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너 요즘 기분 좋은거 같다?"
"응?"
"너 얼굴에 나 행복해요~라고 얼굴에 써있는 거 같어. 연예하냐?"
오랜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 말에 나의 입이 귀에 걸린 듯 어제 지은이와 이야기한 게 떠올라 미소가 번지지 않고 있었다. 진짠가보네? 어디서 만났냐며 친구가 물어왔지만, 아직은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 나중에 잘되면 말해준다는 말을 끝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저녘 9시쯤 되어서야 헤어졌다. 버스타고 한 정거장 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면서 어제지은이와 한 이야기를 떠올랐다.
"오빠는 정말 다정다감한 사람이야. 어제 정말 힘들었는데, 오빠의 위로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어."
"다행이네. 그 친구를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어. 지은이만 상처받으니깐."
"맞아. trick가 그렇게 말하는 줄 몰랐어. 외국인 친구라 잘해줬건만. 내가 깜빡하고 강의시간 바뀐거 말 못한게 다인데, 일부러 그랬다는 둥 계획한 거 아니냐는 둥 헛소리만 하고, 심한 욕도 하고 그랬어. 너무 억울했어ㅠ"
그러면서 지은이는 통화하고 싶다며 나에게 카톡으로 보이스톡을 했다. 나는 의심없이 보이스톡 수락을 눌러 귀에 가져갔다. 펑펑 우는 목소리로 지은이는 짧게 통화를 했다. 그게 영 마음에 걸려 신경이 쓰인다.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정인지....
시합은 아쉽게 지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은서선배는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은서선배가 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갖다주려고 하면, 먼저 자기가 물을 떠서 마시던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물을 마셨다. 그렇게 이유를 모른 채 은서선배와 나 사이에 커다란 벽이 가로 막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속앓이를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은서선배가 공부하는 경제학과로 찾아갔다. 마침 은서선배는 다른 여자 동기들과 이야기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저렇게 웃는 모습 정말 오랜만이야. 선배]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는 은서선배에게 나는 용기내어 말을 걸었다. 은서선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흔들리는 것 같더니 알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같이온 여자 동기들에게 먼저 가 있으라는 말을 하고, 내 앞에 섰다.
"어쩐일이야?"
"선배, 저 할말 있어요."
"할말? 중요한 거니?"
은서 선배의 말에 나는 머뭇거렸다. 본드가 붙은 듯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 이만 갈게. 오늘 중요한 과제가 있어서 잘가렴."
바람이 불어오자 가려는 은서선배의 긴 머리카락이 내 코를 자극했다. 좋은 향이 난다. 은서선배와 어울리는 달콤한 향기가 났지만, 내 몸은 자동적으로 그녀의 가녀린 팔을 잡았다. 선배의 눈동자가 커졌다. 나는 내쪽으로 선배를 끌어당겨 안았다. 반항하는 은서선배를 나는 더욱 힘주어 안았다. 벗어날 수 없도록!
[그 이후로 선배 생각으로 인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공부도 안되요. 나 정말 당신 좋아하나 봐요.]
20분 걸려 집에 도착한 나는 씻는 것도 잊은 채 제일 먼저 핸드폰으로 카톡을 접속했다. 지은이의 우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아직도 마음 아파할 것 같아 얼른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지은아 지금은 괜찮아? 어제 짧게 우는 통화가 넘 신경 쓰여."
어찌된 영문인지 1이라는 숫자가 새벽 1시가 넘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걱정이 되었다. 지은이는 마치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아무 반응이 없었다.
04.
"자네 요즘 왜 그러나?"
"죄...죄송합니다."
"안하던 실수를 하고, 자네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망신당한 줄 알아?"
과장님의 목소리에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말았다. 온통 지은이 생각 때문인지 안하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요즘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바람쐬러 잠시 밖으로 나갔다. 더운 여름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추자
어머니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지은아 너에게 정말 무슨일이 생긴거야?
카톡-.
이 소리가 어찌나 반가운지. 나의 청각을 반갑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 텔레파시가 통한건가? 오늘까지 합하면 총 3주만에 지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한지은이라는 이 세글자가 나의 기분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같다.
"오빠, 그동안 연락을 못해서 정말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왜 연락 못한 거냐면 나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어."
[피치못할 사정이라...안 좋은 일이 지은에게서 일어난 건가?]
"................"
"오빠, 나 어떻해~ㅠ"
"왜 무슨 일인데?"
-이하늘 님께서 한지은에게 보이스톡 신청했습니다.
계속해서 보이스톡을 신청했지만, 거절을 했다. 나는 받을 때까지 계속했지만, 끝내 지은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지은에게서는 카톡이 오지 않았다. 일도 어떻게 끝났는지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른다. 지은이에게 걱정돼 미치겠으니 대답해달라고 카톡메시지를 보냈다.
카톡-.
지은에게서 답변이 왔다. 오빠 생각으로 과제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무슨일이야? 라고.
답변 끝이 이상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매일같이 지은이와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단지 그뿐이다.
"오빠, 우리 영통할래? 나 오빠 얼굴 보고싶어."
"알았어."
친구들과 하지 않던 페이스톡을 먼저 신청해온 지은이의 영상은 수락했다. 나는 늘 궁금했었다. 채팅어플에서 사진은 봤었지만, 실제로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그녀의 얼굴이 지금 확인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5분짜리 영통을 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여주다가 지은이가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에서 조금 더 노출되는 부분에 나는 당혹스러워 얼른 영통을 꺼버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뭘 본거지?
05.
"이찬우 너 이거 안풀어?"
"싫어!"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은서선배 말에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선배에게 전하기로 했다. 도대체 어디서 용기가 난 것인지 몇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된다. 표독스럽게 쳐다보는 은서선배의 입술에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나 잊지마.]
아악~!
은서선배는 내가 거칠게 다가가자 무서웠는지 화가 났는지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내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오른팔을 들어 입술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약간의 피가 나는 것 같다.
"너 미쳤어?"
"선배, 좋아해. 동아리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뭐?"
"시합 끝난 이후로 나에게 말도 안 걸어주고, 피하기만 하는데 나는 못 참겠어."
"너에게 실망이야."
그 말 끝으로 은서선배는 가버렸다. 하-내가 지금 뭐한거지?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나는 동아리에 졸업할 때까지 안갔다. 남자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었지만, 몸이 안좋아 동아리를 못 하겠다는 말과 사과의 말도 덧붙이면서.
지은이와 영통한 것에 대한 충격으로 카톡을 접속 안했다. 아니,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한 그녀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영상이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된 것 같다. 그때 거기서 멈추어야 했다. 머리속 뇌회로가 고장이 났는지 바보같이 다시 지은이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시 평범한 이야기가 3달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꼭 중요한 이야기라며 지은이가 저녁에 꼭 대화하자고 했다.
오늘은 다행히 회사 창립기념일이라 쉬다가 저녘에 말을 걸었다. 지은이는 기다렸다는 듯 유튜브에서 괜찮은 게 있는데 꼭 보여주고싶다는 것이었다. zip파일로 되어있는 거였는데 제목은 '재테크로 성공하는 법'이었다. 나는 다운받아 설치했다. 동영상을 실행했는데 재테크에 관한거는 없고, 지은이가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만 나는 해서는 안될 짓을 하고 말았다. 그게 녹화가 된건지도 몰랐다. 20분짜리 나에 대한 영상을 녹화했다며, 이걸 지인에게 뿌리겠다고 협박 및 회사 게시판에 올리겠다고 돈을 요구했다. 50만원 이었는데, 내가 못믿겠다는 대답을 했다.
준비라도 했다는 듯 내 핸드폰에 저장한 연락처, 생필품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배송기사에서 내가 살고있는 주소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영상녹화했다는 빨간 색과 함께 다시 보기싫은 영상을 짧게 보여주었다. 30분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압박을 해왔다. 나는 당혹스러워 어찌할 줄 몰라 일단 핸드폰을 재빨리 꺼버렸다. 그 이후로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회사도 다닐수 없어서 3일만 부모님이 아프셔서 간호를 해야된다는 둥 거짓말로 그렇게 편의를 봐주었다. 잠도 못자고, 불도 켜지 않은채 점점 폐인이 되어갔다.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멘탈이 깨지고 있었다.
첫댓글 속된말로 꽃뱀에게 물린모양이네요^^~
그런데, 실제로는 남자가 남자를 상대로 여자 사진도용해서 피해사례도 있다고하더라고요.ㅡ.ㅡ;;;
지은이의 영상이 뇌속을 점하고 있어 맹맹하다 다음이 기대된다 오늘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