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
명작을 남긴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미국의 소설가가 있다.
그의 작품중 <노인과 바다>는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그로 인해 유명세를 탄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중대장으로
참전했을 때 장군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
<노인과 바다>는 인간의 행동주의를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는 조각배 한 척을 끌고
대양으로 나가는 노인이 나온다.
노인은 바다에서
일종의 대형 상어인 "티뷰론"을 쫓는다.
그리고 상어와 사투를 벌인 끝에
포획에 성공한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그것도
나이먹은 노인이 행동함에 있어,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인간이 자연 앞에서,
상어와 싸우는 모습은 피가 불끈불끈
거꾸로 쏟는 것 같다.
남자들은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인생과 싸울 전의를
불태울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노인이
상어를 끌고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피곤에 절어 잠에 빠진다. 그리고
항구로 돌아오고 나서 봤을 때는,
고기떼들이 상어를 다 뜯어먹고
난 뒤였다. 남은 게 뼈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다.
평론가들은 소설속의 노인이,
바로 헤밍웨이 자신을 묘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헤밍웨이는 어릴 때부터,
건장한 흑인과 팔씨름을 해서 이길
정도로 강건한 사람이었다.
그의 별명이 '챔프' 곧 챔피언이었다.
챔피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헤밍웨이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했다.
그는 세련된 사람들이 기를 수 있는,
구레나루 수염을 길렀다.
그는 1954년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두 차례 걸친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하고 화상을 입었다.
그후 고혈압과 고지혈증에 시달리던 그는,
알콜 의존에 가까운 애주가로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워낙 유명한 작가였던 그는,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때
낭독할 시를 지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도
두 줄의 헌시마저 쓸 수 없었던 그는,
한계를 느껴 자책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생 말엽에 그에게 남은 게 무엇인가?
뼈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
사실상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장총으로 자살했다.
내 육신은 유한하고 영혼은 무한한데,
무한한 영혼을 이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채우려해도 채워지지 않아,
진공상태를 느낀다고 했다.
싸우기는 싸웠다,
하지만 왜 싸웠는지 몰랐다.
무엇인가를 추구했지만,
왜 추구했는지 그 목적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장엄한 행동주의의
마지막에 남은 것은 허무밖에 없다.
이것이 헤밍웨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다.
헤밍웨이가 아버지께 가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영혼에 하느님의 말씀이 공급되고,
그의 심령에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인 성령이 공급되었다면,
실존적 공허와 허무, 고독과 삶의
무의미가 극복될 수 있지 않았을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돌아가시면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한 사람이 되십시오"
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영광과 주님 구원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집단인 교회를 위하고,
인류의 복음화와 성화를 도모하고
사시다가 돌아가실때,
구원과 영생에 대한 확신으로 행복을
선언하고, 행복을 주시는 행복 자체이신
하느님을 증거하신 것이 아닌가!
두 노인의 죽음이 왜 이리도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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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 노인과 바다 / 고-임언기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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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황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