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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아들바위, 왼쪽은 시명봉
淸陰堂邃歇征鞍 청음당이라 집은 깊어 말을 쉬이고
雉嶽山高列碧巒 치악산은 높아 푸른 봉우리 늘어섰네
誰把彩屛千萬帖 누가 천만 첩의 화려한 병풍을 펼쳐
長敎人作畫圖看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그림 감상하게 하였나
耘谷高風照後塵 운곡의 고풍이 후세에 빛나니
見其山似見其人 산을 보매 그 어른 뵙는 듯
高山仰止大名在 높은 산을 우러르는 건 큰 이름 남아서이니
山不頹時名不湮 산 무너지지 않으면 이름 사라지지 않으리
주1) 청음당은 강원도 감영 관아의 건물 가운데 하나였는데 지금은 없다.
주2) 운곡은 고려 말에 치악산으로 은둔한 원천석(元天錫, 1330~?)의 호이다.
주3) 높은 산을 우러르는 건(高山仰止)은 《시경(詩經)》의 〈거할(車舝)〉에 “저 높은 산
봉우리 우러러보며, 큰길을 향해 나아가노라.(高山仰止 景行行止)”라고 한 말을 인용한 표현
이다.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규필 (역) | 2014
――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 1741~1826), 「치악산을 보며 2절(對雉嶽山謾吟 二絶)」
▶ 산행일시 : 2020년 11월 15일(일), 흐림,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5명(캐이, 아사비, 두루, 제임스, 악수)
▶ 산행시간 : 8시간 20분
▶ 산행거리 : 오룩스 맵 도상 12.9㎞
▶ 갈 때 : 청량리에서 무궁화호 기차 타고 신림에 가서, 구름재 님 승용차로 상원골
주차장으로 감
▶ 올 때 : 금대계곡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원주에 와서 무궁화호 기차 타고 청량리
에 옴
▶ 구간별 시간
07 : 05 - 청량리, 무궁화호 기차 출발
09 : 05 - 신림
09 : 38 - 상원골 주차장, 이정표(남대봉 3.7km, 상원사 3.0km), 산행시작
10 : 05 - 750.1m봉
10 : 50 - 950m봉, 원주시와 횡성군계 진입, 영춘기맥
11 : 09 - 1,061.3m봉
12 : 30 - 1,111.4m봉
12 : 40 ~ 13 : 38 - 안부, 점심식사
13 : 55 - 남대봉(南台峰, △1,180.0m)
14 : 20 - 데크전망대
14 : 53 - 1,097.1m봉, ┫자 능선 분기
16 : 20 - 합수곡, 임도
17 : 08 - 질아치
17 : 26 - 치악산 국립공원 금대분소
17 : 58 - 금대계곡 입구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8 : 25 - 원주역(19 : 38 무궁화호 기차 청량리 향발)
20 : 49 - 청량리, 해산
1-1. 산행지도(남대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금대계곡,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 상원골, 남대봉(南台峰, △1,180.0m)
산행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청량리에 올 기차표가 진작 매진되어서 나는 혼자 40분 후에 출
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할 수밖에 없었다(그 기차도 곧바로 매진되었다). 틈틈이 코레일 톡을
열어보고 반환표가 있는지 살폈다. 이른 아침 청량리 가는 지하철에서 코레일 톡을 열었더니
몇 장인지 모르지만 반환표가 생겼다. 얼른 예약하였다. 그런 다음 이미 예매한 40분 후에 출
발하는 기차표를 반환하였다. 이게 비록 손해 보는 절차였지만 ‘변경하기’를 하다가 그 기차
표가 순간 매진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반환수수료 600원이 그리 아깝지 않다.
청량리에서 신림 가는 무궁화호 첫 기차는 용문을 지나고부터 역마다 들르느라 2시간이 걸
린다. 그 시간 꼬박 눈 비비며 와이드 화면으로 펼쳐지는 차창 밖 풍경을 관람한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장면이 바뀐다. 여명이 밝았으나 안개가 자욱하다. 원경은 아예 캄캄하고 근경
조차 흐릿하다. 용문산 백운봉도 보이지 않는다.
신림 역사를 빠져나오자 원주에 사는 구름재 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캐이 님이 오늘 미륵산
을 간다는 구름재 님에게 우리들의 남대봉 들머리 상원골 수송을 부탁하였다. 주포천(周浦
川)을 끼고 들녘 길을 30분 달려 상원골 주차장이다. 이정표에 남대봉 3.7km, 상원사 3.0km
이다. 적어도 상원사까지는 따분하기 짝이 없을 대로이리라.
우리는 주차장에서 곧바로 금줄 넘어 비탈길을 내리고 상원골 계류 건너 산죽 숲 소로를 오
른다. 사유지 팻말을 앞세운 개활지가 나오고 소로의 주인인 빈 농가의 마당에 들어선다. 생
사면에 붙는다. 산약초를 재배하였다며 곳곳에 첨단의 감시장치를 설치하였다. 설혹 CCTV
의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우리를 관찰하더라도 우리가 비지땀 찔찔 흘리며 사심(邪心) 없이
그저 산을 오르는 데만 열심인 줄을 알 것이다.
가파른 데다 햇낙엽이 수북하게 깔려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연속해서 갈지자 크게 그리
며 능선에 올라서도 붙잡을만한 잡목은 드물고 가파름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몇 번이나 헛발
질하여 엎어지고 낙엽에 묻힌다. 그러고서 낙엽 쓸어 발판 만들어 오른다. 산약초 감시망을
벗어나고 또 다른 지능선과 만나는 750.1m봉을 올라 가쁜 숨을 고른다.
1,061.3m봉 가는 길. 여태의 오름길은 예행연습이었다. 곧추선 오르막이다. 한 손은 스틱이
휘어지게 짚고, 한 손을 땅을 짚는다. 긴다. 쉴 때는 옷깃 여미게 하는 차디찬 바람이 이때는
옷깃 풀어헤쳐 맞는 산들바람이다. 950m봉. 오른쪽에서 선바위봉을 넘고 대치 지나서 오는
영춘기맥과 만난다. 사납던 길이 비로소 누그러진다.
이 길을 두 번은 갔었는데 어언 십여 년 전의 일이라 낯설다. 망각이 때론 바람직하다. 전혀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으니 그렇다. 아마 남대봉과 치악주릉도 그럴 것이다. 이 얼마나 즐거운
발걸음인가! 1,061.3m봉. 배낭 벗어놓고 오래 휴식한다. 조망은 사방 둘러 키 큰 나무숲에
가렸기도 했지만 미세먼지가 심하여 무망이기도 할 터이다.
이제부터 당분간은 부드러운 능선 길이다. 비슷비슷한 표고의 봉봉을 넘는다. 능선에 부는
바람이 차다. 관목이나 풀숲이 보이는 사면이 나오면 일부러 누벼 지난다. 그렇지만 그분이
이미 다녀간 흔적만을 확인할 뿐이다. 이삭도 없다. 잡목 헤치고 1,114.4m봉에 올라 수렴 걷
고 비로봉을 바라본다. 하늘도 비로봉도 음울한 잿빛 겨울이다.
2. 차창 밖 풍경, 양수리 물의 정원
3. 차창 밖 풍경, 양수리 북한강변
4. 차장 밖 풍경, 치악산 연릉
5. 남대봉 가는 길, 멀리 가운데 수렴에 가린 산은 구학산
1,114.4m봉을 내린 야트막한 안부에서 바람이 알지 못할 곳 골라 점심자리 편다. 휴식할 때
마다 적잖이 떡과 누른 돼지머리고기 등을 먹었으나 그건 주전부리일 따름이다. 오늘도 캐이
님은 성찬을 준비해 왔다. 대패 삼겹살을 굽고, 부대찌개와 방울만두, 라면을 끓인다. 먹고
마시고, 마가목주 양념한 커피로 입가심하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건너편 남대봉 아래 양지바른 사면에 상원사가 가깝게 보인다. 대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고 한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하였다는 설
과 신라 말 경순왕(재위 : 927∼935)의 왕사였던 무착(無着)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
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 마음으로 진리를 주
시하는 수행)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치악산의 작명은 상원사의 종에 얽힌 꿩의 보은 전설에서 비롯되었음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만, 상원사 용마암(龍馬岩)의 전설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
1763)이 「치악산(雉岳)」이란 시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다.
翁今頭白尙幽情 백발노인 됐어도 정취 아직 남아서
穿盡藤蘿一杖輕 덩굴 헤치며 오르는 지팡이가 가볍다
石氣補天瞻五色 오색 돌로 하늘 때운 그런 바위 솟았고
梵聲和月出三淸 염불 소리 달과 함께 선계에서 나오는구나
會逢眞賞精神王 이런 절경 만나니 활력 절로 샘솟고
看到參禪意思平 참선하는 모습 보니 심사가 평안하다
無著前蹤重問訊 숨겨진 지난 자취 거듭 물어봤더니
靈龜神馬總留名 신령스런 거북과 말 모두 이름 남겼네
맨 마지막 구절의 ‘신령스런 거북과 말’에서 ‘거북’은 구룡사(龜龍寺)의 전설과 관련되고,
‘말’은 상원사에 있는 용마암(龍馬巖)에 얽힌 전설을 말한다. 제천 감악산 아래 백련사(白蓮
寺)라는 절이 있는데, 주지가 여자를 좋아하여 백련사에는 본처를, 상원사에는 소실을 두고
용마를 이용해 두 절을 오가며 살았다.
이 사실을 안 본처가 용마를 굶겼고 결국 힘이 없어진 용마는 겨우 상원사에 도착하여 바위
에 머리를 부딪치며 꺼꾸러졌다. 올라탔던 스님은 말 잔등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은 바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벼랑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주지는 이것이 본처의 소
행임을 알고 여생을 소실과 함께 상원사에서 보내며 불도에 전념하였다. 지금도 그 용마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남대봉에 국공초소가 있다. 남대봉 치악주릉은 지정탐방로이지만 우리가 가는 원주시계 영
춘기맥은 비지정탐방로이다. 그렇다고 국공초소를 피해 갈 필요는 없다. 아까 구름재 님이
얘기하기를 자기가 십 수 년 동안 수없이 남대봉을 올랐으나 초소에서 국공을 본 적이 없다
고 했다. 허리께 차는 산죽 숲길을 잠깐 오르면 국공초소가 나오고 그 앞이 남대봉 너른 공터다.
6. 남대봉 정상에서, 두루 님과 제임스 님(오른쪽)
7. 산 첩첩 너머는 원주 변두리
8. 치악주릉의 흔한 협곡
9. 오른쪽 중간이 금대계곡
10. 왼쪽은 시명봉
11. 앞 가운데는 영원계곡
▶ 금대계곡
과연 국공초소는 비었고 자물쇠가 굳게 잠겼다. 남대봉 너른 공터에서는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고, 바로 위쪽 삼각점 옆이 북쪽으로 살짝 트인 경점이다. 삼각점은 2등이다. 안흥 27,
1989.7. 재설. 발돋움하여 원근 농담의 첩첩 산을 바라보고 주릉을 간다. 길 좋다. 암릉의 능
선 마루금은 오를 수 없고 좌우사면으로 돌아간다. 사나운 바윗길은 데크계단으로 덮었다.
뭇 봉우리 중 데크전망대는 빼어난 경점이다. 전후좌우로 조망이 훤히 트이는데 미세먼지가
심하여 근경조차 흐릿하다. 향로봉과 비로봉에 이르는 주릉을 바라보며 허백당 성현(虛白堂
成俔, 1439~1504)의 「치악산(雉嶽山)」을 새삼 확인한다.
峨峨雉嶽山 험준한 치악산이
鎭壓原城界 원주와 횡성의 경계를 진압하고 있는데
峛崺東西騖 낮은 산자락들은 동서로 치달려
勢若神駿快 형세가 경쾌한 준마와도 같아라
오지를 만들 어느 능선을 타고 금대계곡으로 빠질까? 지도와 실경을 대조하며 고른다. 1,120
m봉이 그럴 듯했는데 영원사 가는, 조금 더 간 1,080m봉은 상원사를 오는 이정표가 안내하
는 잘난 길이라서 그만둔다. 1,097.1m봉을 잡는다. 정상은 등로에서 약간 벗어났다. 키 큰
산죽 숲을 뚫고 오르고 일로 서진한다.
줄곧 까칠한 내리막이다. 1급 슬로프로 가파르고 햇낙엽이 깔려서 매우 미끄럽다. 반대편이
블라인드 코너일 암봉과 만나고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이도 수월한 길이 아니다.
땀난다. 능선 마루금에 올라서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며 아사비 님이 덕순이를 찾는다고
골로 가는 형극의 사면을 내린다. 님의 길이려니 아무도 뒤따르지 않는다.
험로는 계속된다. 아예 주저앉아 미끄럼을 타고 내리기도 한다. 비록 더듬어도 시간이 산을
가는 것. 바닥 친 계곡에 다다른다. 금대계곡 상류이다. 곧 향로봉에서 내려오는 계류와 만나
는 합수곡이다. 휴식. 선녀가 놀다 갔을 소다. 캐이 님과 아사비 님이 발가벗고 풍덩하여 알
탕한다. 나는 겨우 낯을 씻는 데도 손이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다.
계곡을 올라서면 임도가 간다. 계곡과 임도 주변이 소란스럽다. 금대계곡 주민협의회에서 여
러 플래카드를 걸었다.
마을주민 개무시 국립공원 개무시
반성하라 국립공원 지킴이는 주민이다!
근거없는 국립공원 총량제가 웬말이냐?
사람이 먼저다 오만한 국립공원 더 이상은 못참겠다
한참동안 무슨 이유에서 이러는지 몰랐다.
“공원구역 해제하고 주택건축 허가하라”였다.
“공원구역 사유지는 지금당장 해제하라”였다.
질아치 마을 지나고 영원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이정표에 금대분소 1.5km. 해거름 호
젓한 길이다. 금대계곡은 동면에 들었는지 조용하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금대분소 앞 주차
장에서 산행을 마친다. 우리는 아스팔트 포장도로 따라 금대계곡 입구 버스정류장까지 가야
한다. 다행이기도 한다. 한 자리 숫자가 빠듯할 산행거리를 두 자리 수로 넉넉히 채울 수 있
고, 산행시간 일당도 채울 수 있으니까. 산굽이 돌고 도는 도로 가로등은 불을 밝혔다.
12. 멀리 가운데는 향로봉
13. 치악주릉, 멀리 가운데는 향로봉
14. 금대계곡 주변
15. 저무는 가을을 붙들고 있는 국수나무
16. 금대계곡
첫댓글 기차에서 찍은 사진도 멋지네요~ 전 가믄서 일신역 구둔역 양동역 등등 주변에 갈만한 야산들 접수하느라....ㅎ
만추의 로맨틱 산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