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의 멸망과 엘니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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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를 정복한 피사로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가끔 따뜻한 바다의 조류가 에콰도르와 페루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흐릅니다. 그럴 때면 비가 많이 내려 페루와 에콰도르의 해안 농사는 풍년이 들지요. 우리 선조들은 예수님 탄생일 이후 비의 풍성함이 주어졌기에 이 현상을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라고 부른답니다.”
약한 엘니뇨는 아기 예수라는 말 그대로 풍성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엘니뇨는 세계적인 이상 기상의 대명사가 됐다. 심각한 홍수와 가뭄, 강우 패턴의 변화, 기상 재앙 등 인간의 불행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엘니뇨는 사회·경제·정치·전쟁까지 영향을 준다. 찬란한 잉카문명의 멸망에도 엘니뇨가 큰 역할을 감당했다.
남아메리카에 세워진 위대한 문명이 잉카문명이다. 1200년대 중반 잉카족은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 인근의 고지대에 정착했다. 이들은 1400년대부터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전쟁 결과 북쪽으로 키토에서 남쪽으로 산타아고까지 무려 2500마일에 달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정복한 부족들을 자신들의 문화로 흡수하고 그들에게 공통어 케추아어를 사용하도록 해 일체성을 이뤄 나갔다. 잉카제국은 무려 160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통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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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황제를 처형하는 피사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침략전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천연두 덕분이었다.” 역사가들은 북미의 인디언, 멕시코의 아스테카 문명, 남미의 잉카 문명들이 그토록 쉽게 백인들에 의해 정복된 것은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전염병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을지라도 백인들이 퍼뜨린 천연두나 홍역·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은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몰살시키는 죄악을 불러온 것이다. 200년 이상 견고한 제국을 이어 오던 잉카제국도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1525년 황제가 사망하면서 두 명의 이복형제가 후계자 자리를 두고 치열한 내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우외환이 겹친 중에 1531년 스페인의 피사로가 공격해 왔다.
“그것은 500배나 더 많은 적과 싸워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크게 이긴 기묘한 전투였다.”
스페인의 피사로 장군은 잉카제국과의 전투를 이렇게 회상했다. 잉카의 새 황제는 1532년 페루의 카하마르카에서 스페인의 피사로 장군과 만났다. 비록 수많은 인디언이 전염병으로 죽었지만 잉카군은 8만 명인데 반해 피사로의 군대는 168명에 지나지 않았다. 병력이 너무 적어 무시했기 때문이었을까? 잉카황제는 무장하지 않은 2000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피사로와 만났다. 피사로는 신부(神父)를 보내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고 스페인의 국왕을 섬길 것을 요구했다. 잉카황제가 거부하자 숨어 있던 스페인군이 일제히 뛰어나와 비무장한 인디언들을 기습 공격했다. 황제가 사로잡히자 후위의 무장한 인디언도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스페인군은 짧은 시간에 단 한 명의 병력 손실도 없이 7000명을 살육했다. 그리고 이후 피사로는 정복전쟁을 통해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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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에서 문자 대신 사용했던 결승문자 매듭
피사로가 정복전쟁에서 승리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스페인의 앞선 신무기와 기마병을 이용한 전술이 주효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학자들은 날씨가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주장한다. 페루의 지형은 태평양에 접해 있는 해안과 구릉, 안데스 산맥, 그리고 그 너머에 아마존 강의 상류인 평야지대로 이뤄져 있다. 해안과 구릉지역은 연 강수량이 20㎜ 내외로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안데스 산맥은 추위와 함께 강풍이 몰아치는 곳이다. 그런데 기후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당시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해안과 구릉지역에 비가 많이 내려 물과 식량 사정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다. 안데스 산맥 또한 그리 춥지 않았다. 이런 기상조건 때문에 스페인군이 페루의 북부로부터 남부 산악지역인 마추피추까지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기후조건은 천연두 등의 전염병이 번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기에, 인디언들을 무력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고고학자인 미카엘은 엘니뇨에 수반된 비가 12세기 때에도 ‘치무’라는 페루 왕조를 붕괴시켰다고 주장한다. 1100년께 홍수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관개 설비의 유적을 연구해 보니 엘니뇨에 의해 초래된 비가 수로를 파괴하고 농장을 망쳐 큰 기근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의 추론은 왕이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왕국이 30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퍼붓는 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이 지방의 전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엘니뇨가 남미 지역의 큰 왕국 두 개를 멸망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다.
잉카의 황제는 몸값으로 시가 20조 원에 해당하는 황금을 피사로에게 주었으나 결국 처형되고, 찬란한 문명의 잉카제국은 안데스 산맥 위에 유적지만 남긴 채 역사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