열매는 복숭아를 닮았다하여 한문이름 자도紫桃가 되었고 다시 자두로 변했으며 한자표시 명은 리李라 한다.
중국에서 삼경三經으로 일컫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周易 중에 시경은 기원전 500년경 춘추시대 민요를 중심으로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데 이 경집에 매화와 오얏이 봄꽃나무로 가장 으뜸이라고 노래한 시가詩歌들이 전해진다.
그리고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들의 역사서에 나타난 기록들로 미루어 보아 중국원산의 오얏나무가 한반도 삼국시대 이전 1500년 전쯤에 이 땅에 들여와서 과일수로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붉은 빛을 띤 매화와 살구꽃이 봄비에 낙화되어 흩날릴 때 연이어 하얗게 자잘한 흰빛 오얏꽃들이 눈 쌓이듯 피어난다. 그리고 연분홍 복사꽃도 따라서 핀다. 매화나무 열매 매실과 살구 그리고 오얏나무 열매 자두와 복사나무 열매 복숭아가 다같이 여름 과일이나 매실은 가공하여 약으로만 쓰인다. 살구와 자두, 복숭아는 빛도 고울 뿐만 아니라 새콤달콤 맛난 과실로 바로 먹을 수 있어, 매화나무를 선비들의 집 뜰에 꽃을 보기 위해 풍류로 심었다면 살구와 오얏 복사나무는 서민들의 집 울타리에 열매를 먹기 위해 실리적으로 심었다고 하겠다.
오얏나무는 장미과 벚나무 속에 딸린 활엽 갈잎 과실수로 큰키나무 교목으로 분류되나 이 땅에서는 키 3~5m 가량으로 키 작은 나무로 자란다. 잔가지는 적갈색을 띄는데 잎은 어긋나게 나고 계란꼴이며 가장자리에 무딘 톱니가 있다. 꽃 지름 2.5㎜ 안팎 순백색 꽃이 잎보다 먼저 4월 초순에 피어나며 한자리에 보통 세 송이씩 달린다. 7월 말경 열매가 익는다. 야생 오얏열매 자두는 지름 2.5cm 정도 밖에 되지 않으나 개량종 열매는 복숭아만큼 큰 것도 있다.
오얏 품종에는 크게 나누어 동양자두와 서양자두가 있다. 이 땅의 토종이라 할 수 있는 동양자두는 진보랏빛 홍색이며 열매가 동그랗고 속살은 노랗다. 서양자두는 검붉은빛 홍색이며 열매는 길쭉한 형임으로 구별된다. 열매 한쪽에 세로 홈이 파인 것은 같다.
▶오얏꽃문양 李王家상징
자두나무 한문표기는 오얏 리李다. 오얏열매가 진보랏빛이라서 자리紫李. 복숭아를 닮았으되 자색이라 자도紫桃. 그 열매란 뜻으로 이실李實. 그 외 이화李花. 이수李樹. 추리나무라 하기도 한다.
한방에서 생약이름은 열매씨를 이인李仁 이핵李核 뿌리를 이근李根이라 하며 「본초강목」 「동의보감」에 약성에 관한 기록이 있다. 진통․소염․해열․이뇨․통경․통변작용을 한다. 열매 속 알맹이 씨 핵은 기를 보하여 힘을 길러주며 골절이 쑤시고 아픈 증상과 오래된 열을 다스린다. 그리고 소장을 통리하여 수종과 이질 변비를 치료하며 기침, 어혈, 기미가 낀 것을 없앤다. 뿌리껍질은 번조증-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많은 증세와 당뇨병으로 인한 목마름 갈증을 멎게 하고 대장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며 열독, 심장질환, 적백대하증, 유종, 치통 이뇨에 활용된다. 오얏나무 잎은 어린아이의 경풍과 학질-말라리아 열병을 다스리는데 잎을 삶아서 그 물로 목욕을 시키면 보조요법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약초로 쓸 때 열매 핵은 잘 익은 것을, 뿌리껍질은 봄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잘게 썰어두고 쓴다. 하루 쓰는 양 10g을 불에 노랗게 볶아서 물에 달여 나누어 복용한다.
이 땅의 마지막 왕조가 된 조선국朝鮮國을 일본인들이 오얏나무 성을 가진 이李씨가 다스리는 나라 즉 「이씨 조선李氏 朝鮮」 줄여서 「이조李朝」라고 부른 것은 조선왕조를 얕잡아 보고 일컬음으로 유래되었다. 조선 고종 34년 서력 1897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될 때까지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썼다. 이 시기에 오얏꽃은 왕실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서력 1884년 우리역사상 최초로 시작된 우정사업 보통우표에 이왕가李王家를 상징하는 오얏 문양이 도안되어 이화우표李花郵票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말기에는 백동으로 만든 화폐가 통용되었는데 이 표면 오른쪽에는 오얏나무가지, 위쪽은 오얏꽃을, 왼쪽에는 무궁화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이렇게 오얏은 오랜 세월 꽃과 열매로 우리민족과 친숙한 이웃사이였으나 지금은 추억 속으로 잊혀져 가는 나무가 되고 있다.
<艸開山房/oldm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