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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년의 슬픈 사랑 그리고-21
년 말 씨즌인 12월 25일의 눈 오는 거리는 조금 붐볐다. 길가의 눈 치워진 보행자 도로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날씨는 눈이 그치기 시작하며 하늘의 구름들이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구름이 물러난 쪽에는 햇살이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짧은 겨울 낮 시간의 귀중한 햇살이었다.
"초희야. 오늘 아점은 '아리랑 코리아'가 아니고 새로 가는 한국 식당이야. 'Edmonton Korea'라고 이곳에서는 잘 알려진 한국 식당이야. 그곳에서 육개장 먹어 볼까?"
"어머나~ 아니, 이곳에서 육개장을 먹을 수 있어요? 예. 그곳으로 가요."
그들의 혼다 CRV-SUV는 천천히 달려 시내의 서쪽 끝 부근에 있는 한국 식당에 도착하였다. 작은 플라자 안의 왼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린 눈은 꽤 쌓였지만 주차장은 잘 치워져 있었다. 그들이 차를 주차하고 '에드먼튼 코리아'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웨이팅 룸에 서너 명의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가족을 동반한 한국 동포들이었다. 그러나 몇몇 백인들도 그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있었다. 실내는 약 20명 정도의 손님들이 식사를 하며 담소하고 있었다. 한국의 한 식당 분위기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벽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육개장을 시켰다. 더운 김이 오르는 먹음직스러운 육개장이 나오자 배고픈 초희가 먼저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여보~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참 맛있네요. 어서 드셔요."
"역시 한국 음식 중에서는 육개장도 최고 중에 들어가지. 많이 얼른 먹읍시다."
그들은 육개장을 정말 땀을 흘리며 맛있게 먹었다. 두 사람의 먹는 모습을 옆의 백인들이 입맛 다시며 보곤 하였다.
"자, 우린 앞으로 약 530km 6시간 정도를 가야 해. 먹고 싶은 것 있으면 테이크 아웃 해 가면서 먹어도 된다. 트렁크에 일회용 깨스 부스터가 있거든."
"아하~ 굿 아이디어이네요. 여보, 그럼 김치찌개하고 밥 2공기 사가지고 가다가 먹든가 다음 호텔에서 살짝 해 먹으면 안 될까요?"
"호오~ 그것 멋진 아이디어인데, 그렇게 하자."
그들은 김치찌개 2인분과 쌀 밥 2공기를 따로 테이크 아웃용으로 주문하여 그 레스토랑을 떠난 시각은 오후 1시였다. 에드먼튼까지 6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다행히 눈은 그쳤고 도로마다 제설차들이 행진하듯 가며 문을 치우고 소금을 뿌려서 하이웨이는 달릴 만하였다.
초희는 파카를 벗어 뒷자리에 두고 목을 가리는 흰색 면 스웨트를 입고 스키니 같은 감색 면바지를 입은 채 부츠를 신었다. 머리칼을 뒤로 올려 묶어서 나이보다 저 섹시해 보였다. 내린 도로 주변의 눈으로 눈이 부셔 그린 색 선글라스를 썼다. 보기에 아주 좋았다. 그녀가 그렇게 정리 후 다시 자리에 앉은 모습을 본 제임스는 놀랐다.
"와우~ 이런 섹시한 중년 여성이 함께 여행하다니... 너무 좋다. 초희야~"
"여보~ 놀리시는 거지요?"
"내가 이렇게 젊고 섹시한 아내를 놀리다니. 정말 50대 멋진 여성이다. 당신은."
"ㅎㅎㅎ 말씀도 잘 하셔요. 당신은. 그래. 뭐 먹고 싶으세요. 에드먼튼에 가면 제가 다 사드릴게요."
정말 초희는 세상과 부딪힌 게 적어서 인지 아직은 쓸 만해 보였다 ㅎㅎㅎ.
"여보~ 뭘 생각하며 혼자 웃어요? 저를 어떻게 잡아먹을까? 하고 음흉한 생각 하셨지요? 남자들은 젊으나 나이 드나 관계없이 멋진 여성만 보면 그런 생각 한데요."
"ㅎㅎㅎ 맞아. 그런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잡아먹을까는 아니야. 다 잡아먹었는데... 정말 잘 갖추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 거야."
"에이~ 당신이 잘 쓰는 말, 넘어가요!"
"그런데 초희야."
그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놀란 듯 물었다.
"예? 왜요?"
"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고... 벤쿠버에 도착하면 우리가 살 집을 볼 텐데, 기대에 맞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미리 말해두는 거야."
"아~ 참, 집 이야기 좀 해줘요. 미리 듣고 싶어요."
"그래. 내가 운전하면서 앞을 보며 말할 테니 듣는 초희는 흘러 듣지 마~"
"예. 긴장되네요."
"그럼 간다."
"예, 가세요."
그러는 사이 이미 2시간 정도 달렸다. 생각보다 도로는 달리기 좋았다. 평균 100km/h로 달렸다.
"하우스는 방이 3개야. 2층에 큰 방 하나 하고 거실이 있고 아래층엔 방이 2개 있는데, 하나는 내가 서재로 쓰고, 다른 하나는 그냥 쉽게 말하면 손님용 같아. 욕실은 2층에 하나 그리고 메인 플로우에 욕실 하나와 간이 욕실이 딸린 화장실 하나 그리고 부엌이 있고 거실이 같이 있어. 그 옆에는, 붙어있는 차고가 하나 있어. 정리가 안된 뒤뜰에 창고 같은 혹은 카티지 같은 원룸 창고가 있고 그 뒤로는 바다로 들어가는 작은 강이 흐르고 앞에는 바다하고 연결된 잔디 정원이 있어. 사실, 혼자 살기에는 규모가 커. 그다음은 앞으로 내가 할 일인데, 지금까지는 내가 빈 병 또는 재활용품들을 수집 판매, 수출해 왔는데 힘들어."
초희가 고개를 돌려 궁금한 듯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날 보지 말고 앞을 보며 내 말 들어. 당신에게 다 말 못 한 일들이라 서 실망이 크겠지만, 진작에 말해야 했는데 기회를 놓쳤어."
그는 숨을 고르듯 말을 멈췄다. 초희는 그다음 무슨 말일까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벤쿠버에 가서는 지금 하는 일을 조금 줄이고 구두 닦는 일을 하려고 해. 놀라고 실망되지?"
"아니에요. 하나도 실망 안 해요. 당신이 거지같이 밥 얻으러 가자고 해도 같이 나설 건데요. 어서 말씀하세요."
제임스는 고개를 돌려 초희를 봤다. 초희는 앞을 보고 있었다.
"내가 몇 년 전에 닦은 구두를 신고 외출할 일이 있어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슈샤이너를 찾았는데 없었어. 그 후, 얼마 전부터 집 앞 입구에 싸인을 만들어 세워 놓았어."
초희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웬 싸인?"
초희는 앞에 무슨 대단한 사람같이 자기 싸인을 해서 붙인다고... 생각했다.
"아~ 한국서 생각하는 그런 싸인이 아니고 광고판 즉 베너를 의미하는 거야. 그 판에 '구두 닦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언제든 전화하고 가져와라. 늦어도 그다음 날 잘 닦인 당신의 구두를 찾아갈 수 있다'라고 썼거든. 얼마 후, 하나둘씩 고객이 생기더니 이제는 꽤 바쁘 지기 시작한 거야. 구두 수리 의뢰도 들어오고. 내가 내년에는 리타이어 하게 되거든. 그런데 자기 사업을 하고 있으면, 시니어 연금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사업을 그만두고 슈샤이너 & 리페어 일을 집에서 할까 하거든.
수입은 시니어 연금하고 월급같이 매월 조금씩 RRSP로부터 나오는 돈으로 지내는 데는 불편 없을 거야. 내가 열심히 하면 당신, 나이 들어도 폼 나게 돈 쓰게 할 수 있어. 나이 든 사람이 돈까지 궁색하면 처참해지거든. 당신이 우리 집안 파이낸싱 부서 사장이 되어 돈 관리를 잘 하면 돼. 나는 벌고 당신은 우리 둘을 위하여 잘 사용하면 돼.
그리고 하우스도 하나하나 당신 취향에 맞게 수리하고 고치고 리노베이션 할 것이야. 그리고 마지막에 당신에게 먼저 말한 것 같이 블로그에 대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을 거야. 하여튼 가능한 한 당신을 위해서 다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 편하면 안 좋을 수 있어서 뭐라도 움직이고 할 수 있도록 일거리를 만들 거다."
"여보~ 당신의 저에 대한 배려가 너무 고마워요. 저는 당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해요? 저는 요, 한국 가서 다 정리하고 와야 돼요. 저도 올해가 마지막 근무하거든요. 내년부터는 직장을 나갈 수 없어요. 저는 혼자서 어떻게 그 긴 날들을 보내야 하나 하고 생각날 때는 너무 처량했어요. 희망도 없었고요..."
초희는 울먹이다 마침내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생각으로 울기 시작하였다. 옆에 운전하는 제임스는 듣고 앞만 보며 운전하였다. 지금 그에게는 안전 운전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며 초희가 울음을 그치고 다시 말하길 기다렸다.
"저는 가끔 뉴스에서 종로의 무슨 공원에서 소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더 나쁜 환경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노인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더구나 몸이 아프게 되어 인생 자체를 비관하는 노인들의 외로움과 절망들을 들었어요. 저에게도 곧 저러한 상황이 올 텐데 어떡하나 늘 걱정했어요. 미나에게 와서는 미나가 같이 살자고 잡아 주길 바라기도 하였어요. 물론 제가 같이 있지는 않지만 요. 사실,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년부터는 집에서 혼자 지내야 했어요. 그 외로움과 쓸쓸함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절망적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지금 당신은 구세주같이 나타나서 저를 구해 준 거예요. 이런데 제가 당신을 하늘같이 생각하며 모시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당신은 이제 저를 위해 사신다고 하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행운이에요. 저는 요, 당신 하나면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좋아요. 저는 무조건 당신을 따르겠 어요."
자동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초희도 다가와 지나가는 도로만 보고 있었고, 운전수 제임스도 앞만 주시하며 운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차가 우측으로 회전하며 작은 눈길로 들어갔다. 작은 공원이었다. 화장실이 있는. 차가 서자 제임스는 초희를 안았다. 그리고 키스를 했다.
첫댓글
새로운 시작 월요일입니다.
웃을수록 행복은 커진답니다.
따뜻한 웃음으로 한 주 시작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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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UD3J8y02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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