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문은 바람을 탄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다독거리면서 동정하고 위안은 못 할망정 기다렸다는 듯이 짓누르며 짓밟고 왜 힘겹게 하는지. 그것도 확실치 않은 떠도는 소문을 엉겁결에 듣고 본인에게만 유익하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며 마치 모두가 사실인 것처럼 상대방을 무조건 매도하려 한다. 지나치게 약삭빠르고 너무 매정하다. 잘못되어 이런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 기다린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곁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서 마치 남의 잘못이나 불행이 곧바로 내가 잘하고 행복인 양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떳떳하고 당당한 경쟁보다는 요행수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있는 것에 없는 것 탁탁 털어 흠집에 흠집을 보태고 부풀리면서 못된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간다. 그러다가 뒤늦게라도 헛소문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 어떤 모습일지.
여기저기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많다. 좀 참고 생각할 시간도 없다. 마치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과도 같다. 진위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섣불리 속단한다. 왜 그런 일에는 그렇게 박력이 있어 보이는지 아리송하다. 지나가면서 돌 하나씩 던져놓으면 돌무더기가 된다. 물방울이 모이고 모이면 냇물이 된다. 잔잔한 바람도 모이면 태풍이 될 수 있다.
나와는 무관하다고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말하려 한다. 혹은 심술을 돋우면서 슬쩍 던져버리는 말에 그 누군가 당사자는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압사할 수 있다. 소위 여론재판이나 같은 것이다. 그야말로 떼거리로 몰려들어서 생매장하는 꼴이다. 비록 그 하나는 약하면서 보잘것없는 것 같아도 모이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군중의 힘이 된다.
평소에는 이웃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같다고 한다. 서로 보살피면서 돕는다고 한다. 소통하며 이해한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일이 벌어지면 돌변하는 것 같다. 순한 양이 아니라 본능적인 사나운 들개가 된 듯 마구 물어뜯으려 한다. 그래야 그동안 골머리 아팠던 것이 한순간에 거뜬하게 풀리는가 보다. 은근히 짓눌린 억울함이 드디어 보란 듯 벗어나나 보다.
마치 제가 잘나 우뚝 홀로선 것 같은가 보다. 대신 큰 착각 속에 빠졌다. 그나마 잊어버렸었거나 잊었던 것 같은 자신을 되찾았다면 잘된 일이고 할까 보다. 그렇다고 그간 잘 지내 오다가 뜬금없이 뒷전에서 화풀이로 아무렇게나 내뱉듯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아쉬운 사연이 있었으면 당사자끼리 우선 언제 어디서 무엇이 섭섭했었는지를 차분히 헤아려볼 일이다.
일방적인 괴롭힘의 가해였는지 혹은 혼자만의 오해였는지 가려볼 필요가 있다. 어디서 막히고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알아야 풀어낼 수 있다. 내 잘못이 아니면서 그 사람 잘못이라 할 수 없는 단순한 다툼이었는지 모른다. 일방적일 수는 없다. 더 큰 상처가 만들어질 수 있다. 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일에 자꾸 앙금만 쌓여 간다.
산행 중 굽이굽이 능선길에서 오른발 왼발 한 발자국을 어떻게 내딛는가에 따라 능선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갈라서기도 하고 그냥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엉겁결에 잘못이었든 다분히 고의적이었든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현실은 고작 한 걸음이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사서 고생이라고 헤매다가 다시 만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남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툭툭 한 마디씩 내뱉는다. 그런데 바로 내 일이라면 어떨까. 고스란히 억울함을 뒤집어쓰고 제대로 하소연조차 못 할 때 보란 듯이 앞장서 나발 불고 다니는 모양새다. 누구 말이 옳은 것인지. 누구 말이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 한쪽 말만 일방적으로 들어서는 더 가물가물해진다. 섣불리 판단할 수 없으면 가만히 중립을 지켜야 한다.
잘난 척 한쪽 편을 들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내 밥 먹은 개가 발뒤축을 문다.”라고 한다. 평소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는지 때로는 잘 아는 사람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진다. 사실 칭찬하는 사람도 헐뜯는 사람도 대개는 나를 잘 알며 나와 친분이 있거나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다. 서로가 알지 못하면 관심도 없고 그러려니 그냥 흘려버려도 그만일 하찮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잘 안다고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아 오히려 흠이 되기도 한다. 진정성이 담겨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섣부르게 알면서 막연한 시샘까지 다분히 섞여 일방적인 모함일 수도 있어 경계해야 한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하듯이 남의 마음은 더 모를 일이다. 순간적인 감정에 오락가락 갈등을 겪는다. 훗날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한다.
억새는 높은 산자락 바람받이에 즐겨 산다. 억새가 아무 때나 마구 흔들리는 것 같아도 온갖 바람이 멈추고 지나가면 중심을 꽉 잡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제 자리에서 꼿꼿하다. 오히려 더 짱짱하다. 하지만 가을도 늦어지면서 하루 한날같이 외로워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 끼리끼리 당기고 밀치며 부딪친다. 깊은 밤이면 억새밭에서 으악으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누가 좋은 뜻으로 한 말인지, 너무 안쓰러워서 동정하는 마음으로 한 것인지 억새밭에 으악새가 살면서 이따금 슬피 운다고 하였나 보다. 이왕이면 희열이 넘쳐 노래 부른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튼 억새 자신은 몰라도 지나는 바람이 여기저기 신바람 나게 퍼뜨리고 다니면서 소문이 난다. 그 사이에 억새는 더는 못 견디겠는지 하루 다르게 누렇게 말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