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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고을 봄 여행
강순희(향원)
무작정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4월 셋째 주 토요일, 비단고을 산벚꽃길로 여행을 떠났다. ‘비단고을 산벚꽃, 산꽃둘레길’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는 순간, 즉흥 여행을 결심했다. 산벚꽃은 이미 져버렸으리라 생각했지만 매일 멀리서 바라보던 신록의 아름다움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K산악회 버스를 탔다. 산골마을이다 보니 평균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섭씨 4~5도 정도 낮아서 개화 시기 역시 반 박자 늦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낙화 소식이 들릴 때쯤 보곡 산골에선 꽃 잔치가 펼쳐진다고 한다. ‘보곡 산골 산꽃이야기’라는 주제로 펼쳐진 산꽃축제는 일주일 전에 이미 끝났지만 바람소리에 실린 꽃향기가 가득한 산꽃마을을 상상하며 한 걸음 늦게 달려가 보았다.
충남 금산 보곡 산골은 국내 최대의 산벚꽃 자생 군락지로 국내 최대 규모인 660만㎡(약 200만평)의 산지에 산벚나무들이 빼곡하다고 한다. 마을을 휘휘 도는 임도를 따라 ‘산벚꽃길’을 조성해 두었고 거리는 9㎞쯤 된다. 넓은 산자락을 화려한 산벚꽃과 산딸나무, 병꽃나무, 조팝나무, 진달래, 생강나무 등이 자생하여 앞 다퉈 꽃잎을 피워내는 무공해 청정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어 오솔길을 꽃들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 좋은 산책길이라고 한다.
“사진 찍으러 가시는 분이니까 오늘 함께 앉아서 가세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았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 여행사를 통해 국내외 여러 곳을 다녀왔고 주로 풍경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다고 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번은 자신의 사진을 보고 그림으로 그려도 되겠느냐는 화가의 부탁을 받고 사진 담아가는 것을 허락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림이 자신의 사진보다 더 훌륭하더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줄여나가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버스는 경부고속국도를 달려 황간에서 내려 대전, 영동 쪽을 향해 계속 달렸다. ‘국악과 과일의 고장 레인보우 영동’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과일의 고장답게 진분홍빛 복사꽃이 군데군데 한창이었다. 복숭아밭에는 나무 한 그루에 비료 한 포대씩 갖다 둔 것이 눈에 띄었다. ‘농부의 정성이 담긴 과일은 더 달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양산면이라는 지명을 지나며 보니 오른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신록이 물든 산이 강에 비쳤다. 길 양쪽으로는 오래된 벚나무가 빼곡해서 꽃 필 때 오면 벚꽃 터널을 이룰 것 같았다. 내년 봄에는 벚꽃 필 무렵에 한번 와 보리라 생각했다. 길 양쪽에 심어 놓은 조팝나무 꽃길을 버스는 굽이굽이 달려 나갔다. 드디어 버스는 금산군 산꽃벚꽃마을 오토캠핑장에 도착했다. ‘자진뱅이길’은 9㎞이고 ‘보이네요길’은 6㎞정도 되는데 ‘보이네요길’을 걷기로 했다. 길 입구로 접어드니 커다란 산벚나무가 아직 환하게 꽃을 달고 있었다. 옆자리에 함께 앉아 온 분이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다. 사진을 찍으면 자꾸 뒤처지게 되니 천천히 오겠다고 했다.
일행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나도 뒤따라 오솔길로 들어섰다. 조팝나무 꽃이 활짝 피어 하얀 손을 흔들며 입구에서 길손을 반겨주었다. 가까이, 나지막하고 편안한 곡선을 그리며 솟아있는 산은 초록 융단을 깔고 햇빛 속에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초록의 산과 연분홍 벚꽃, 산복숭아꽃이 어우러져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봄빛으로 길은 물들어 있었다. 평탄한 오솔길을 지나 산을 오르자 제비꽃, 각시붓꽃, 구슬붕이 등 고개 숙여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었다. 조금 가파른 산길을 올라 ‘보이네요 정자’에 도착했다. 정자에 앉아서 조금 쉬고 나서 데크 계단을 내려와 세 갈래 길 중 흙길로 접어들어 다시 오솔길 산책을 시작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모여서 초록산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놓은 봄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신록도 분명 꽃이다. 좀 멀리서 바라보던 신록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고 할까? 하나하나 제 모습을 찾은 나무들이 모여 산은 생기 넘치고 초록의 신록에 반해서 산벚꽃이 진 것도 서운하지 않았다. 신록 속으로 가까이 걸어 들어가 초록에 눈을 씻고 초록의 향기를 마셨다. 왕벚꽃도 군데군데 피어 있고 산벚꽃 꽃잎 떨어져 누운 꽃길을 걸어 드디어 ‘봄처녀 정자’에 도착했다. 정자와 정자 옆 계곡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고 모처럼 봄나들이 나온 분들이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호젓하게 혼자만의 산책을 마음껏 즐겼다. 일행들과 마주치면 간단한 얘기를 나누었지만 되도록 홀로 걸으면서 작은 풀꽃, 산꽃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개 들어보면 온통 산이고 새 잎을 가득 단 나무들이었다. 각시붓꽃이 바위 앞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보랏빛 꽃잎과 초록 잎사귀 사이에 거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무언가를 보았다. 꽃잎은 흩어지고 꽃술과 꽃받침만 남아 붓꽃 위에 사뿐히 앉은 산벚꽃 하나를 나는 사진으로 남겼다.
갈림길에서 신안리 마을을 향해 하산을 했다. 도로 왼쪽에서 버스는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었고 축제는 끝났지만 마을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비닐하우스 식당과 간이 카페가 있었다. 오늘 버스 옆자리에 앉아 온 사진 찍는 분은 ‘보이네요 정자’를 지난 세 갈래 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늦게 올 것이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그녀는 가파른 길을 다시 올라가 방향을 잡고 산길을 내려와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늦게 도착했다. 점심도 못 먹고 급하게 내려왔을 그녀에게, 혼자서 점심 먹은 것이 좀 미안했다. 어서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점심부터 먹으라고 얘기했다. 그녀는 꽃이 다 져버렸고, 왜 꽃이 진 곳을 공지해서 여행객을 모집했느냐며 불만을 이야기 했다. 그녀의 말이 맞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산벚꽃 활짝 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오는 목적은 다 다를 수 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활짝 핀 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활짝 피어 꽃 대궐을 이루면 더없이 보기 좋았겠지! 그러나 신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그래도 아직 피어있는 산벚꽃과 꽃이 지고 새잎이 돋은 예쁜 벚나무를 보았다. 긴 겨울을 견디고 살아 돌아와 모습을 드러낸 아름다운 수형의 나무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형형색색의 산꽃과 야생화가 흩어져 피어있는 오솔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대구를 향해 출발한 버스는 다행히 교통 정체를 피해 대구에 도착했다. 시내로 들어와 첫 번째 정차하는 곳에서 먼저 내렸다. 서로 덕담을 건네며 그녀와 헤어졌다. 가이드 분이 버스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며 “벚꽃이 져버려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했다. 꽃이 진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흐르는 시간은 하루하루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그저 그날 하루, 그 순간 볼 수 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면 된다. 사월의 초록에 흠뻑 물든 하루였다.
첫댓글 비단고을 산 벚꽃 축제에 잘 다녀오신 것 같습니다. 져 버린 벚꽃이 아쉽지만 신록과 어우러진 야생화며 화사한 복사꽃 신록속에 풍덩 빠져버린 벅찬 환희, 보고 느끼신 바를 너무나 세밀하게 표현 하셔서 함께 산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드리며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여유로움과 배려심을 글 속에서 느낍니다.
산 벚꽃 축제에 참가하여 산악회원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내셨군요! 나도 한번 가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나간 것을 탓하지 않고 지금 있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산에는 활짝 핀 꽃만이 꽃이 아니고 신록도 꽃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것을 느끼는 마음이진정 산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좋은 곳 다녀 오셨습니다.
'보이네요길!' 이렇게 보입니다. 각시붓꽃이 홀로 산책나와 '봄처녀 정자'에 앉아 신록에 풍덩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봄의 향연을 리얼하게 표현해 주셔서 간접 체험 여행길에 동참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선생님 좀 늦었지만 봄을찾아 여행을 하시어 다행입니다. 까만 눈동자를 보면서 교실에서 강의만 하시는줄 알았습니다. 봄꽃은 잎보다 꽃이 먼져 피어 화사하지만 불규칙한 계절의 심술로 그냥 두지않는일이 많습니다. 시간을 내어 글도 올리시고 여유를 즐기는것 같아서 좋아보입니다. 건강하게 잘 마무리 하시고 수업에 동참하시기 바라며 잘 읽었습니다.
강 선생님. 내년에는 생생한 벚꽃을 보십시오, 감미로운 글 잘 보았습니다.
벚꾳이 피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예쁜 꽃을 피웠다가 져 가는 모습을 더 좋아하는 사진 작가도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혹 회원님들 참고되실까 해서 올립니다. 보곡산골 산벚꽃 축제는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 세 마을로 둘러쌓인 골이라고 해서 보곡산골이라고 합니다.
축제는 산안리를 중심으로 열리지만 보광리, 상곡리도 둘러 보면 좋습니다. 차를 가지고 가셔서, '보이네요 정자'까는 걸으시고, 임도와 차도를 따라 차를 타고 봄처녀 정자, 상곡리, 보광리 순으로 둘러 보면 좋습니다.
오시는 길에는 보이네요 정자 옆 고개를 넘어 신안리의 '신안사'를 보시고 이어지는 금강변 드라이브를 하시다 어탕과 도리뱅뱅이를 드셔 보십시오.
대구 오시는 들머리 황간ic에서 10분 정도 거리인 월영봉과 반야사도 드라이브 삼아 들러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너무 빨리 져버린 벚꽃을 아쉬워하는 문자를 지인에게 보냈더니, '벚꽃지니 배꽃 피었네.'하고 답이 왔습니다. 산벚꽃은 졌지만 조팝꽃, 산딸꽃, 각시붓꽃....그리고 반짝이는 초록....우리를 유혹하는 색깔들은 지천이지요? 싱그러운 산향기 오솔길에서 마음의 여유를 누리신 그 시간이 중요하지요.
사월의 초록에 흠뻑 물든 하루를 보낸 그자체가 축복입니다. 글을 읽으니 저도 비단고을산벚꽃축제에 다녀온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꽃잔치가 만개한 계절입니다. 이런 좋은 곳이 있는줄을 몰라 아직 가보진 못했습니다.보이네요 정자 거리 이름도 정감이 갑니다. 언젠가 모임에서 그곳에 가보자고 제안해야 겠습니다. 비단고을 산 벚꽃축제 그러고보니 내년이라야 겠네요, 벚꽃은 져 버렸네요 좋은 곳 다녀오셨습니다.
싱그러운 신록을 마음껏 즐기셨네요. 묘사를 너무 잘 하셔서 직접 가 본 듯합니다. 가보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산 벚꽃 보려가셨다 초록에 물들어 오셨군요. 혼자 조용히 걷는 산길은 자연과 더욱더 친밀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비단고을, 보곡산골. 처음듣는 여행지라 호감이 더 갑니다. 여행지의 이모 저모를 예리한 필치로 세심하게 묘사해 주니 앉아서도 여행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옛날 시골은 먹거리의 생산이 주업이었는데 이제는 볼거리 고을이 되었으니 이제는 시골이 마음의 양식을 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름이 고운 동네에 봄나들이 가셨네요. 혼자 거닐며 꽃과 대화하는 그런 시간이 저도 좋아요. 진꽃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