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雪嶽)은 아름다운 산의 대명사다.
특히 설악산의 가을 단풍은 내장산의 가을 단풍과 더불어 가을의 절정을 상징한다.
올 여름 북한산에 올랐을 때 한 등산객으로부터 설악산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첫눈의 상징인 해발 1708m의 대청봉과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지음)에서 묘사한
공룡능선의 위용...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공룡능선은 정말 맥놀이 치며 흐르고 있을까?
2007년 10월 26일.
얼마 전 가입한 산악회의 대장이신 방 선생님을 따라 설악산으로 가는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햇빛 산악회에서 운행하는 버스였다.
(방 선생님이 대장으로 있는 산악회는 친목모임 성격의 작은 산악회-나도 회원)
10시 30분 신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홍천강 휴게실에서 잠시 쉰 뒤 한참을 내달려
3시 20분 설악산 설악동 주차장에서 섰다.
말로만 듣던 야간산행의 시작이다. (B조 일행 18명)
야간산행이지만 랜턴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휘영청 달이 밝다.
달이 가장 밝다는 보름하고도 그 다음날이다.
왜 보름보다 그 다음날이 더 밝을까란 의문을 가지며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 숲 속 길을 걷는다.
키 높은 나무들이 뿜어대는 밤공기가 제법 싸늘한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
한 시간 가까이 걸었나보다.
달빛이 스며들어 은은히 빛나는 암벽아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신선이 놀다 하늘로 올랐다는 곳, 비선대(飛仙臺)다.
비선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멀리 우뚝 솟은 화채능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어느새 희붐하게 여명이 밝아오고 멀리 구름위로 빨갛게 물든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설악산에서 맞이하는 아주 특별한 일출이다.
해발 1320m고지인 마등령에 올라선 건 아침 7시.
공룡의 등날 같다 해서 붙여진 공룡능선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 험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백두대간 한 가운데 솟은 설악의 척추로서 내설악과 외설악이 여기 공룡에서 갈리며
기후조건도 내설악과 외설악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니까 동과 서를 가르는 분수령이 바로 공룡인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마등령에서 아침을 먹고 기운을 보충한 뒤 공룡을 타기 시작한다.
걷다보면 어느새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배낭의 무게는 서서히 어깨를 짓눌러 온다.
그러나 누구하나 포기하는 사람 없이 꾸역꾸역 잘도 오른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날 설악으로 인도하신 방 선생님은 날아갈 듯 몸이 가볍다.
아마 공룡능선은 20세기에 태어나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방 선생님을 위해 조물주께서 특별히
빚어 놓은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
(방 선생님께선 공룡이 다섯 번째란다-우와~~~)
공룡능선에서 바라보는 설악은 장엄하기 이를데 없다.
능선 오른편으론 용의이빨과 같은 용아장성(龍牙長城)이 꿈틀대고 왼편으론 마치 부채살을
펼쳐놓은 것 같은 화채능선이 그리고 울산바위가 저 멀리 당당하다.
수 억 만년(?)에 걸친 침식작용으로 바다 가까이 생겨난 청초호와 영랑호의 모습도 빠뜨릴 수
없는 풍경의 하나. 이들 호수는 대동여지도에도 판각돼 있는 걸 나중에 알았다.
물론 설악의 최고봉인 대청봉과 중청 소청도 장엄하다.
생각하면 어떻게 나한봉을 지나고 어떻게 공룡 최고봉인 1275를 지나 희운각 대피소까지
왔는지 아득하다.
분명한 건 5km에 달하는 거리를 두 발로 5시간 가까이 걸어서 왔다는 것!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못한 길’처럼 길은 희운각에서 두 갈래로 갈린다.
대청으로 가는 길과 천불동계곡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의 일정은 대청봉에 있지 않다.
설악산 최고봉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돌계단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한다.
산행 중 가장 힘든 시간이다.
체중이 두 다리에 집중돼 다리 근육이 파열되고 무릎관절을 다치기 쉽다.
힘들게 한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얼마쯤 내려갔을까?
기암절벽 아래 계곡 물이 흐른다.
천개의 불상이 새겨진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천불동(千佛洞)계곡이다.
일행 모두 신발을 벗어던지고 계곡물에 발을 씻는다.
물이 너무 차가워 오랜 시간 발을 담글 수 없었지만 노독은 어느 정도 풀린 듯...
별류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천불동 계곡은 인간 세상이라 보기 힘든 비경의 연속이었다.
공룡능선에선 이미 다 지고 없어진 단풍이 천불동 계곡에서 절정의 마지막 부분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실 설악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천인단애한 바위사이로 굽이치며 흐르는 계곡물은 에메랄드보다 더 맑았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와 그 물을 담고 있는 소(沼)는 인간이 만든 언어나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장치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다만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많은 사람들로 이 같은 풍경을 고즈넉하게 감상할 수 없음이
좀 아쉬웠다랄까.
비선대. 어제 밤 달빛이 은은히 스며들어 빛나던 바위는 가을 햇살에 자신의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햇빛산악회 운영자인 느티나무님에게 물으니 왼쪽이 장군봉 오른쪽은 적벽 그리고 가운데는
음... 가운데는... 잊어버렸다. ^^
어쨌든 신선이 하늘로 올랐다는 비선대가 바로 이곳!
중국사의 한 편린, 6국을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생각났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의 최 정점에 서있던 그가 염원했던 것은 불멸...
그는 불멸불사의 신선이 되고자 했으나 지천명의 나이도 되기 전 의문사 하고 말았다.
뿐인가. 그가 죽은 뒤 진 제국은 15년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으니 부질없음이었다.
생의 부질없음은 하루의 양식을 걱정하며 살다간 일개 필부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나
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산행은 원점회귀였다.
설악동을 출발 신흥사를 지나 마등령에 올라 공룡능선을 타고 희운각대피소와 천불동 계곡을 지나
다시 설악동으로 돌아오는 것!
어제 밤 지났던 비선대를 지나 신흥사로 내려오는 길...
일행과 더불어 비빔밥을 시켜먹고 돌려가며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미처 쓰지 못했지만 어제 야간 산행과 공룡능선에서 한 회원분이 주셨던 맥주는 환상 그 자체였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분에게 감사... 크~~~ ^^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6시.
서울 신사 역에 도착한 것은 10시 40분 무렵이었다.
겨우겨우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씻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가을 설악으로 날 안내해준 방 선생님과 산행을 같이한 햇빛산악회
여러분 그리고 느티나무님 ...
저... 정회원으로 꼭 좀 등업 시켜주세요 ^^
첫댓글 후기 잘 읽고 갑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 오르막 산행이 조금은 힘이 들어도 단풍이 천불동에만 남아 있어서 방향을 그렇게 정했구요 적벽-무명봉-장군봉을 삼형제봉이라고 부르고 삼형제봉 릿지코스가 등반가에게 인기있는 코스입니다 햇빛 암벽 팀 사진방에 오셔서 구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