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의 유언
글 : 고 방윤석 신부님
우리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순교란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굳건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과 죽은 다음 내세가 분명히 있다는 철저한 믿음입니다.
순교자들은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려도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러기에 늘 은총의 이끄심을 체험하였고,
고문과 협박을 이겨내고 기꺼이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순교자들의 편지와 유언 등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우선 어머니가 아들에게 타이르는 말씀입니다.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는 처녀로서 충남 덕산(德山) 사람
홍 지영의 후처로 들어가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전처 소생의 아들
홍필주(洪弼周) 필립보를 영세시키고 나중에 아들과 함께 잡혔습니다.
고문을 받아 아들의 마음이 약해지려 하자 감옥 앞을 지날 때
창살 앞으로 손을 내밀어 멈추게 한 다음, 얘야, 우리 필주야,
오주 예수께서 너의 머리 위에 계시면서 너를 내려다보신다.
네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 소경과 같이 어리석게 네 영혼을
마귀에게 주려고 하느냐? 너와 내가 주를 위하여 이렇게 벌써
여러 달째 고생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올 영원한 天福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나와 함께 영원한 천국으로
먼저 가서 할머님과 네 누이와 처를 기다리자.
사내가 용맹하고 굳세어야 하지 않겠느냐? 보아라, 여기 많은
여자들이 다 우리 主를 위하여 감심으로 죽기로 굳게 결심하고 있다.
너도 잠깐 지나가는 세상을 생각치 말고 영원한 天福을 생각하라.
오늘 형리 앞에 가서 지금까지 약하게 먹었던 마음을 굳세게 증명하여라.?
이 말을 들은 아들 필주는
어머니 걱정 마세요.
잠시 제가 마귀 유혹에 빠졌나 봐요.
관장 앞에 가서 그전과 같이 견디겠습니다.
(그리하여 필립보는 어머니 뒤를 이어 28세에 순교하였습니다.)
강완숙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훈장-여교사-이며
주문모 신부를 모셨던 분으로 교회사에서 별칭 여걸로 통합니다.
40세에 순교하셨습니다.
딸이 친정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순이(李順伊) 루갈다가 옥중에서 쓴 글입니다.
어머니, 저에게 죽음이 닥쳐왔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천주의 사랑에서 나오는 명령에 거스르지 마십시오.
어머니의 딸인 저는 어머님을 위하여 천국과 영원한 행복의 문을 열어서
무한한 즐거움의 값을 미리 가져다 드리려고 먼저 가려 합니다.
이제는 모든 친척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우러러 보며
영원히 즐기게 될 것을 바라는 것 외에 무슨 희망을 갖겠습니까?
머리에는 영원한 행복의 관을 쓰고 마음은 천상의 모든 즐거움을 맛보면서
어머님을 이끌어 영원의 고향으로 모셔 들일 것입니다.
할 말 많으나 경황이 없어 이만 붓을 놓습니다.
(이 루갈다는 꽃다운 나이 20세에 순교하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루갈다의 동생 이경언(李景彦) 바오로가 아내에게 쓴 옥중편지입니다.
그의 아내는 외인 출신으로 시댁 식구들이 잡혀 순교하여
패가 망신하게 되므로 자주 가출하여 남편을 무던히도 괴롭혔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쓴 편지입니다.
나의 아내여, 다 용서해 주오.
나를 용서해 주오. 나 같은 남편이 또 어디 있겠소?
당신에게 사죄할 말은 붓으로도, 말로도 다할 수 없소.
이제 나는 죽음 앞에 다다랐소.
이제부터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소.
뉘우치고 한 되는 생각만 가슴에 가득할 뿐이오.
비록 내가 당신의 남편된 의무를 옳게 다 못했다 하더라도
만일 내가 천국에 올라가면 당신을 위해 전구해 드리고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도록 기구해 드리리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허락된 행복을 전하기 위한 심부름꾼으로서
당신을 맞아 손에 손을 잡고 영원한 즐거움에로 인도하리다.
내가 또 한 가지 당신에게 간절히 권고하고 싶은 것은
무슨 일에든지 천주의 명령에 복종하고 지나간 일을 통회하며
이 세상을 꿈세상으로 여기고 영원한 세계를 참 고향으로 여기시오.
여보 당신도 지내 보았으니 알겠지요.
이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귀하게 알 것이 또 무엇있겠소 ?
며칠이 지나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마지막이외다.
이제야 나는 처음 깨달았소. 무엇이든지 조그마한 일에라도
천주의 섭리대로 할 것이지 사람의 계획이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소.......
이 세상에서 당신의 지팡이가 되고 기둥이 될 아들 정의와
그 누이를 부디 잘 기르고 가르쳐서 나의 뒤를 따라 오도록 해주시오......
머지않아 주의 곁에서 영원히 만날 것이니
쓸데없이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재판소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오.
이만 붓을 놓소. 당신의 지아비 바오로
순교를 앞둔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이르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역시 이경언의 편지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천주의 은혜로 내가 너희들의 아비가 되었다.
그러나 너희들이 철나기 전에 이 아비는 허물이 많아서
너희들에게 아비노릇을 다 못하였다.
너희들 앞날을 위하여 끼쳐 줄 아무런 덕도 없고
재산도 없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그러나 두어가지 유언만 남기고 가노니, 충실하게
천주의 명령을 잘 따르고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 하도록 힘쓰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공손하고 친절해야 한다.
만일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착한 길을 닦았다면
반드시 아버지가 가는 천당에 올 수 있다.......할 말은 많으나
종이와 붓이 부족할 뿐 아니라 심한 형벌에 내 다리는 으스러지고
머리에는 형틀이 씌워져 있어 고개를 들 수 없고
손이 떨려 이 이상 더 쓸 수가 없다. 다시 말하노니 착하게
한평생을 마치고 거룩한 죽음을 맞기를 천만 번 바라마지 않는다.
(이 바오로는 37세에 순교하였습니다.)
다음은 파리외방전교회 불란서 신부님이 이역만리 본국에 계신
부모와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성 정 샤쓰땅 신부님께서 자수하시기 직전에 쓰셨습니다.
가장 사랑하올 부모님, 주의 평안을 비옵나이다......
저의 영혼은 천주께 바쳐진 것이오니 만일 이때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의 것이 될 수 있다면 !
부디 저의 행복을 슬퍼하지 마시옵고 천만 번이나 감사하여 주시옵소서.
아, 사랑하올 아버님, 어머님, 형제, 자매, 친구들이여,
아마도 이것이 저의 마지막 편지일 것 같사오니,
부디 저의 마지막 인사를 받아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재물에는 혜택을 받지 못하였사오나,
십자가에 가득한 이 축복받은 전교지방에 저를 불러주신
천주님의 섭리를 천만 번이고 감사하고 있나이다.
이제 곧 떠나가야 하겠기에 자세히 쓸 수가 없나이다.
죽기 전에 붓을 들 기회가 있으면 다시 즐겨 상서하오리다.
천국에서 기다리오리다. (36세에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본국에서 뒤늦게 전해들은 들은 그의 절친한 친구 구노는
친구의 순교를 기리는 뜻에서 아베마리아를 작곡했는데
그 유명한 ‘구노의 아베마리아’입니다.)
이번에는 어린이들의 대화를 들어 보겠습니다.
리델 신부가 안드레아라는 교우집에 들어가려 할 때 안에서 어린이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역시 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12세된 장녀 안나가 어린 남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얼마 안 있으면 신부님하고 아버지, 엄마를 잡으러 올꺼야.
그리고 우리들도 데리고 가서 ‘천주교를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거다.’ 하고 말할거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니? ” 그러자 장남이 말했습니다.
“난 이렇게 말할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할 거예요.
저는 천주를 배반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제 목을 베면 천주께 갈 거예요.’ ”
작은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관장에게 이렇게 말할거야. ‘난 천당에 가고파요.
나으리도 교우면 천당에 갈텐데 교우들을 죽이니까 지옥에 갈 거예요.’ ”
그러니까 안나는 두 동생을 껴안으면서 말했습니다.
“좋다. 우린 모두 죽어서 아빠 엄마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천당에 갈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려면 천주께 기도해야 된다.
매를 많이 맞을테니까 말야.
우리 머리칼과 이와 손을 뽑고 굵은 몽둥이로 때릴거야.
신부님이 그러시는 데 기도를 잘하지 않으면 그걸 견디지 못할거래.”
얼마 후에 두 동생 중의 나이어린 동생이 엄마에게 가서
“엄마 ! 애기도 죽일꺼야 ”
(그의 어린 동생은 생후 14개월 밖에 되지 않았었습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역본 下 448쪽> 참으로 기특한 아이들입니다.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보내는 당부말씀입니다.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인
교우들 보아라. 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大事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賞주실 것이니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라노라.
잘 있거라. (25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순교자들의 유언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순교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의 원형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순교란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
즉 수고·수난·죽음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순교자들도 이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우리 한국 순교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순교자의 전 생애는 순교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잡히면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히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둘째로, 우리 순교자들은 어려움 중에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가산이 몰수되고 산중으로 쫓기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중에서도
애덕을 실천하여, 다른 비신자 동네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생겼어도
신자들은 굶어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 교회 공동체와 흡사하였고
이에 감동받은 외인들이 자진 입교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셋째로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자가 많을수록 신자가 더욱 많이 늘어났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라고 테르툴리아누스 교부가 말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박해란 무엇일까요?
천주교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들입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가족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으십시오.
그들은 박해자들을 용서하고 따뜻하게 대했으며 끝까지 인내로이 설득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순교란 무엇일까요?
순교란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기꺼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바칠 일은 없으므로 작은 순교를 해야 합니다.
본능의 유혹 앞에서 참아야 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으로 견디어 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선 가까이 있는 부부부터 시작하여 자녀, 형제, 친구,
교우들 간에 서로가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아집과 편견, 폭력 등으로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9월은 이 땅의 순교자들을 더욱 기억하고 공경하는 달입니다.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을 비롯하여 성인반열에 오르지 못한
순교자들을 기억위하여 기도하며 그분들의 삶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때입니다.
순교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순교 영성은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순교의 기본자세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매일의 기도와 선행,
그리고 성사생활에 충실함으로써 그분들의 삶을 본받기로 합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 출처 : 대전충남가톨릭문학회 2008년 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