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원의 대 제국’의 심장, 하라호룸 유적지
▼ 대 초원으로 뻗어나간 길
몽골인민공화국의 수도인 우란바토르(Ulaanbaator) 시내를 벗어날 즈음에 평행선을 긋고 이어진 철로가 보인다. 멀리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이곳을 경유하여 계속 북쪽으로 향해 러시아 부리야트공화국의 수도인 우란우데에서, 다시 두만강 건너편 우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만나 모스코바까지 이어지는 바로 그 철로이다. 특히 이 로선은 바다같이 넓고 푸른 바이칼호수를 남으로 끼고 돌아서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미도(美都) 이르쿠츠크를 경유하여 종착지까지 무려 일주일간을 숨 가쁘게 달려간다고 한다.
마침 그 철로 위로, 아마도 중국의 싸구려 물자를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긴 정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있지만, 며칠 뒤에는 내가 그간 벼르던 바이칼 호수를 가기위해 타야할 바로 그 기차인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바이칼호수의 여신이여~~”
각설하고, 호수의 여신을 만날 기대는 일단 미루어 두고, 우선 대 초원에 마치 신기루처럼 생겨났다가 몇 세기도 못 채우고 사라져 간 ‘초원의 대 제국’의 역사 속으로 우선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이어지는 길은 막막한 대 초원 사이로 뻗어 있다. 그러나 가끔 길 왼편으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황량한 모래사막도 드문드문 펼쳐지곤 하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몇 무리들의 낙타들이 수 많은 양떼들과 말들 사이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이채로웠다. 아마도 이는 대 고비사막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펼쳐지리라는 증거로 보인다.
검색되는 모든 자료들이 영어식으로 ‘카라코룸(Karakorum)’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여기 본토사람들의 발음은 분명히 ‘카’ 가 아니고, 된 발음의 '‘하’에 가까운 소리로 발음한다. 즉 ‘하라호룸’이 되는 셈이다. 실지로 키릴어로 된 지명표기(Xархорум)에도 ‘(X)’, 즉 ‘하’로 적혀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몽골을 찾는 이유는 대개 초원이나 사막을 체험하는 색 다른 경험을 맛보기 위해서이지만, 그중 나 같은 사람들-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곳 하라호룸 유적을 찾게 마련이다.
우란바토르에서 하라호룸 유적지가 있는 ‘하르호린’ 마을까지는, 점심을 먹으러 30분 정도 쉰 시간과 볼일 급한 사람을 위해 한 두번 잠깐 정차할 때를 뺀 나머지 시간을 온통 달려도, 거의 하루를 걸리는 만만치 않는 거리였다.
▼ 점심을 먹기 위해 들리는 중간 역참 마을들의 풍경
▼ 끝없이 펼처지는 대 초원
하르호린 마을에 있는 유적지는 그 동안 수 세기 동안 철저하게 망각의 베일에 가려 있다가 근래에 들어와서 고고학적 발굴조사에 의해, 몽골 대제국의 한 때의 도읍지였던 한문기록으로 ‘화림(和林)의 만년궁(萬年宮)’이란 곳으로 밝혀졌다. 비록 3대에 거쳐 약 24년간(1235~1259)이란 짧은 기간의 도읍지였지만, 특히 우리들에게는-아직도 순수한 우리 것과 ‘호풍(胡風)’이란 이름의 ‘몽골풍’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티벳풍’의 구별이 어려운 우리 한민족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몽골제국을 무너트린 명나라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고 말살된 원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실물적인 고적들을 쉽사리 접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북방초원에 처음으로 국가형태를 수립한 기원전의 수수께끼의 제국, 흉노족에 이어 돌궐족, 거란족에 이어 대초원에 흩어져 있던 몽골부족을 규합,통일하여 국가의 체계를 갖춘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 한(汗:Khan)은 그 후 세계로 눈을 돌려 정복정쟁에 돌입한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대 제국을 이룩하고는 새로운 도읍지의 건설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기후가 부드럽고 비옥한 땅인, 오르혼 강녘을 그 지점으로 찍지만, 그러나 그는 이 작업을 착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에 둘째 아들 우구데이(1228~1238)가 제2대 대한(大汗)으로 등극하면서 이 유업을 계승하는데, 역사적 평가로는 그는 칭기즈 칸의 아들 중에서 가장 지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신임한 인물은 야율초재라는 측근이었는데, 아버지 때부터 통치의 조력자 역할을 해왔으며 행정 조직과 통신망을 정비하여 드넓은 제국을 통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새 수도의 건설작업도 총책을 맡았다고 한다.
새 수도의 중심에는 화강암 반석 위에 64개의 나무기둥으로 떠받쳐진 거대하고 호화로운 직4각형의 궁전을 짓고 ‘투멩암갈랑’이라는 불렀다. 바로『원사(元史)』에 의하면, 1235년 봄 우구데이는 하르호린의 부근에 있는 ‘달란다비스’에서 소집한 ‘쿠릴타이’란 중대한 부족회의에서 그곳을 제국의 수도로 선포하고 공사를 시작해 불과 1년 만에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흥원각비>에는 칭기즈 한 15년(1220)에 그가 ‘화림’에 도읍을 정했다는 기록도 있어,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뻴리오 등 일부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1220년 칭기즈 정도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은 칭기즈 당시는 군사근거지로서의 본영쯤은 될 수 있었으나 도읍은 아니었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하여간 새로 대제국의 주인이 된 우구데이는 중원의 패자인 금(金)나라를 정복하고 고국으로 개선한 후 그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중원이나 중동의 이슬람 지역을 정복했을 때 포로로 잡아온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새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전공을 세운 황족이나 귀족들에게도 만년궁 주변에 건물을 짓도록 하였기에 이때부터 하라호룸은 웅장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 유적지 인근의 하라호룸박물관에 전시된 모형도에 묘사된 만년궁의 모습. 커다란 연못과 화덕 등도 보인다.
▼ 사대문과 궁전을 주위로 건물들에는 귀족들이나 민간용 건물외에도 불교 이슬람 등의 종교시설등으로 보이는 것들도 보인다.
▼ 대칸의 행열도
▼ 행열도 2
몽골제국 제4대 대한(大汗)인 쿠빌라이가 대도(大都)라는 이름으로 현 베이징으로 천도를 하기 전까지, 이 만년궁의 위용은 거의 파라다이스였던 것으로 묘사되고 잇다. 1254년에 이곳을 방문한 프란체스코 수도사 기욤 루브룩의 기록이 그중 가장 구체적이고도 생생하다.
“남향을 향해 중국식으로 지은 만년궁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한 은제(銀製) 나무와 [천장에 매달린 사자형상의] 사자입에서는 말 젖과 포도주, 마유주, 꿀주, 쌀술(米酒) 등 음료가 줄줄이 흘러내리고 궁전 안에는 기둥이 두 줄로 맞서 있으며 맨 북쪽 대상에 대한의 왕좌가 있다. 중앙 공간에는 대한에게 술을 따르는 여러 대신들과 세계 각국에서 공물을 가져온 사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대한은 신처럼 가운데 옥좌에 정좌하고 있으며 그의 우측에는 남자들이, 좌측에는 여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황후 중 한 명만이 대한과 배석하고 있다.
좁은 좌석에서 몸이 주리를 틀듯 욱신거리기 시작할 때 ‘하르호린’이란 이정표와 마을이 나타난다. 그리고 눈 아래 푸른 초원 위에 거대한 사각형태로 눈부신 백옥을 일렬로 상감하듯 박아놓은 것 같은 수 많은 티베트식 ‘초르텐 까르뽀[白塔]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속에 티베트식 사원의 황금지붕도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후에 만년궁 유지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이곳이 몽골제국의 첫 수도였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는 숱한 연구와 비정을 되풀이하는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 하라호룸에 관해서는 한눈으로 된 원나라의 정사인 『원사』를 비롯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 비교적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우선 유적지로 바로 직행하지 않고 인근의 하라호룸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싼 촬영허가증을 산 다음 입구에 설치된 <하라호룸 모형도>에서 몇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 그것들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유심히 알아내고자 한 것은 다음 몇 가지 사항에 관한, 내가 가설의 일종의 근거자료였다. 우선은 만년궁의 모양새가 얼마큼 현재 티베트에 남아 있는 원대의 건물들과 달은 점이 있느냐는 것이고 그 다음이 모든 종교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던 원대에 그 안에 어떤 종류의 종교시설들이 분포되어 있을까? 하는 것과 그 다음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도로망을 운영하던 원대의 역참시설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무려 3시간 동안 근무자들의 눈총에도 불고하고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 가며 내린 결론은 “과연~~” 이었다.
첫댓글 비레탄트 입성은 언제 하시는지요?
8월 초에 합니다
와우~~인터넷 사정이 좋아지샸나봐? ..
역시 무개감이 차별화됩니다. 꾸벅~~
Wow~!!!
바이칼 호수의 여신을
만나시기를~~
아, 초원의 제국이여 ~
그 과연은 다음 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