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6,41)
'또 하나의 금구!'
오늘 복음(루카6,39-42)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없다.'는 비유를 들어 '남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확고히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보고 고칠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허물을 고쳐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만 비판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바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눈먼 위선자였습니다.
아는 바를 실행하지 않은 위선자,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은 위선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그런 위선자들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마태23,1-36 참조)
뜨끔합니다. 저도 나 자신은 잘 살지 못하면서 신자들에게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눈먼 인도자가 되지 않도록 더욱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너를 심판하는 것은 '내가 너보다 낫고, 내가 너 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교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1코린8,1-2)
그렇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아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크리소스토모'는 금구(金口.황금입)라는 뜻인데, 그래서 '요한 금구'고도 합니다.
설교를 너무나 잘하셔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입으로만이 금구가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금구'가 됩시다!
(~ 1열왕8,53)
(이병우 루카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