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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경호우(福輕乎羽)
복이란 새털보다도 가볍다는 뜻으로, 자신의 마음에 따라 행복하게 된다는 말이다.
福 : 복 복(礻/9)
輕 : 가벼울 경(車/7)
乎 : 어조사 호(丿/4)
羽 : 깃 우(羽/0)
출전 : 장자(莊子) 인간세편(人間世篇)
福輕乎羽, 幕之知載,
禍重乎地, 幕之知避.
복은 깃털보다도 가벼운데, 이를 지닐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화는 땅 덩어리 보다도 무거운데, 이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깃털은 매우 가벼워서 좀 많이 지녀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땅 덩어리는 지극히 무거워서 사람이 이를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복은 쌓기가 쉬울 뿐 아니라 많이 지녀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복을 좀 많이 쌓고 지닐 법 한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화는 짓기가 무섭고 그 무게가 땅 덩어리처럼 무거운데 사람들은 이를 피할 줄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복을 차지하고 싶고 화는 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소망은 이루기가 매우 쉽다. 복을 많이 쌓고 화를 적게 저지르기만 하면 된다. 가볍고 무거운 것의 차이만 가릴 줄 알면 된다.
心安茅屋穩(심안모옥온)
性定菜羹香(성정채갱향)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아늑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영국의 J. 러스킨(John Ruskin)은, "이 우주가 즐겁고 화락한 곳인가?, 혹은 슬프고 소란한 곳인가? 그것은 논의하지 말라"고 했다.
내 마음에 따라 이 우주는 즐거운 보금자리도 될 수 있고, 슬픔과 괴로움에 가득찬 구렁텅이도 될 수 있으며, 우리는 마음에 따라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있을 뿐이란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그것은 끝 간 데 없이 치닫기 일쑤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느끼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지지 않아도 느끼며, 귀에 들리지 않아도 느낀다. 마음이 가면 발도 가볍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모든 것이 불안하게 다가온다.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면 어떻게 초가집 만이 아늑할 것이며, 나물국만이 향기로울 것인가?
흐르는 물도 아늑할 것이며, 구르는 돌에서도 향기가 날 수 있다. 바라볼 수 있는 모든 죽음도 아늑할 수 있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향기를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마냥 편안하기만 한 마음이란 어쩌면 정지된 마음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호수처럼 잔잔히 고여 있는 물일 것이며 바람 한 점 없는 망망대해, 그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가 아니다. 마냥 아늑하기만 한 것은 죽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마음이란 편안한 가운데서 항상 흐르고 있어야 한다. 쉴 새 없이 흐르고 쉴 새 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 흐르는 마음 한 가운데에 그대를 실으라. 그리고 항해하라. 끊임없이...
라즈니쉬가 말했다. "이성(理性)은 바깥쪽으로 움직이고 타인에게로 열린다. 마음은 안쪽으로 움직이고 자신에게로 열린다."
화엄경(華嚴經)에는 '일체유심조(一切 唯心造)'가 있다. 이세상 모든 것은 오직 마음먹기에 따른다. 원효(元曉)가 의상(義湘)과 함께 구도(求道)길에서 한모금 물로 득도(得道)의 깨우침을 했다는 유명한 예화도 있지 않은가.
복경호우(福輕乎羽)
장자(莊子)는 인간세편(人間世篇)에서 복경호우(福輕乎羽)라고 했다. "복은 새털보다 가벼운 것으로 자기의 마음 여하에 따라 행복을 찾는다"는 뜻이다.
일찌기 장자(莊子)가 설파했다. "복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이를 지닐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화는 땅덩어리보다 무거운데 이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언제나 우리 모두는 복(福) 받기를 기원한다. 그렇지만 새털보다 가벼운 복(福)을 쌓고, 땅덩어리보다 무거운 화(禍)를 피할 줄 아는 지혜도 생각해 보는지 의문이다.
여기에 또 한가지 더 덧붙여 순자(荀子)가 말한 진정한 복을 마음 깊이 새겼으면 한다. 복은, 화(禍)가 없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福莫長於無禍). 그렇다, 부(富)나 명예가 없다고 해도 가족과 오순도순 지내는 것 이상의 큰 복이 없겠다.
광막(廣漠)한 우주공간에 나는 과연 얼마만한 크기의 존재일까? 영겁(永劫)의 시간 흐름속에 나는 과연 얼마동안 사람으로 살다 가는 것일까? 복은, 세속적인 부귀영화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옛 선비들은 곧 잘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애써 그 답을 얻어 내려 했다. 어느 누구는 사람의 일생을 천리마(千里馬)가 문틈 사이를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누구는 바닷가의 한 톨 모래알과 같다고 했으며, 부귀영화는 뜬구름과 같다고도 했다. 사람에 따라 살다보면 복이 있다 없다 떠도는 소문이라도, 이를 듣고 잘 살피면 복이 될 수도 있다고들 한다.
들짐승이나 산새들도 사람들이 그들을 보살피고 먹이를 주면 사람에게 다가오고, 집에서 기르는 물고기나 가축들도 사람이 그들을 잡으려 하면 기를 쓰고 달아나는 것과 같이, 누군가가 자기들을 이롭게 한다면 곧 알아차리고 다가와 돕지만, 반대로 누군가가 자기들을 팽개치거나 해롭게 하려 한다면 곧 알아차리고 그를 떠나거나 배척할 것이다. 즉 복도 이와 같다.
복덕(福德)을 짓는데 인색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 충족에만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존하려는 마음, 보시(布施)하는 마음으로 살아 갈 때 복은 저절로 쌓이는 것이다. 이 세상은 자신이 뿌린 데로 거두어 지는 게 세상사의 원칙이다, 그렇게 되도록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며, 이것은 억겁(億劫)을 지나도 하늘과 땅이 뒤바뀔 수 없는 변함없는 이치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세상만사는 각자의 마음 씀을 나타내는 것인바, 누구든지 다복(多福)하게 살고자 하면 진리를 믿고 진리로 등불 삼아 내적으로 삿된 것, 어리석은 것 등으로 점철된 무명심(無名心;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 無智)을 지혜의 광명으로 바꾸어 정성을 다해 기도 수련하는 신심(信心)의 청정(淸淨)을 추구해가야 한다.
지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존경하고 자신을 낮추며 겸손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되면 복은 스스로 굴러 오게 된다는 진리를 만나게 될 것이나, 그렇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면 복과 덕은 도망가게 될 뿐이다.
금강경(金剛經)에도, “너니 나니 하는 아상(我相)이 없으면, 복중에 최대의 복이 되어 마침내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도, 자기가 그렇게 겸손했다는 상이 마음속에 흔적이 없을 때,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며 참 성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은 둥글지도 모나지도 냄새도 형체도 없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는 것이다. 오직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있다.
心安茅屋穩, 性定菜羹香.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아늑하고 세상이 아름답다.
J.러스킨(Ruskin John)은 "이 우주가 즐겁고 화려한 곳인가, 혹은 슬프고 소란한 곳인가, 그것은 논의하지 말라"고 했다. 내 마음에 따라 이 우주는 즐거운 보금자리도 될 수 있고, 슬픔과 괴로움에 가득 찬 구렁텅이도 될 수 있으며 우리는 마음에 따라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있을 뿐이란 것이다.
마음을 쓰면 쓸수록 파고드는 버릇이 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그것은 끝없이 치닫기 일쑤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느끼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지지 않아도 느끼며, 귀에 들리지 않아도 느낀다. 막힌 데가 없는가 하면 때로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꽉 막혀 있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앞서면 발도 가볍지만 마음이 뒤뚱거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혼란을 맞는다.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면 어떻게 초가집만이 아늑할 것이며 나물국만이 향기로울 것인가? 흐르는 물도 아늑할 수 있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향기를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마냥 편안하기만 한 마음이란 어쩌면 정지된 마음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호수처럼 잔잔히 고여 있는 물일 것이며 바람 한 점 없는 망망대해, 그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가 아니다. 마냥 아늑하기만 한 것은 죽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마음이란 편안한 가운데서 항상 흐르고 있어야 한다. 쉴새없이 흐르고 쉴새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 흐르는 마음 한가운데에 그대를 실으라, 그리고 항해하라. 끊임없이...
인도의 신비가, 구루 및 철학자 라즈니쉬가 말했다. “이성은 바깥쪽으로 움직이고 타인에게로 열린다. 마음은 안쪽으로 움직이고 자신에게로 열린다.”
壽爲五福之首, 旣得稱老, 亦可云壽.
장수(長壽)를 누리는 것은 오복(五福)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인데, 늙었다고 일컬어지기만 해도, 또한 장수(長壽)했다고 말할 만하다.
更復食飽衣暖, 優游杖履, 其獲福亦厚矣.
여기에 더하여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옷 입으며, 지팡이 짚고 신 신고 즐거이 노닌다면, 그 복을 얻음이 또한 두텁다 할 것이다.
人世間境遇何常.
인간 세상의 일에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
進一步想, 終無盡時,
退一步想, 自有余樂.
한 걸음 나아가 생각해 보면 마침내 다할 때가 없고,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절로 남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道德經曰 :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爲長久.
도덕경에서는 말했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도록 누릴 수가 있다."
(老老恒言)
조금만 더하고 바래기만 한다면 만족은 있을 수 없다. 이만 하면 하는 마음속에는 절로 남는 즐거움이 있다. 족함을 알아 욕됨을 모르고, 그칠줄 알기에 위태롭지 않으니 이 삶이 가뜬하지 않은가.
복경호우(福輕乎羽)라. 복은 새의 날개보다 가벼웁다 한다. 그러나 복과재생(福過災生)이라. 복이 지나치면 도리어 재앙이 생긴다.
功遂身退(공수신퇴)
공(功)을 이룬 뒤에는 물러나야 한다.
殖而盈之, 不若其已
쌓아 올려 가득 채우는 것이, (적절한 수준에서) 멈추는 것만 못하며,
揣而群之, 不可長保也.
(음식을) 많이 저장해 두어도,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金玉盈室, 莫之守也.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해도, (이를) 지킬 수가 없다.
貴富驕, 自遺咎也.
부귀는 교만한 것이어서, 반드시 스스로 재앙을 불러온다.
功遂身退, 天之道也.
(그러므로) 공을 이루고 나면 자신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천지는 천하 모두의 것이며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역사속에서 사람들이 살아온 과정과, 뺏고 빼앗기며, 얻고 잃는 모습을 살펴보라.
집에 재물이 가득하다고 영원히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 부귀해지면 그것 때문에 교만해져서 진짜 중요한 것을 잃는다. 이 점은 현시대를 사는 우리도 반드시 직시해야 할 내용이다.
다시 말해 넘치게 갖게 되면 교만함이 자리 잡아서 인간으로서 반드시 추구해야 할 진리에 대한 갈앙심(渴仰心)이 없으며, 내면의 영적 성장에 대하여 진지한 숙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에 넘치게 바라지도 말고 다 쓰지도 못할 것을 욕심부려 모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화만 자초할 뿐이다. 즉, 반드시 자유구야(自遺咎也) 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천지도야(天之道也)이다.
공수신퇴(功遂身退)라.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가라. 공을 이루었다는 것만으로도 할 도리와 의무를 다한 것이다.
탐욕스런 사람은 재물욕이 지나쳐 더 많은 것을 갖고자 목숨을 걸며,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온갖 권모술수를 부려 권력을 잡고, 더 큰 권력을 잡기위하여, 또 빼앗기지 않으려다가 끝내는 치욕속에 사라진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찌 재물이나 권력, 명예 중에서 한가지만을 탐할까 보냐?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은 끝이 없어서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탐(探), 진(眞), 치(治)가 함께 치달으니, 스스로 업(業)의 무게를 늘려서 수 억겁(億劫)의 윤회(輪廻) 바퀴를 돌릴 것이니 그것처럼 큰 재앙이 어디 있을까?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갖고 가는 것은 부귀(富貴)나 명예가 아니고 자신이 쌓은 업장(業障)이나 (진리를) 깨우친 영성만을 고스란히 갖고 간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석가모니도 부귀공명이 여(如), 몽(夢), 환(幻), 포(泡), 영(影)이라고 깨우침을 주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세상사를 등지고 혼자만의 깨우침을 찾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도리에 맞는 일도 아니다. 세상 속에서 부딪히며, 경험속에서 지혜(진리)를 쌓으며 공도 열심히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공도 이루고 명문(名聞) 명리(名利)도 갖되 그것에 탐(探), 착(着)하지 않는 자세가 노자(老子)가 말하는 참으로 중용적(中庸的)인 삶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공을 이루면 말없이 물러나는 도(道)의 길을 배워서 나의 신명(身命)에 새기고 새겨 반드시 행해야 할 것이라고 노자(老子)는 참 깨우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제4장의 물장칙노(物壯則老), 익생왈상(益生曰祥)과 제5장의 지족부욕(知足不辱), 지지부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에서 시사(示唆)하는 바와 똑같이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왕)가 부국강병과 권력 유지만을 꾀하다가 화를 입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글이며 천지 자연의 도에 부합된 삶이 인간 최고의 지혜임을 말하고 있다.
노자(老子)는 나라가 커지면서 점차 혼탁해지는 사회 현상을 보며 옛날 3황5제(三皇五帝)와 요(堯), 순(舜) 시대를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하여 작은 나라, 적은 백성(小國寡民)일 때 오랫동안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도인정치(道人政治)를 통해 현실세계를 이상향으로 만들겠다는 염원으로 천지 우주의 이치를 일관성있게, 이처럼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복경호우(福輕乎羽)
복은 새털보다 가볍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꿈꾼다. 사람은 평생을 행복을 구하며 불철주야 노력한다. 福이라는 글자는 조상의 신주를 나타낸 '보일 시(示)' 옆에 음식이나 술이 가득한 '항아리 복(畐)'을 붙여 나타냈다고 한다. 조상에게 음식을 바쳐 복을 기원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남이 봤을 때 충분히 성공하여 행복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은 더 이상을 욕심낸다. 행복을 자기 자신 이외의 곳에서 발견하려고 바라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다.
어릴 때 누구나 읽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파랑새'는 행복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찾는다.
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자가 자신 또한 행복하다. 행복에 관한 동서고금 철인들의 명언은 수없이 많다.
복이 왔다고 자만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찰나이며 그 변화는 끝이 없다는 잘 알려진 성어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새옹(塞翁)이란 노인이 기르던 말이 주인에게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번갈아 갖다 준다. 천지만물을 풍자와 우언우화(寓言寓話)로 풀어내는 도가(道家)의 중심인물 장주(莊周)도 그답게 복은 깃털보다 가볍다고 한 마디 보탰다. 그의 책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인간세(人間世)에서다.
개인이 혼란한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 이 글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은자로 알려진 접여(接輿)를 등장시켜 지나가는 공자(孔子)에게 한 마디 한다. 중간 부분을 보자.
福輕乎羽 莫之知載
행복은 깃털보다 가볍지만 아무도 그것을 간직할 줄 모르고
禍重乎地 莫之知避
재앙은 땅덩어리보다 무겁지만 아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르오
이 말은 접여가 공자를 봉황(鳳凰)으로 지칭하며 혼탁한 현실 정치에서 벗어날 것을 충고하는 내용이라 해석한다. 논어(論語)의 미자(微子)편에도 접여가 봉혜가(鳳兮歌)를 부르며 도가 없는 세상에서 덕을 베푸는 일은 위험하다고 했다.
깃털은 가볍다. 하지만 그것이 모여 배도 가라앉힐 수 있다고 적우침주(積羽沈舟)라 했다. 행복이 자그마하다고 가벼이 여기고 아무렇게나 대하면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행복은 남의 정원에서 따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복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이 복인지 모른다(身在福中不知福)'는 말과 같이 가까이서 복을 찾아야 한다.
또 복이 왔을 때 소중히 여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 복이 언제 화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을 만족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지혜다.
복경호우(福輕乎羽)
얼마 전 한 학생이 상담선생님을 기다리며 안절부절 서성이고 있었다. 날씨도 차가운데 복도에서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잠시 교무실에서 쉬도록 했다.
한동안 상담선생님이 오시지 않자 머뭇거리며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선생님이 대신 상담해 줄까?"
학생은 잠시 생각에 잠기듯 머뭇거리더니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으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다.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성실한 학생이라서 별 근심거리가 없는 줄 알았다. 뜻밖의 돌출 행동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과연 내가 상담을 잘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마저도 들었다.
마침 상담실 문이 열리는 반가운 소리에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학생을 안내했다. 상담을 마친 선생님께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했다.
내용인즉 목표하는 대학에 가고 싶은데 기말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모든 게 물거품이 됐고, 부모님까지도 자기를 미워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한 답변이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같은 상담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이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1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 또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뿐이오. 그게 바로 나의 행복이다"고 했다.
우리 교육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배우며 생활할 수 있는 학습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급생들과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며 살아야 하는 교육 체제이다. 그 결과 OECD 30개국 중 자살률 1위, 행복지수 25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거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성적 만능주의 아래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보다 먼 미래를 생각하며 가치 있는 삶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한 학기 성적표에 목숨을 거는 삶은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불행한 삶이 쳇바퀴 돌 듯 한다면, 불행한 삶이 습관으로 고착화 될 수 있다.
'장자(莊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행복은 하나의 깃털보다 가볍지만 거두어 가질 줄을 모르고, 불행은 땅보다 무겁지만 피할 줄을 모른다(福輕乎羽 莫之知載. 禍重乎地 莫之知避)"고 했다.
마음속에 행복이 있으면 늘 세상은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성적'과 '대학'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항상 서열을 다투는 싸움판이라는 관념 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흔히 학교는 학생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르치는 곳이라 한다. 학교는 행복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한번 잘못된 습관은 잘 바뀌지 않는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 바로 습관이다.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는 "모든 성공과 실패의 95%는 습관이 결정한다. 좋은 습관은 어렵게 형성되지만 성공에로 이끌고 나쁜 습관은 쉽게 형성되지만 실패에로 이끈다"고 했다.
우리 학교 교육이 깃털처럼 가벼워 마음만 먹으면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습관화 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니면 땅덩이처럼 무거운 불행한 삶의 역할에 익숙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육자적 양심에서 자성(自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제4장
人間世 第四
1.
顔回見仲尼, 請行, 曰: 奚之.
안회(顔回)가 중니(仲尼)를 뵙고 떠날 것을 청하자 중니가 말했다. "어디로 가는가?"
曰: 將之衛.
안회가 말했다. "위(衛)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曰: 奚爲焉.
중니가 말했다. "무엇을 하려느냐?"
曰: 回聞衛君, 其年壯, 其行獨, 輕用其國, 而不見其過, 輕用民死, 死者以國, 量乎澤若蕉, 民其無如矣.
안회가 말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위나라 임금이 나이가 젊어 혈기왕성하고, 행동이 독단적이어서 나라를 가볍게 사용하고, 자기의 잘못은 보지 못하며, 백성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겨 나라 안에 죽은 사람들이 연못에 넘칠 정도로 가득하여 (虐政의 심함이) 마치 못가 수풀을 불태워 버린 것 같아서 백성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回嘗聞之夫子曰; 治國去之, 亂國就之. 醫門多疾. 願以所聞, 思其所行. 則庶幾其國, 有瘳乎.
저는 일찍이 선생님에게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스려진 나라에서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의원의 집에는 병든 사람이 많은 법이다.' 원컨대 선생님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그 나라는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仲尼曰: 譆, 若殆往而刑耳. 夫道不欲雜. 雜則多, 多則擾, 擾則憂, 憂而不救.
중니가 말했다. "아! 너는 아마도 가면 형벌을 받고 말 것이다. 道는 어지럽게 뒤섞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지럽게 뒤섞이면 (마음이) 다방면으로 분열되고 다방면으로 분열되면 동요하게 되고 동요하게 되면 근심하게 되고 근심하게 되면 (남을) 구제할 수 없게 된다.
古之至人, 先存諸己, 而後存諸人. 所存於己者未定, 何暇, 至於暴人之所行.
옛날의 至人은 먼저 도를 자기 안에 보존하고 그런 뒤에 다른 사람에게 도를 보존하게 하였다. 자기 안에 보존되어야 할 도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면 어느 겨를에 포악한 사람의 소행을 바로잡는 데에 이를 수 있겠는가.
且若亦知夫德之所蕩, 而知之所爲出乎哉.
또 너는 또한 덕이 어지러워지는 까닭과 지식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는가.
德蕩乎名, 知出乎爭. 名也者, 相軋也; 知者也, 爭之器也. 二者凶器, 非所以盡行也.
덕은 명예 때문에 어지러워지고, 지식은 다툼에서 나온다. 명예라고 하는 것은 서로 싸우는 것이고, 知는 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이다. 이 두 가지는 흉기인지라 극진히 행할 만한 일이 아니다.
3.
且德厚信矼, 未達人氣, 名聞不爭, 未達人心, 而强以仁義, 繩墨之言, 術暴人之前者, 是以人惡有其美也, 命之曰, 菑人.
또 네가 덕이 두텁고 성실성이 단단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의 기분에 통달하지는 못했으며, 명예를 다투지는 않지만 아직 다른 사람의 심정에 통달하지 못했는데, 억지로 仁義를 주장하는 말과 법도에 맞는 말로 포악한 사람 앞에서 설교한다면, 이것은 남의 악을 이용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니 이런 사람을 일컬어 재앙을 불러오는 사람이라고 한다.
菑人者, 人必反菑之, 若殆爲人菑夫.
남에게 재앙을 끼치는 사람은 다른 사람 또한 반드시 거꾸로 그에게 재앙을 끼칠 것이니, 너는 아무래도 남에게 재앙을 당할 것이다.
且苟爲悅賢而惡不肖, 惡用而求有以異.
또 위나라 군주가 정말로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싫어한다면 무엇 때문에 너를 등용하여 특별한 정치를 추구하겠는가.
若唯無詔. 王公, 必將乘人, 而鬪其捷, 而目將熒之, 而色將平之, 口將營之, 容將形之, 心且成之.
너는 오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나라 임금은 王公의 권력으로 반드시 다른 사람의 약점을 틈타 논쟁에서 이길 것을 다툴 것이니, 그렇게 되면 너의 눈은 초점을 잃어 어지러워질 것이고, 안색은 억지로 온화하게 꾸밀 것이고, 입은 변명하는 말을 늘어 놓을 것이며, 용모는 거짓으로 꾸며서 마침내 마음이 상대의 악을 이루어 줄 것이다.
是以火救火, 以水救水. 名之曰益多.
이것은 불로 불을 끄려 하고 물로 물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악을) 더 많이 보태 준다고 한다.
順始無窮. 若殆以不信厚言, 必死於暴人之前矣.
처음부터 순종하게 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네가 상대방이 믿지 않는데 성실한 말을 하면 반드시 포악한 군주 앞에서 죽게 되고 말 것이다.
且昔者, 桀, 殺關龍逢; 紂, 殺王子比干. 是皆修其身, 以下傴拊人之民, 以下拂其上者也.
또 옛날 桀王은 關龍逢을 죽였으며, 紂王은 왕자 比干을 죽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을 수양해서 아랫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백성을 어루만졌으니 아랫사람으로서 그 윗사람을 거역한 사람들이다.
故其君, 因其修以擠之, 是好名者也.
그 때문에 그 임금은 그들이 수양한 것을 빌미로 삼아서 도리어 그들을 물리쳤으니 이들은 명예를 좋아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다.
昔者, 堯攻叢枝胥敖, 禹攻有扈, 國爲虛厲, 身爲刑戮, 其用兵不止, 其求實無已.
옛날 요임금은 叢, 枝, 胥敖를 공격하였으며, 우임금은 有扈를 공격해서, 이들 나라는 폐허가 되어버리고 군주 자신은 형벌로 처형을 당했으니 이는 그들이 전쟁을 그치지 않고 끝없이 실리를 탐하였기 때문이다.
是皆求名實者也, 而獨不聞之乎. 名實者, 聖人之所不能勝也, 而況若乎.
이들 네 나라는 모두 명예와 실리를 구하다가 멸망한 예인데 너만 유독 그것을 듣지 못했는가. 명예와 실리는 성인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너이겠는가.
雖然, 若必有以也, 嘗以語我來.
비록 그렇지만 너에게는 반드시 뭔가 방도가 있을 것이니, 시험삼아 그것을 나에게 말해보라."
4.
顔回曰: 端而虛, 勉而一 則可乎.
안회가 말했다.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비우며 힘써 노력하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면 되겠습니까?"
曰: 惡惡可. 夫以陽爲充孔揚 采色不定 常人之所不違 因案人之所感, 以求容與其心.
공자가 말했다. "아! 어찌 (그런 정도로) 되겠는가. (위나라 군주는) 사나움이 마음 속에 가득하고 그것이 바깥으로 심하게 드러나며, 정신과 안색이 일정치 않고 사람들이 어기지 않는 것을 즐기며,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억누르고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을 추구한다.
名之曰日漸之德不成, 而況大德乎.
이런 사람을 일러 매일 조금씩 진보하는 작은 德조차도 이루지 못할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하물며 큰 덕을 이룰 수 있겠는가.
將執而不化, 外合而內不訾, 其庸詎可乎.
그런 사람은 자기 생각에 집착하여 남의 감화를 받지 않아서 겉으로는 합치 된 듯하면서도 안으로는 헤아리지도 않으니 어찌 되겠는가."
5.
然則我內直而外曲, 成而上比.
그렇다면 저는 안으로는 강직함을 지키면서도 겉으로는 저의 뜻을 굽혀 세상 사람들과 맞추고, 成見을 내세울 때는 옛사람의 가르침에 假托하도록 하겠습니다.
內直者, 與天爲徒, 與天爲徒者, 知天子之與己, 皆天之所子, 而獨以己言, 蘄乎而人善之, 跽乎而人不善之邪.
안으로 강직한 사람은 하늘과 더불어 같은 무리이니, 하늘과 같은 무리가 된 사람은 天子와 자신이 모두 하늘이 낳은 사람임을 알 것인데, 유독 자기의 말을 다른 사람이 좋게 평가하기를 바라며, 자기의 말을 다른 사람이 좋지 않게 평가하기를 바라겠습니까.
若然者, 人謂之童子, 是之謂與天爲徒.
이와 같은 사람은 사람들이 일러 어린아이라고 하니 이것을 일러 하늘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外曲者, 與人之爲徒也, 擎跽曲拳, 人臣之禮也, 人皆爲之, 吾敢不爲邪.
겉으로 자신의 뜻을 굽혀 세상 사람들과 맞추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같은 무리이니 笏을 높이 들거나 무릎 꿇고 절하거나 몸을 구부리는 동작은 남의 신하된 자의 예법이니, 저라고 감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爲人之所爲者, 人亦無疵焉, 是之謂與人爲徒.
남들이 행하는 것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남들 또한 비난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6.
成而上比者, 與古爲徒, 其言雖敎, 讁之實也. 古之有也, 非吾有也.
成見을 내세울 때 옛사람의 가르침에 가탁하는 사람은 옛사람과 같은 무리이니, 그 말이 비록 가르침이지만 그 내용은 (임금을) 견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예부터 있던 것이지 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若然者, 雖直而不病, 是之謂與古爲徒, 若是則可乎.
이와 같은 사람은 비록 강직하더라도 자신에게 해롭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옛사람과 같은 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되겠습니까?"
仲尼曰: 惡惡可. 大多政法而不諜, 雖固亦無罪, 雖然, 止是耳矣, 夫胡可以及化. 猶師心者也.
중니가 이렇게 말했다. "어찌 되겠는가. 바로잡는 방법이 많고 법도를 지키면서 치우치지 않으니 비록 진실로 죄를 얻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정도에 그칠 뿐, 어찌 상대를 감화시키는 데까지 미칠 수 있겠는가. 여전히 자신의 成心을 스승으로 삼기 때문이다."
顔回曰: 吾無以進矣. 敢問其方.
안회가 말했다. "저는 더 나은 방도가 없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감히 그 방법을 여쭤 보겠습니다."
仲尼曰: 齋. 吾將語若. 有心而爲之, 其易邪. 易之者, 皞天不宜.
중니가 말했다. "우선 齋戒하도록 하라. (그런 뒤에) 내 너에게 말해 주겠노라. 사심을 가지고 재계하려고 하면 그것이 쉽겠는가. 그것을 쉽게 여기는 사람은 밝은 하늘이 마땅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顔回曰: 回之家貧, 唯不飮酒, 不茹葷者, 數月矣, 如此則可以爲齋乎.
안회가 말했다. "저는 집안이 가난하여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葷菜를 먹지 못한 지 몇 달이 되었으니 이 정도면 재계했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까?"
曰: 是祭祀之齋, 非心齋也.
중니가 말했다. "그것은 제사 지낼 때의 재계이지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 아니다."
回曰: 敢問心齋.
안회가 말했다. "감히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쭙니다."
仲尼曰: 若一志. 無聽之以耳, 而聽之以心; 無聽之以心, 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心齋也.
중니가 말했다. "너는 뜻을 한결같이 해야 한다. 사물의 소리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또 마음으로 듣지 말고 氣로 들어야 한다. 귀는 感覺的인 소리를 듣는 데에 그치고 마음은 知覺에서 멈추지만 氣는 마음을 비워서 사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道는 오직 마음을 비우는 곳에 응집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다."
顔回曰: 回之未始得使, 實自回也; 得使之也, 未始有回也. 可謂虛乎.
안회가 말했다. "제가 아직 마음을 재계하지 않았을 때에는 실로 제 자신이 있었는데, 마음을 재계하고 난 뒤에는 처음부터 아예 안회가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마음을 비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7.
夫子曰: 盡矣. 吾語若. 若能入遊其樊, 而無感其名, 入則鳴, 不入則止, 無門無毒, 一宅而寓於不得已, 則幾矣.
공자가 말했다. "극진하다. 내 너에게 말해주겠다. 네가 세속의 울타리 속에 들어가 노닐면서도 명예 따위에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며, 자신의 말이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면 말을 하고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면 멈추며, (마음에) 문과 담장을 치지 않고 오로지 道를 거처로 삼아 부득이 할 때에만 말할 수 있다면 거의 가까울 것이다.
絶迹易, 無行地難.
세속으로부터 자취를 끊는 것은 쉽지만 세속에 살면서 땅 위를 걸어 다니지 않기는 어렵다.
爲人使易以僞, 爲天使難以僞.
남에게 부림을 받는 처지가 되면 거짓을 저지르기가 쉽고, 하늘의 부림을 받는 처지가 되면 거짓을 저지르기 어렵다.
聞以有翼飛者矣, 未聞以無翼飛者也.
날개를 가지고 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자연에 맡겨) 날개 없이 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하였고,
聞以有知知者矣, 未聞以無知知者也.
知識을 통해서 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무위자연으로) 無知를 통하여 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하였다.
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저 문 닫힌 집을 보라. 비어 있는 방에 햇살이 비치니 吉祥은 고요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또한 (길상이 머물지 않는 것은) 마음이 고요히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몸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마음이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한다.
8.
夫徇耳目內通, 而外於心知, 鬼神將來舍, 而況人乎.
耳目이 전해 주는 것을 따라 외부의 사물을 안으로 받아들이고 안에 있는 교활한 心知를 버리면 귀신도 와서 머무르려 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是萬物之化也. 禹舜之所紐也, 伏羲几蘧之所行終, 而況散焉者乎.
이것이 만물을 감화시키는 방법이다. 禹임금과 舜임금이 지켰던 방법이고 伏戲(복희)氏와 几蘧(궤거)氏가 죽을 때까지 실천했던 일인데 하물며 이들만 못한 보통 사람이겠는가."
▶️ 福(복 복, 간직할 부)은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음식과 술을 잘 차리고(豊) 제사(示) 지내 하늘로부터 복을 받는다 하여 복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福자는 '복'이나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福자는 示(보일 시)자와 畐(가득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畐자는 술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그린 것으로 '가득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福자의 갑골문을 보면 제단 쪽으로 무언가가 쏟아지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제단에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을 기원하기 위함일 것이다. 福자는 그런 의미에서 '복'이나 '행복'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福(복, 부)은 (1)아주 좋은 운수(運數). 큰 행운(幸運)과 오붓한 행복. 삶에서 누리는 운 좋은 현상(現狀)과 그것에서 얻어지는 기쁨과 즐거움 (2)당하게 되는 좋은 운수(運數)를 이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복(福), 행복(幸福) ②제육(祭肉)과 술 ③폭(幅), 포백(布帛)의 너비 ④복을 내리다, 돕다 ⑤상서롭다 ⑥음복하다 ⑦같다 그리고 ⓐ간직하다(부) ⓑ모으다(부) ⓒ저장하다(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행 행(幸), 경사 경(慶), 복 지(祉), 복 조(祚),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재앙 화(禍)이다. 용례로는 행복한 삶을 복지(福祉), 행복과 이익을 복리(福利), 감옥의 다른 말을 복당(福堂), 매우 반갑고 기쁜 소식을 복음(福音), 행복이 많은 집안을 복가(福家), 복을 누리며 살 만한 땅을 복지(福地), 행운과 경사를 복경(福慶), 타고난 복과 후한 마음을 복덕(福德), 행복과 즐거움을 복락(福樂), 오래 살며 길이 복을 누리는 일을 복수(福壽), 타고난 복과 나라에서 주는 벼슬아치의 녹봉을 복록(福祿), 복스럽게 생긴 얼굴을 복상(福相), 행복과 좋은 운수를 복운(福運), 행복을 가져오는 원인을 복인(福因), 제비를 뽑아서 맞으면 일정한 상금을 타게 되는 표를 복권(福券),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행복(幸福),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을 명복(冥福), 남을 위하여 행복하기를 빎을 축복(祝福), 재앙과 복을 화복(禍福), 많은 복을 만복(萬福), 복이 많음 또는 많은 복을 다복(多福), 행복은 무위한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복생어무위(福生於無爲), 지나친 행복은 도리어 재앙의 원인이 됨을 이르는 말을 복과화생(福過禍生), 복이 너무 지나치면 도리어 재앙이 생긴다는 말을 복과재생(福過災生), 복은 거듭 오지 않으며 한꺼번에 둘씩 오지도 않음을 이르는 말을 복무쌍지(福無雙至), 복은 거듭 오지 않으며 한꺼번에 둘씩 오지도 않음을 이르는 말을 복불중지(福不重至), 복과 덕 즉 행복과 이익이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함을 일컫는 말을 복덕원만(福德圓滿), 착한 사람에게는 복이 오고 못된 사람에게는 재앙이 온을 일컫는 말을 복선화음(福善禍淫), 복은 착한 일에서 오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경사가 옴을 일컫는 말을 복연선경(福緣善慶), 복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데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복재양인(福在養人),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전화위복(轉禍爲福), 길흉과 화복이라는 뜻으로 즉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을 길흉화복(吉凶禍福), 한때의 이利가 장래에는 도리어 해가 되기도 하고 화가 도리어 복이 되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새옹화복(塞翁禍福), 화복이 꼰 노와 같이 서로 얽혀 있다는 뜻으로 재앙이 있으면 복이 있고 복이 있으면 재앙도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화복규묵(禍福糾纆), 부모를 명당에 장사하여 그 아들이 곧 부귀를 누리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당대발복(當代發福), 장차 운이 트일 땅이라는 뜻으로 좋은 묏자리를 이르는 말을 발복지지(發福之地), 복을 얻는 데 남보다 앞장서면 남에게 미움을 받으므로 남에 앞서서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을 불위복선(不爲福先), 화나 복은 모두 자신이 불러들임을 이르는 말을 화복동문(禍福同門), 복이 많고 아들이 여럿이라는 뜻으로 팔자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다복다남(多福多男), 산 같은 수명과 바다 같은 복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장수를 축하하는 말을 수산복해(壽山福海), 많은 복은 하늘이 주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말을 자구다복(自求多福) 등에 쓰인다.
▶️ 輕(가벼울 경)은 ❶형성문자로 軽(경)의 본자(本字), 䡖(경)은 통자(通字), 轻(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수레 거(車; 수레, 차)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巠(경; 세로로 곧게 뻗은 줄)로 이루어졌다. 곧장 적에게 돌진하는 전차, 경쾌한 일, 가벼움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輕자는 '가볍다'나 '가벼이 여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輕자는 車(수레 차)자와 巠(물줄기 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巠자는 방직기 사이로 날실이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방직기 사이로 실이 가볍게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巠자에 車자가 결합한 輕자는 '수레가 가볍게 지나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輕자에서 말하는 '가볍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 마차의 중량이 '가볍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輕자는 단순히 '가볍다'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輕(경)은 (1)가벼운 중량(重量)이 비교적 가벼운 육중하지 않은의 뜻 (2)경쾌(輕快)하고 간단한 등의 뜻으로 ①가볍다 ②가벼이 여기다 ③가벼이 하다 ④업신여기다 ⑤천(賤)하다 ⑥빠르다 ⑦성(姓)의 하나 ⑧가벼이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거울 중(重)이다. 용례로는 죄인을 가볍게 처분함을 경감(輕勘), 가볍게 다침을 경상(輕傷), 가벼운 홀몸을 경단(輕單), 가벼운 정도를 경도(輕度), 언행이 가볍고 방정맞음을 경망(輕妄), 아주 작고 가벼움을 경미(輕微), 기분이 가볍하고 유쾌함을 경쾌(輕快), 경솔하게 행동함을 경거(輕擧), 움직임이 가뿐하고 날쌤을 경첩(輕捷), 덜어내어 가볍게 함을 경감(輕減), 가벼운 범죄 또는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을 경범(輕犯), 언행이 진중하지 아니하고 가벼움경솔(輕率), 언행이 경솔하고 천박함을 경박(輕薄), 가볍게 봄을 경시(輕視), 가벼운 무게를 경량(輕量), 가벼움과 무거움을 경중(輕重), 하는 짓이나 태도가 들뜨고 경솔함을 부경(浮輕), 줄이어 가볍게 함이나 등급을 낮춤을 감경(減輕), 일이 가볍지 아니함을 비경(非輕), 남에게 경멸을 당함을 견경(見輕), 가볍지 아니함을 불경(不輕), 말이 가볍고 방정맞음을 언경(言輕), 말이나 몸가짐 따위가 방정맞고 독실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박자(輕薄子), 가볍고 망령되게 행동한다는 뜻으로 도리나 사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경솔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경거망동(輕擧妄動), 경쾌한 수레를 타고 익숙한 길을 간다는 뜻으로 일에 숙달되어 조금도 막힘이 없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경거숙로(輕車熟路),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패배함을 일컫는 말을 경적필패(輕敵必敗), 가벼운 가죽옷과 살찐 말이라는 뜻으로 부귀영화를 형용해 이르는 말을 경구비마(輕裘肥馬), 마음이 침착하지 못하고 행동이 진중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경박부허(輕薄浮虛), 무슨 일에나 승낙을 잘 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적어 약속을 어기기 쉽다는 말을 경낙과신(輕諾寡信), 마음이 침착하지 못하고 행동이 신중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경조부박(輕佻浮薄), 경망하여 예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경이무례(輕而無禮), 제 것을 남에게 잘 주는 이는 무턱대고 남의 것을 탐낸다는 말을 경시호탈(輕施好奪), 재주는 있으나 경박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박재자(輕薄才子), 조그마한 일에 후한 답례를 함을 이르는 말을 경사중보(輕事重報),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많이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구부러뜨릴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적은 힘이라도 일치 협력하면 강적에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을 군경절축(群輕折軸),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도로 솟는다는 뜻으로 웃 사람이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말을 듣지 않게 된다는 말을 퇴경정용(槌輕釘聳), 목숨을 의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뜻으로 의로움을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
▶️ 乎(어조사 호)는 ❶지사문자로 삐침별(丿; 목소리의 올라가는 것을 뜻함)部와 兮(혜)를 합쳐 이루어졌다. 목소리를 길게 뽑아 뜻을 다하는 말의 뜻을 나타낸다. ❷지사문자로 乎자는 ‘~느냐?’, ‘~지?’와 같은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乎자의 갑골문을 보면 T자 위로 세 개의 획이 뻗어 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乎자는 T자를 도끼를 그린 것으로 보고 도끼 찍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乎자의 기원으로만 보면 兮(어조사 혜)자와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은 유래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문장을 연결하거나 의문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乎(호)는 ①어조사(語助辭) ②~느냐? ③~랴! ④~지?, ~겠지? ⑤~도다 ⑥~에, ~보다(=於, 于) ⑦그런가 ⑧아!, 감탄사(=呼)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감탄을 표시하는 말을 호재(乎哉), 일단 결심한 것을 과단성 있게 처리하는 모양을 단호(斷乎), 슬프다의 뜻으로 슬퍼서 탄식할 때에 쓰는 말을 차호(嗟乎), 우뚝하게 높이 솟은 모양을 흘호(屹乎), 아주 든든하고 굳셈을 확호(確乎), 섞임이 없이 제대로 온전함을 순호(純乎), 온건한 말로 조용하고 부드럽게 이야기 함을 온호(溫乎), 너르고 큰 모양을 도호(滔乎), 동뜨게 뛰어나서 남이 따르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탁호난급(卓乎難及), 단단하고 굳세어서 뽑히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확호불발(確乎不拔) 등에 쓰인다.
▶️ 羽(깃 우, 늦출 호)는 ❶상형문자로 우(우)와 통자(通字)이다. 새의 날개의 모양을 본뜬 글자를 만들어 날개나 나는 것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羽자는 '깃털'이나 '날개', '조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羽자를 보면 두 개의 깃털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의 깃축과 깃판을 함께 그린 것이다. 羽자는 이렇게 새의 깃털을 그려 '날개'나 '새', '날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羽자는 깃털은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에서 '돕다'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래서 羽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깃털'이나 '날다', '돕다'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羽(우, 호)는 (1)오음(五音)이나 칠성(七聲) 음계(音階)의 하나. 오음(五音) 음계(音階)의 다섯째 음, 칠성 음계(音階)의 여섯째 음임. 양약(洋藥)의 음계(音階) 라(La)에 비할 수 있음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깃, 깃털 ②깃 장식(裝飾) ③깃꽂이 ④(짐승의)날개 ⑤새, 조류 ⑥살깃(화살에 붙인 새의 깃털) ⑦부채 ⑧정기(旌旗: 정(旌)과 기(旗)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⑨오음(五音)의 하나(가장 맑은 음) ⑩낚시찌 ⑪벗, 패거리 ⑫편지(便紙) ⑬(서로)돕다 ⑭(이마가)우묵하다(가운데가 둥그스름하게 푹 패거나 들어가 있다) 그리고 ⓐ늦추다(호) ⓑ느슨해지다(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개 익(翼)이다. 용례로는 새의 날개를 우익(羽翼), 새의 깃과 짐승의 털을 우모(羽毛), 거죽에 고운 털이 돋게 짠 비단을 우단(羽緞), 선녀나 도사가 입는다는 옷으로 새의 깃으로 만든 옷을 우의(羽衣), 한 편의 날개 털을 우편(羽片), 새 중에 가장 뛰어난 새를 우걸(羽傑), 새의 깃 같은 모양이나 상태를 우상(羽狀), 새의 깃 또는 화살에 붙인 새의 깃을 우령(羽翎), 새의 깃을 꽂아 장식한 갓을 우립(羽笠), 새의 대가리에 뿔 모양으로 솟은 털을 우각(羽角), 깃의 살갗에 박힌 부분을 우근(羽根), 새의 날개 치는 소리를 우음(羽音), 급히 전함을 우전(羽傳), 새의 머리에 길고 더부룩하게 난 털 또는 그런 털을 가진 새를 우관(羽冠), 새의 보드라운 털이 촘촘히 난 부분을 우역(羽域), 새의 깃으로 짠 직물을 우직(羽織), 오음의 다섯째 소리를 우성(羽聲), 어깨깃을 이르는 말을 견우(肩羽), 닭깃을 이르는 말을 계우(鷄羽), 꽁지 깃털을 미우(尾羽), 짐승의 털과 날짐승의 깃을 모우(毛羽), 날짐승의 썩 짧고 보드라운 털을 면우(綿羽), 털을 뽑는 일을 발우(拔羽),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날짐승을 잡우(雜羽), 묵은 털이 빠지고 새 털이 나는 일을 환우(換羽), 나무로 만든 공작을 수우(樹羽), 새가 깃털을 다듬는 행동을 정우(整羽),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는 뜻으로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기분이 좋다는 말을 우화등선(羽化登仙), 새의 깃이 무거운 몸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게 한다는 뜻으로 경미한 것도 많이 모이면 유력해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핵비육(羽翮飛肉), 화살에 한 번 상처를 입은 새라는 뜻으로 환난을 한 번 겪은 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상궁지우(傷弓之羽), 느시 깃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백성이 난리나 부역으로 부모를 봉양할 수 없음을 탄식하는 말을 보우지차(鴇羽之嗟), 새의 깃이 덜 자라서 아직 날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 어림을 이르는 말을 모우미성(毛羽未成),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일이 됨 또는 작은 것 힘없는 것도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말을 적우침주(積羽沈舟), 돌을 호랑이로 잘못 알고 쏘았더니 화살이 깃까지 돌에 깊이 꽂혔다는 뜻으로 열성을 다하면 무슨 일이든 이루어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사석음우(射石飮羽), 항우와 같이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으로 힘이 몹시 세거나 의지가 굳은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항우장사(項羽壯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