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아프지 않으면 (미우라 아야꼬)
찬란한 햇살, 아름다운 세상
픽사베이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장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얼굴이 있다.
아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아프지 않으면 인간일 수 없다는 이 표현을 읽고 무한한 위로를 얻었습니다. 인간인 이상 우리 모두는 아프다는 의미라서 일까요. 인간인 이상 아프다는 것, 그것은 몸에 한정된 것이 아닐 겁니다.
이 글을 쓴 미우라 아야꼬는 자신 또한 평생 병에 시달렸습니다. 폐결핵, 척추카리에스, 파킨슨, 직장암 등.
앓은 병도 참 여러가지입니다. 1922년 태생이고 1999년에 돌아가셨으니 77세, 마지막에는 파킨슨 병으로 움직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병이 그녀를 이겨내지 못한 듯 싶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까지 갔어도 병은 그녀를 어쩌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녀가 지은 책만 해도 96권에 이르니 병은 그녀를 도무지 이겨낼 수 없었던 겁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날을 건강하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던 때는 건강했을까요. 그렇지만 그 기간은 짧았습니다. 이내 퇴직했고 남편과 더불어 잡화점을 꾸렸다고 하지요. 그리곤 그녀가 썼던 책이 <빙점>이지요. 줄거리만 보면 막장 드라마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소설이지요.
사실 지은 책만 해도 '아팠던 게 맞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요. 그리곤 저 많은 책을 아픈 와중에 썼다니 하고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저 기도는 분명 아파본 이의 기도입니다. 심하게 아파본 이, 죽음을 앞에 둘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이의 기도입니다.
저도 아플 때 저런 기도를 했으니까요. 저도 죽음이 앞에 있다고 느꼈을 때 무릎을 꿇었으니까요. 아플 때 듣던 말씀, 아플 때 접근했던 장소, 마우라 아야꼬가 이야기한 그 모든 일은 모두 나의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저 기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저 시가 저 노래가 나의 것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서로 기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약하기에 인간이고 서로 의존하기에 인간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인간일 수조차 없다는 표현이 세포 하나하나를 떨리게 하는, 온 존재를 채우는 아침입니다.
아프고 나면 햇살은 어찌도 그리 찬란한지요. 세상이 어찌도 그리 아름다운지요. 세상을 처음 보는 듯한 눈부심과 깨끗함이 거기 있었습니다. 아침이 마악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미우라 아야꼬는 매일을 새벽을 보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