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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gall.dcinside.com/napolitan/3695
해당 시리즈는 [초자연 대책국] 나폴리탄 시리즈 13탄 입니다.
12탄
https://cafe.daum.net/weareshower/ZEmz/2079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취약하다. 정상의 범주가 아닌 것. 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직면하기 어려워 어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 언뜻 굳건한 것처럼 보여도 정신에는 계속해서 데미지가 쌓인다.
초자연대책국에서 근무하다보면 그런 환자를 자주 보게 된다. 억지로 강한 척은 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썩어문드러진, 트라우마와 PTSD에 시달리는 피해자들.
이 경우 초자연대책국은 진정제와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약물을 처방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스스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아니, 이겨낸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사람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괴이와 마주하는 것도 그렇다. 결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한번 가슴에 난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묻고 살아갈 뿐이다. 그래도 적당한 상담과 약물처리가 동반된다면, 적어도 묻을 수는 있다. 괴이와 직면하고 소리나 어둠, 아기, 마네킹, 인형 등에 공포를 가지게 되는 일은 흔하지만 일상생활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을 아예 미치게 만드는 종류의 괴이는 이야기가 다른 것이다. 나찰해수욕장 너머 바다에 어른거린다는 ‘그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영감이 있는 사람들은 늘 보인다는 바다 너머의 그것들. 기관은 지금까지 여러 번 그 바다를 조사해보았지만, 비슷한 것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이 세상의 본원적 어둠 속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과학으로 규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존재에 대해서는 기관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결국 며칠 전에도 사건이 터졌다. 사월매립지에 파묻혀 있던 청동상자 하나가 장맛비에 떠밀려 시내까지 도달했고, 호기심에 그 상자를 열어본 시민들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했다.
뒤늦게야 기관의 요원들이 출동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접촉자들은 이미 정신이 망가진 채 옷을 벗고 입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고, 그 광경을 본 요원들은 본능적으로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들었다.
그 상자는 무사히 기관에 회수되었지만,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애초에 그게 왜 사월매립지에 묻혀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경제발전이 최우선이고, 뇌물로 어지간한 문제는 다 넘어갈 수 있던 시기. 아직 법도 제도도 정비되지 않았던 그 시기에 묻혔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하여간, 그 덕분에 안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던 기관의 재정이 바닥을 치고 내려갔다. 사람도, 재정도, 모두 부족하다. 불암산 아가동산 쪽도, 기껏 원흉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정립하는데 성공했는데도 요원 투입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상부는 늘 그렇다. 단시간 내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 것이면, 그건 이미 문제가 없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상부를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요즈음 행정안전부 장관님은 우리 국장님만 보면 죽일 듯이 노려보신다. 돈, 돈, 그리고 돈. 매번 하는 소리가 그놈의 돈 달라는 소리뿐이니 당연하겠지만, 우리도 할 말은 있다. 그렇게 한 번에 재정을 제대로 투입해서 제대로 숨통을 끊어놓지 않으면, 괴이는 언젠가 다시 발흥하고 그때는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단 말이다.
불암산 아가동산도 2012년 당시 완전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때 예산을 좀 제대로 썼더라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되고 애꿎은 아이들까지 실종될 일도 없었다. 실제로 한 번에 제대로 파괴한 괴이들은 두 번 다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면, 괴이를 없애는 만큼 다른 곳에서 새로운 괴이들이 나타난다는 거겠지만.
아무튼, 본론으로 돌어오자면, 그 상자는 즉각 1급 위험물로 지정되고 봉인되었다. 뚜껑 열린 상자를 목격하거나 응시했던 접촉자들은 전부 미쳐버렸기 때문에 초자연대책국으로 내원해야 했다. 사실은, 사람이 그렇게 망가지면 다시는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알고 우리 직원들도 안다. 그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다.
아예 상담이고 뭐고 통하지가 않을 정도였다. 정말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대화를 시도하려 해봐도 우리가 아는 단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혹시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이 인간으로 위장한 것이 아닌가 싶어 식별기로 검사해봐도 정상이고, 호르몬 수치와 뇌기능 모두 정상이었다. 한 사람만 그랬다면 이상현상으로 치부라도 하건만 접촉자 전원이 그러니 답이 없었다.
그 어떤 검사를 해봐도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그러니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암담했다.
나도 나름대로 경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정신이 삐뚤어진 사람도 아니고, 아예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변한 것 같은 저들을 치료할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만 보면 경계한 채 입을 다물었고, 간호사가 아무리 다정하게 굴어도 마음을 풀지 않았다.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아직 간직하고는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바로 오늘 오전에야 알았다. 오전에 잠시 일이 있어 출장 중 우리 직원의 연락을 받았다. 접촉자 중 한 사람이 드디어 치유되어 자신을 알아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가 어디냐’ 라고 묻기 시작한다는 말에,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본부로 돌아왔다. 가운을 걸쳐입고 바로 치료된 환자와 면담을 잡았다.
도대체 무슨 치료가 그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약물이 효과가 있었나? 아니면 애니멀 테라피? 간호사들의 정성어린 간호? 그것도 아니면, 정말 답이 없어서 초빙한 용한 한의사의 침술?
단순히 내가 의료대책본부 본부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의사로서 그가 치유된 원인이 궁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엇이 그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는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대화가 끝나고 난 지금 보면, 그저 오만한 생각이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날 풀어줘요! 집에 가봐야 한단 말입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아직도 기억난다. 환자, 아니 우리가 환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간호사의 말로는 그는 오늘 아침에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으며, 병실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던 것을 그녀가 발견했다고 했다.
“여기는 초자연대책국 소속 의료대책본부입니다. 혹시 한상일 (가명) 환자분이 맞으십니까? 먼저, 환자분이 쾌유하셔서 다행이라는 말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환자분께서는 이제 다시 인지능력을 회복하신 것 같으니 언제든지 퇴원하셔도 됩니다만, 꼭 퇴원 전 정밀검사를 한번 다시 받아보셔야 합니다. 검사는 보험 처리가...”
“다, 당신, 말을 할 수 있었어!”
그가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삿대질했다. 나는 간호사를 보았고, 간호사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입모양으로 조용히 ‘제게도 저랬어요.’ 라고 속삭였다.
“당연히 말을 할 수 있지요, 선생님.”
“그럼 왜 예전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소? 아니, 왜, 대체 왜?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습니까? 나는 한상일이고, 대림전자 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고, 이런 곳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고, 가족들을 보러 돌아가야 한다고. 하다못해 전화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다시 간호사를 보았고, 간호사는 그저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번에는 입을 뻥긋거리지는 않았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 적은 없었다.
“그때마다 당신도 그렇고, 또 당신도 그렇고! 막 낄낄낄낄 웃으면서 내 말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잖소. 나, 나는 사람이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요.”
어쩌면 아직 정신적인 후유증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혹시 노원동 거리에서 붉은 청동상자를 본 기억이 있으십니까?”
“청동상자? 아 그럼요. 기억하지. 그렇게 특이하게 생긴 물건을 길거리에서 보는 일이 흔하지는 않잖습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이 뚜껑을 열고...”
“그리고 기억이 없으시지요?”
“맞아요. 정신을 차리니 여기였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조선족 장기매매단에게 납치당한 줄 알았어요. 아니, 몇날 며칠을 있어도 우리말은 하나도 안 들리고 이상한 웃음소리들만 들리기에 무서워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같이 병실을 쓰던 사람들이 아니었으면은 정말 미쳐버렸을 거예요. 그 사람들도 다 사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그 내가 나잇값도 못하고 있을 때 오정택 (가명) 어르신이 우리는 반드시 나갈 수 있다면서 사람들을 다들 다독여주는 겁니다.”
“다독여주었다고요?”
“예. 그 어르신 덕분에 정말, 다들 단결해서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근데, 오늘 아침에 딱 일어나보니까, 그... 갑자기 다들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건지...”
그 이후 횡설수설하던 사내의 말까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도 그 사내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우리는 그 깔깔대는 웃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다들, 예전의 댁들처럼 웃어대기 시작하는 겁니다. 무슨 말을 해도 말이 안 통하고, 무섭고, 울고 싶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만 거지요.”
“혹시 환자분, 오정택 어르신 말고 다른 분들의 이름도 기억하고 계신가요?”
“예, 그럼요. 그래도 몇 주 동안 같이 지냈던 사람들인데. 이상준 (가명)하고 손태영 (가명)이라고 했습니다. 다들 싹싹하고 건실한 청년들이었어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이름을 말하는 그를 본 내 표정은 아마 창백하게 질려있었을 것이다. 간호사의 표정이 정확히 그랬으니까. 분명 저 이름들이 그 병실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은 맞다.
하지만 병실 내부에는 별도의 명찰 같은 것이 없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 병실 안에서 나오지 못하던 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알 방법은, 대화를 통해서 알아내는 것이 유일하다.
“그,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들이 그렇게 한 겁니까?”
이미 우리를 잔뜩 불신하고 있는 한상일 환자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병실 CCTV 화면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그저 멍한 표정으로 2번 병실을 촬영하던 CCTV 녹화본을 바라보았다. 눈을 몇 번이나 비벼가며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을 드러내보였다.
“분명히 나네요.”
모든 촬영과 녹화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단 한 순간도 손실된 부분이 없었다.
“분명히 내가 맞아. 그래요. 분명 내가 이날 이 자리에 있었어. 상준 청년하고 나가면 뭘 먹고 싶느냐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단 말야. 그런데...”
그 모든 영상에서, 그 모든 녹화본에서,
정상인이라면 하지 않을 기묘한 동작들을 하며, 의미도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어떻게 발성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상일 환자는 그저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내가, 내가 정말로 저랬단 말입니까?”
그는 무사히 나머지 수속을 마치고 퇴원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날 나는 환자들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장님들 왕국에서는 눈뜬 사람이 소경이오, 귀거머리 왕국에서는 귀 트인 사람이 농인인 법이다. 예전에, 미치광이 왕국이라는 동화를 읽어본 적이 있다. 마녀의 계략으로 왕국민들이 모두 미쳐버리자, 유일한 정상인인 왕은 백성들에게 미치광이로 몰려 왕국에서 쫓겨났다.
우리는 그들을 미치광이라고 생각하고 정신병원에 감금해 치료하려고 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멀쩡한 자신들을 납치해 반강제로 치료하는 미치광이 의사로 보일 수도 있다. 과연 누가 정말로 미쳤을까?
어쩌면 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이제 이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정상인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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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
이건 좀 철학적이네
따봉cctv야 고마워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