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 진주만에서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격침된 애리조나 함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루이스 콘터가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애리조나 함의 승무원 생존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졌다.
고인의 딸은 1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심장 이상으로 눈을 감았다고 영국 BBC는 다음날 전했다. 딸은 부친이 생전에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고 로이터 통신에 들려줬다.
고인은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했을 때 오아후 섬 부근에 정박 중인 미군 태평양 함대 배속 애리조나 함에서 경계 중이었다. 일본군의 기습은 그 전까지 중립을 표방하며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던 미국이 참전하게 만들었다. 살아남은 콘터는 그 뒤 미 해군 조종사로 태평양 지역 섬들에 대한 폭탄 투하 작전에 투입됐다.
2014년 12월 2일 애리조나 함의 생존자 9명 가운데 콘터를 비롯해 존 앤더슨, 돈 스트래튼, 로렌 브루너 등 4명이 기자회견을 갖고 만남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콘터의 사망으로 이제 진주만 공격 생존자 수는 19명으로 줄었다고 AP 통신은 생존자 후손들을 대표하는 조직의 집계를 인용해 보도했다.
콘터는 당시 스무 살의 조타수였다. 그는 기습을 받은 지 몇 분 안돼 침몰돼 승무원 대부분이 희생된 애리조나 함에서 살아남은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당시 진주만과 오아후 섬의 다른 곳에서 희생된 미국인은 2000명 이상인데 그 중 절반이 애리조나 함에서 나왔다. 많은 이들은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고인은 2002년 AP 인터뷰를 통해 희생된 이들이야말로 그날의 진짜 영웅들이었다며 "그리고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년에 이뤄진 다른 인터뷰를 통해선 폭탄 하나가 갑판 아래 탄약 저장고를 폭발시켜 애리조나 함이 물 밖으로 9~12m 들어올렸다고 털어놓았다. 그 뒤 몇 분 만에 "녀석들이 불 밖으로 뛰어나갔고 옆쪽으로 달아나려 했다. 바다에는 모두 기름이 불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자신과 다른 생존자들이 부상자를 돕고 배를 포기하기 전에 구조작업을 진행했다고 묘사했다.
고인은 나중에 해군 조종사로 변신했는데 또다시 죽을 고비를 넘겼다. 1943년 임무 수행 중 격추돼 승무원들과 함께 구조보트에 올랐다. 이들은 조류에 휩쓸려 상어가 득실대는 수역을 지나 적군이 점령한 뉴기니 섬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구조됐다. 고인은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그 뒤 아이젠하워,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에 자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