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고참선수들에게 노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노장은 웬 노장"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질색을 한다. 한결같이 "아직은 쌩쌩하다"며 베테랑으로 불러달라고 사정하기 일쑤다. 여자들 치고 젊고 예뻐 보인다고 하는 말 싫어하는 여자 없고, 남자치고 늙어보인다는 소리 들어서 기분 좋아할 사람 없듯이 프로야구선수들도 언제나 `청춘스타'로 불리고 싶어한다.
한화의 플레잉코치 이상군이 4월 마지막날인 지난 30일 잠실 LG전에서 개인통산 100승의 값진 기록을 달성했다. 만 38세 9일만에 세운 현역 최고령 100승이다. 종전기록은 이날 선발로 맞대결한 LG 김용수가 98년 4월22일 잠실 쌍방울전서 작성한 37세 11개월 20일.
이상군은 이날 올시즌 세번째 선발로 출전해 7⅔이닝을 3안타 2실점으로 막아 7게임만에 1승(1패)을 보태 프로야구 19년사에 13번째의 대기록을 프로 13시즌째에 해냈다. 천안북일고를 거친 이상군은 한양대 시절에는 갸냘픈 몸매로 `제비'로 불렸다.
그러나 86년 빙그레(현 한화) 창단멤버로 입단해 데뷔 첫해 35게임에서 243⅓이닝, 87년은 33게임서 246⅔이닝 등 89년까지 4년 연속 100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자연스레 `고무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생팀의 열악한 마운드 사정상 쉴새없이 마운드에 올라야 했지만 이상군의 오른팔은 고무처럼 싱싱하고 탄력이 넘쳤다. 덕분에 86년부터 4년 연속 10승(12→18→10→16) 고지에 우뚝섰다.
전성기 시절 이상군의 슬라이더는 위력적이었다. 슬라이더(slider)는 말그대로 미끄러지듯 휘어나가는 구질로, 오른손 투수의 경우 오른손 타자의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버들가지처럼 휘어져 나가는 볼이다.
이상군이 야구선수로서는 큰 체구가 아니면서도 전천후 출격이 가능했던 것은 이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컴퓨터 같은 제구력이 빼어났기 때문이었다.
지난 96년 270게임서 94승69패를 기록하고 은퇴했던 이상군은 2년만인 지난해 그라운드에 복귀해 30게임서 5승(5패)을 보태 99승에 머물렀으나 올해 마침내 1승을 추가해 100승의 꿈을 이루었다.
"매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꾸준히 몸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지금도 체력은 자신있다"는 이상군의 말에서 38세의 나이에도 140㎞의 위력있는 볼을 던지는 비결을 깨닫게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이를 잊은 `아름다운 프로' 이상군. 우리는 그에게서 진정한 프로정신을 보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