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네르오데루또유끼구니닷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雪國이었다’
가와바따 야스나리의 소설 유끼구니(雪國)의 시작은 이럴 것이다. 일본어 공부할 때, 읽었던 소설이다. 가와바따 야스나리는 아시아에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죽고 얼마후 어머니까지 사망하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경제국대학 영문과에 들어가 작가가 되고,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소설은 어린시절의 경험 때문에 허무주의가 스며 있었고, 일본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사람이다.
소설 설국은 그의 그런 성향을 가장 잘 나타내 주었다. 나는,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그의 소설에 매료되었다.
이시무레 미찌꼬는 평범한 주부로 있으면서, 2007 년 ‘슬픈 미나마따’를 발표했다.
르뽀 형식의 소설이다. 미찌꼬는 16 세 까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야학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슬픈 미나마따는 1956 년 발생한 미나마따병에 대한 소설이다.
미나마따는 그녀의 고향이다. 그곳의 신일본질소공장에서 폐수를 흘러보내 강과 바다가 오염되어 2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장애인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그것을 12년이나 지난 1968 년에야 환경병으로 인정했다.
그녀는 30 년간 미나마따병을 취재했다.
르뽀 형식이었지만, 피해자들의 내면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슬픈 미나마따가 진정한 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어에 서투른 평범한 주부가 그것을 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가와바따 야스나리와는 대조적이다.
가와바따 야스나리는 73 세에 가스관을 입에 물고 자살했다. 그러나, 이시무레 미찌꼬는 90 살이 넘도록 악착같이 살았다.
가와바따가 자살한 이유를, 그의 제자 미시마 유끼오의 할복 자살에 원인을 두기 한다.
미시만 유끼오는 자위대 궐기를 호소하며 자위대 간부를 인질로 삼다가 자신이 아끼던 일본도로 배를 갈랐다.
미시마 유끼오 역시 동경대 법대를 나와 고위관료 집안답게 공무원을 하면서 글을 썼다.
미시마 유끼오 역시 노벨상 후보로 거론 되었다. 그는, 나중에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상을 받게 될 것이라 예견했는데,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오에 겐자부로 역시 동경대 불문과 출신이다.
동경대는 제국주의 일본의 요람이었다. 미시마 유끼오 같은 극우파와 적군파 같은 극좌파도 있었다.
동경대 정문을 아까몽(赤門)이라 하는데, 쇼군의 딸, 공주의 안채의 문을 가지고와서 해체해서 만든 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40 년 전에 아까몽 앞의 요조한(다다미 4개 반의 넓이) 다다미 방에서 살았다.
소설 ‘토지’ 의 무대가 되었던, 평사리의 최참판댁은 상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박경리가 나중에 취재해 보았더니, 그녀가 상상 속에서 그렸던 최참판댁과 거의 흡사한 한옥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이 놀랍다.
25 년간에 걸친 대하소설 토지에는 600 여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딱 한명 강우규 열사를 제외하면 전부 박경리의 상상 속의 캐릭터다.
토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양반과 상놈의 계급, 좌와 우의 이념, 독립투사와 일본 앞잡이 제국주의에 대한 것 보다, 단 하나다.
사피엔스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 휴머니즘이다.
소설 ‘청수원’을 우연히 운좋게 출간이 되고, 어느 날 시인이던 동창에게 전화가 오고 강릉 시인들의 술자리에 초대 되었다가, 난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 후, 문인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문학을 하는 것이 대단한 지식인들인 양 들떠 있는 모습과 그래서 자만하는, 글을 쓰는 것으로 자신들을 차별화 시키는 마음들이 싫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지식인이 아니다. 문학은 꼭 글쓰기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과 노래로도 할 수 있다. 무식해도 문학을 할 수 있다.
말로 하면 구전문학이요 노래로 하면 판소리다. 대중가요도 문학이요 트롯트도 문학이다.
오히려 글로 쓰는 문학보다, 말로 하는 노래가 더 효율적이다. 미쟝센을 이루는데 문자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노래는 대단히 가성비 좋은 미쟝센이다. 적은 노력으로 공감을 준다.
노래하는 가수는, 공감의 경제학자다.
청수원을 쓰고 너무 창피했다. 재판까지 해서, 교보문고 2 위까지 올라, 출판사에서 더 찍자고 해도 난 거절했다.
괜히 소설을 썼다는 자괴감만 들었다.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장르에 관계 없이 아무 글이나 미친 듯이 쓰기로 했다.
하루 종일 책을 읽기로 했다. 글쓰기와 함께, 노래 교실에 다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