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즈의 주석 내용 중 두 번째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적용에 있어서는 순차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진보된 사상을 펼쳤을 망정 새로운 종교를 만드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같은 종교적 공동체의 구성원들만을 형제 자매로 칭한 것이 아니고,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며,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가 그점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대하는 방식이 곧 예수에게 대한 방식과 같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예수가 가난과 고통에 시달린 자들을 대표한다는 의미이며 곧 예수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의 본질이다. 이들을 도우며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해방시키고 모두가 정의롭고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곧 하느님의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근원적인 방법은 그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서 나누어 주는 방법이 아니라, 그들도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실제적 기회가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월을 돌아보면 사회가 상당히 발전하여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종과 노예 제도의 폐지, 성의 평등, 아동학대 금지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항은 이 모든 발전이 어느 정도 있어 왔다고 해서 시간에 맡겨 둔다면 계속 인권과 관련된 제도가 발전된다는 어떤 보장도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발전될 것이라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요소들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의 사회는 우리 인간의 노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은 상당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이 엉뚱한 방향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의혹과 불안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경험적 근원이 아니라 초월적으로 근거를 밝히는 것이다. 세계와 그 안의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존재함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함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또한 행복의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또는 자연이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며 행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 것도 더 행복해지려는 것이며 더 잘 존재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이 방향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이기심의 기본 틀이다. 그러므로 이기심은 근본적으로 그 자체는 좋은 것이다. 존재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는 수많은 사물들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상호 작용을 이루며 공동체 관계를 이룬다. 각 사물은 홀로 독립적인 존재일 수 없고 공동체와 종속 관계를 가지며 성원들과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좋은 관계가 필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기심은 상호 갈등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두 가지 원칙이 성립한다. 하나는 자기가 더 잘 존재하려는 이기심과 둘은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상호 관계를 원만히 해야 한다는 이타심의 원칙이다. 이로부터 이기심이 이타심을 무너뜨리면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하여 자기 존재가 힘들게 되고, 이타심에 이기심이 굴복하면 당장 손해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관계가 긴장을 일으킨다. 이 두 관계로부터 얻게되는 최선의 결론은 자기의 존재에 필요한 이기심을 가장 작은 정도로 유지하고 공동체의 존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할 때,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인정을 받아 자기의 존재가 보다 높아진다는 점이다. 높아진다는 것 또한 변화의 부분이고 이 변화는 반드시 인과율로 나타나게 되므로 높아지는 원인이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에 있다는 정확한 결론에 이른다. 이기심은 자기를 높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소외시켜 낮게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이성의 추론이지만 또한 경험적으로 증명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이타심을 적용했을 때 자기 존재를 가장 크게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존재한다. 그 기회는 바로 '하느님의 나라'로 표현된 세계 단일 정부인 것이다. 이 정부는 누가 그 책임을 맡게 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앞서 다룬 원리를 생각하면 자명해진다. 자신의 이기심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이타심이 극대화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이러한 정부 구성원들이 결코 즉흥적으로 마련될 수는 없다 그 정부를 이룰 사람 또는 조직은 충분한 증명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예수의 정신을 쫓는 사람들이 그 정신을 반영하는 삶을 통하여 입증이 된다면 정의로운 지구촌을 형성할 세계 정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성서에서 예정된 것이다. '예정'의 의미 속에는 '우연히'가 아니라 초월력이 작용한다는 함의가 들어 있다. 또한 예정이라는 말은 결정과는 달리 우리의 의지(노력)가 관계됨을 함의한다. 즉 우리의 노력이 우연히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력의 작용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달성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우리의 목표를 확신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력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세계 단일 정부를 이룩하려는 우리가 노력하는 자체가 행복감을 부여시켜 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