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외 1편
홍정미
프랑스 브르타뉴 정어리 공장,
쥐의 똥구멍을 말총으로 꿰매 배변을 못하게 한다는 생각,
모두가 못하겠다고 할 때 한 여공이 나선다
쥐의 똥구멍은
깊고 어두운 비밀의 길,
예의와 상식을 지켜줘
함부로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아줘
새벽처럼 햇빛이 잔뜩 퍼진 저녁
공기는 차가운데 나무는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노동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바람
은하의 변방, 여공은 말총을 들고 쥐를 쫓는다
쥐는 행성 사이로 달아난다
후미진 행성까지 달아난 쥐는 다시 여공을 쫓는다
여공은 순식간에 별들 사이로 사라진다
신비로운 저녁내내
쥐는 여공이 되고 여공은 쥐가 되고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제목
엽서
- 인도 암베르성에서*
홍정미
붉은 사암과 흰 대리석이 빛나는 거울궁전,
열두 명 왕비들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깔리 여신만이 가파른 계단을 통과해 그녀들에게 갈 수 있었다
궁전 깊숙한 곳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주홍빛 문신을 한 그녀들은 망토를 두르고 비밀스러운 정원으로 나왔다
물의 궁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들을 휘감으며
올리브 나무로 내려앉았다
영원한 미로 속 정원은 다정했다
이파리들이 와글와글한 노랫소리가
바람의 흔들림 속에서 가까이 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낙타의 발자국 따라 오래된 돌담 사이를 걷다 보면
온 벽이 작은 거울로 이루어져
촛불을 밝히면 빛들이 반짝이는 방을 볼 수 있었다
유리 조각 하나하나에 은하가 들어앉아 있어
방안에서 우주를 여행할 수 있었다
정원에 갇힌 왕비들은 모링가 나무로 서서히 늙어갔다
비밀스런 소요로 가득한 정원은 왕비들과 같이 늙어가기로 했다
어떤 시간 속에서 그녀들은 존재했고,
모든 걸 지켜본 정원만이 여행자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정원은
성벽 너머의 풍경, 푸른 하늘과 붉은 대지에 머물렀다
언덕 위 붉은 사암 성벽에
코끼리들과 걸어가는 열두 왕비 그림자가 어렸다
*1592년 인도 자이푸르의 라자만싱왕이 건축을 시작해 18세기 스와이자이싱왕에 의해 완성되었다.
홍정미
강원대학교 국문학석사
2024년 애지 가을호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