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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불의 사용은 인간들에게 자연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불을 사용하기 전에 인간들이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태양에서 온 에너지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음식물을 통해서만 가능하였다. 우연히 불에 타 죽은 동물의 고기가 날고기보다 연하여 먹기 쉽고 또한 아주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자연적으로 불이 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다가 차츰 불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처음에는 불을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번개, 화산, 산불 등에서 채취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불씨를 보관하기가 쉽지는 않았고 따라서 직접 불을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때의 우리 조상들은 궁리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나무송곳으로 오목한 나무를 세게 문지르면 불이 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불에서 빛과 열을 얻을 수 있으니 아마도 불이 사용된 최초의 에너지였을 것이다. 불을 사용하여 추위와 습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인류의 거주지가 아주 넓어져 거의 온 지구에 퍼져 살게 되었다.
인류는 발생지인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이동하였으며 특히 아시아로 이주한 무리들은 빙하시대에 아시아 대륙에 연결되어있던 인도네시아의 자바에서 바다를 건너 플로레스,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으로 약 80만 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으로 바다를 건너 뉴기니에 도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육지에서 섬으로 이주하게 되면 크기가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시베리아에 살고 있었던 매머드가 인근 섬으로 이동하였는데 크기가 줄어 난쟁이 매머드로 불린다. 인간 역시 섬으로 이주한 호모 에렉투스는 왜소화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시베리아에서 베링기아 육교 (지금의 베링 해협은 빙하시대에 육지였다.)를 지나 신천지 아메리카로 이동하였다.
남아메리카는 한때 따로 떨어진 대륙이었고 그 당시의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포식자는 몸집이 크고 날지는 못하지만 강한 다리로 달리면서 사슴이나 말의 조상 등을 사냥하며 살아가던 공포새였다. 남아메리카가 이동하여 북아메리카와 연결된 후에는 북쪽에서 사냥하던 고양이과, 개과, 족제비과 동물들이 중앙아메리카를 지나 남아메리카로 이동하여 생태계에 변화를 만들었고 베링기아 육교를 지나 알라스카를 거쳐 전 아메리카 대륙에 퍼진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들에 의해 또 다시 생태계가 변했으며 최근에는 인간의 문명 활동으로 아마존 강 유역의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아마존이라는 이름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로 남아메리카에 들어온 에스파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아마존 부족에 대한 믿음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여기에는 황금에 대한 유럽인들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즉 아마존 부족의 거주지에는 황금이 많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아마존이라는 이름이 새로이 발견된 강에 붙어졌으며 황금에 눈이 어두워진 유럽인들에 의한 원주민들의 학살이 이어졌다. 그 후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 데려왔으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새로운 비극이 시작되었다.
불을 사용하기 전에는 검치호 등의 맹수의 습격을 피하는 방법은 나무 위로 도망하는 것 외에는 없었지만 불을 이용한 후에는 맹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양 손이 나무 타는 데 이용되지 않게 되었으므로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불을 사용하기 전부터 도구는 사용되었지만 보다 정교하고 많은 도구를 만든 것은 불의 사용이후에 가능했을 것이다.
불과 도구의 사용으로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들이 일정한 곳에 모여 생활하기 시작하여 문화가 싹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또한 음식물을 익혀먹게 되었고 흙으로 빚어 만든 토기를 불에 구우면 단단해지는 것을 알게 되어 다양한 그릇들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그릇을 만드는데 필요한 고온 처리 기술이 더 발전되어 야금술의 탄생 및 발전으로 이어졌고 구리, 청동, 철 등이 사용되게 되었다. 인간의 다른 여러 발명품처럼 불도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잘 못 사용하면 우리들을 해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일어난 남대문 화재사건도 불을 잘 못 사용한 하나의 예이다.
그 후에 정착하여 농사를 시작하면서 동물, 수력, 풍력 등이 이용되어 문명사회로 접어들었다. 정착농업이 시작되어 생산물이 많이 공급되자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1만 년 전쯤의 지구의 인구는 1천만 명 정도였지만 철기가 사용된 2천 년 전 무렵에는 3억 명으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의 증가 비율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동안 이어진 인류의 긴 역사에 비추어 보면 가히 폭발적인 증가였다. 잉여농산물이 축적되자 새로운 문제 즉, 개인 소유와 전쟁의 문제가 생겨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밭을 만들고 마을을 만들 때 불로서 숲을 때워 만든 듯하다. 이것이 환경파괴의 효시가 아니었을까.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전통사회에서는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난방을 위하여 나무 또는 숯을 태워 열에너지를 얻어왔다. 나무는 잘 건조되지 않으면 화력이 세지 않았고 또한 연기가 많이 발생하였으므로 화력이 세고 연기가 나지 않는 숯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왕경성 (오늘날의 경주)에서는 숯을 사용하여 조리하였으므로 밥 짓는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농사, 관개, 사람과 물자의 수송 등에는 인력이외에도 소나 말 등의 가축의 힘과 풍력, 수력 등의 자연에너지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육지에서는 수레, 우마차, 그리고 바다에서는 돛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람의 힘도 이용하지만 주로 노를 저어 움직이는 갤리선 및 바람만으로 움직이는 범선 등이 사용되었다. 지중해에서 주로 갤리선이 사용되었으며 대서양에서는 범선이 사용되었다. 갤리선은 기원 전 700년경에 페니키아의 상선을 그리스에서 개조하여 군선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571년의 레판토 해전을 끝으로 중요성이 감소하고 곧 이어 대항해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영화 ‘벤허’에서도 나왔듯이 갤리선의 노 젓는 사람들로 주로 노예를 이용하였고 도망이나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사슬로 묶었다고 한다. 해상 무역으로 나라를 유지했던 베네치아는 예외적으로 모든 노를 자유민들이 저었다. 그 후 1805년의 트라팔가 해전에서부터 범선을 이용한 함포전이 시작되었다.
항해에 필요한 나침반은 중국에서 발명되어 사용되었으며 남쪽을 가리킨다는 뜻인 지남철로 이름 지어졌고 인도, 아랍을 거쳐 12세기경에 유럽에 전해졌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항로에서 나침반이 이상하게 움직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고위도에서는 나침반이 부정확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한다.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는 정확한 이유는 16세기에 영국의 물리학자인 W. 길버트 (1544~1603)에 의해 설명되었다. 나침반을 사용하기 전에는 육지를 따라 항해하였으며 원양항해는 아주 어려웠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항해술이 뛰어났던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 600년경에 이집트 제 26왕조의 네코2세의 의뢰를 받아 아라비아 만에서 남쪽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오늘날의 희망봉을 지나 계속 북상하여 지브롤터 해협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지나 고향에 돌아왔다. 이 엄청난 항해에 2년이 걸렸으며 그동안 선원들은 곡식을 심어 수확하기 위하여 두 번 항해를 멈추었다, 출발한지 3년 후에 이집트로 돌아와 보고서를 제출하였다고 전해진다.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전하면서 허황된 이야기라고 일축했지만 오늘날에는 항해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고 보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의 말을 다른 사람들은 믿을지도 모르나 나는 믿지 않는다. 그들이 리비아의 남쪽 끝을 돌아 서쪽 항로를 항해했을 경우 해가 그들이 말한 북쪽이 아닌 왼쪽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헤로도토스가 생각했던 지중해적 관점에서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해가 항상 왼쪽, 즉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페니키아인들이 적도를 통과하여 남반구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항해하면 해가 오른쪽, 즉 북쪽에 나타난다.
바이킹들이 그린란드를 지나 북아메리카 헬루랜드 (베핀 섬)와 마르크란드 (래브라도)를 거쳐 뉴펀들랜드 섬 근처로 추정되는 빈랜드에 상륙하여 한동안 거주하였다는 것이 확실하며 기원후 6세기와 8세기 사이에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오크니 제도 (기원후 579년), 세틀란드 제도와 페로 제도를 지나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것도 확실하니 (기원후 795년) 원양항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흔하지는 않은 듯하다. 아일랜드인 수도사들이 아이슬란드로 이주하였다는 것은 바이킹족이 아이슬란드를 발견했을 때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증명되었다. 그들은 파파르을 내쫓고 바이킹의 족장들은 가족과 하인들을 이끌고 아이슬란드에 정착했다.
930년에는 3만 명이던 아이슬란드의 인구가 1세기 후에 6만 명으로 늘어나자 식량이 부족해지고 영토가 협소해지게 되어 그들은 멀리 서쪽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땅을 찾기로 했다. 982년 바이킹의 두목 붉은 털 에릭은 아이슬란드에서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대가로 3년간 추방되었다. 그는 몇 년 전에 폭풍우 속에서 군비오른이라는 이주민이 목격했다고 하는 땅을 찾으려고 서쪽으로 항해하여 험난한 해안을 발견하였다. 유빙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페어웰 곶을 향해 뱃머리를 돌려 비옥한 계곡으로 둘러싸인 피오르드를 발견했다.
그는 즉시 아이슬란드로 돌아가 이 놀라운 땅의 발견을 자랑스럽게 알렸다. 그는 그 땅의 이름을 ‘초록색 나라’라는 뜻을 가진 그린란드라고 명명하였다. 이듬해 봄 500명의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새로운 땅으로 25척의 배를 타고 떠났다. 유빙과 사나운 북풍에 의하여 10척은 난파하고 나머지 15척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주자들은 그린란드에 브리탈리드 (오늘날의 토누그들리아르픽)라는 마을을 세우고 동부와 서부에 각각 하나씩 식민지를 건설하였지만 곧 거기서는 생활이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재목이 부족하였다. 그들은 모피와 가죽, 바다코끼리의 엄니, 일각고래의 엄니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1000년경에는 약 400개의 농장에 3,000명 정도의 농부가 산 것으로 추정되며 약 5세기동안 존속하다가 사라졌다.
992년 붉은 털 에릭의 아들인 레이프가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린란드에 아주 부족한 재목을 구하기 위해 35명의 선원들과 함께 몇 년 전에 브야르니 헤르욜프손이 우연히 도달한 북아메리카로 향하였다. 레이크와 선원들은 산맥과 빙하에 땅에 상륙하여 헬루란드 (‘목재의 땅“)라는 이름을 붙인 후 남하하여 숲이 무성한 평원지대에 내려 그 곳을 마르크란드 (’삼림의 땅‘)라고 명명했다. 더 남쪽에 내려가 마침내 훨씬 비옥한 땅에 도달하여 집을 짓고 계속 탐험하였다. 게르만인 티르키르가 포도를 발견하여 그 곳을 빈랜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겨울을 보내고 다음해 봄에 그들은 그린란드로 귀환하였다.
1025년에 토르핀 칼세프니가 이끄는 65명의 개척자들이 아메리카로 떠나 3년 정도 머물렀다. 도착한 후 얼마 안 되어 정착민들은 그들이 스크렐링 (:불쌍한 인간들)이라고 불렀던 원주민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 개척을 포기하고 귀국하였고 신세계를 잊어버렸다. 1960년에 노르웨이의 탐험가 헬게 잉그스타와 그의 아내 안내에 의하여 뉴펀들랜드 섬 북쪽의 랑스 오 메도우스 (L'Anse aux Meadows)에서 정착지를 발견하여 이것이 바이킹들의 정착지라고 주장하였고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쟁에는 처음에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주로 이용되었지만 남러시아 초원에 거주하던 인도 유럽인들이 중동, 인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말을 사용하는 수레를 도입하였으며 기원전 900년경에 역시 남러시아 평원에 살고 있던 이란인에 의하여 처음으로 기마의 풍습이 시작되어 비교적 최근까지 기마부대에 의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문명사회 특히 세계국가 (중국,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인도, 로마 등)에 대한 기마유목민족의 대항이 최근까지의 역사를 지배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북쪽에 거주하던 인도유럽계 기마민족 , 페르시아 북쪽의 알타이 계와 우랄계 민족, 중국에 큰 위협이 되었던 흉노, 아바르, 돌궐, 위구르, 거란, 여진, 몽고족들, 그리고 인도서북족의 아프간 족들이 기마유목민족의 좋은 예이다. 전설로 남아있는 아마존족도 일종의 기마유목민족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기마전술을 도입한 사람들은 스키타이 족을 비롯한 이란계 인종이었고 중국에서는 이란계, 토카라계 (대월지인), 알타이계 인종에 의해 기마전이 전달되었다. 중국 고대 역사서인 전국책에 의하면 기원 전 307년에 전국시대 7웅의 하나인 조나라 무령왕이 그 때까지의 전차전을 버리고 기마전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이 호복기사에 의하여 조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었다.
말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겨나 빙하시대에 시베리아와 연결되어 있던 베링기아 (지금의 베링해협)를 지나 유라시아 초원에 퍼져 생활하였지만 정작 고향인 아메리카에서는 멸종되어 유럽인이 말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아메리카 초원에서는 유목문화가 발생하지 않은 듯하다.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되어 사용되었다가 유럽에 전래되었다. 숯, 황, 초석의 혼합물이 폭발하면서 거대한 돌을 멀리까지 날아가게 하는 것이 최초의 대포였다. 그 뒤 많이 개량되어 포탄이 목표물에서 폭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총도 개발되어 전쟁의 양상이 크게 변화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최무선 (?~1395)과 그 아들 최 해산 (1380~1443)에 의하여 화약이 도입 개량되어 특히 왜구의 섬멸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대포의 위력이 처음으로 주목받은 것은 1453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때이다. 그 후 중동과 유럽의 성들은 대포의 공격에 대비하여 보다 견고하게 건설되었다. 인도에서는 자히루딘 무하마드 바부르 (1482~1530)가 1526년 로디왕조의 술탄 이브라임 로디의 군대를 델리에서 대포를 사용하여 격퇴시킨 후 무굴왕조를 건설하였다. 대포가 사용된 후 중세 유럽에 큰 활약을 하였던 기사들은 사라지고 근대적인 국민군이 대신하게 되었다. 말을 타고 철제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전쟁하려면 힘든 훈련과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대포, 철포 등의 사용법은 간단하여 누구나 익힐 수 있으므로 기사들이 몰락하게 되었다. 이 변화를 풍자한 것이 유명한 세르반테스 (1547~1616)가 지은 소설 ‘돈키호테 (Don Quixote)’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가면서 원료수송, 제품생산과 운송 등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어 석탄이 연료로 주로 시작되었으며 자동차가 대중화 된 20세기 중반부터는 석유가 에너지 사용의 주종이 되었다. 석탄을 태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증기기관이 발명되어 공장, 선박 및 기관차 등에 사용되게 되었다. 이들 운송수단에 의하여 인간이 이동하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이 사실이 줄 베르너가 지은 여러 소설 특히 ‘80일간의 세계일주’에 잘 표현되어 있다.
19세기말에 발명된 발전기, 전동기에 의한 전기에너지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으며 전화, 라디오, 전등, 축음기 등이 발명되었다. 특히 전등의 발명은 우리들의 생활습관을 아주 많이 변화시켰다. 우리 인간은 주로 시력에 의존하므로 전통사회에서는 밤에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전등의 발명으로 밤에도 밝게 지낼 수 있게 되자 일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노동착취 등의 부작용도 생겨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긴 했지만.
석유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중동지방에서 대규모로 개발되었고 액체연료로 인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점차 석탄을 대체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에너지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석유 매장의 불균형으로 무기화되어 여러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었으며 체첸독립문제 등의 국제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체첸 인들은 코카서스 산맥의 남동부에 거주하며 주로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1859년 제정러시아에 의하여 합병된 후로 저항이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흑해 남동쪽 연안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생산된 석유가 송유관에 의하여 지중해로 수송되고 있는데 이 송유관이 지나가는 길목에 체첸이 자리 잡고 있으니 러시아가 체첸을 독립시키지 못하는 주요인이다. 1950년대부터는 원자력이 평화적으로 이용되어 원자력발전소들이 많이 건설되어 기존의 석탄, 석유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와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한 때 체르노빌 사건과 같은 핵발전소에서의 방사능 유출에 의하여 핵발전소 건설이 거의 중단되었지만 화석연료가 감소하기 시작한 최근에는 다시 핵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는 빛, 동력, 연료로서 우리에게 많은 일을 제공하였으며 인류 문명의 발달을 뒷받침하였다. 지금 우리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얻어지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정보화 시대에 진입하였으며 자동차. 에어컨, TV, VCR, 기타 가전제품, 컴퓨터 특히, 인터넷, 및 휴대폰 등이 작동되어 경제, 문화 활동을 편리하게 영위하고 있다. 반면에 과도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화석연료가 고갈될 위기에 처해있으며 연소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에 의한 지구온난화, 산성비, 스모그 등의 심각한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각국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하여 대체에너지, 신에너지 개발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긴 하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이해가 서로 엇갈리고 있어 눈에 보이는 성과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미래의 에너지는 어떤 형태일까? 이에 대한 답은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들이 슬기롭게 지금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여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문명이 조만간에 사라지고 우리들도 멸종하리라는 비관론도 존재한다. 이것은 결국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화석연료가 사라지고 대신에 핵융합, 연료전지, 태양전지, MHD발전 등과 자연을 이용한 풍력, 수력, 조력, 지열 발전 등이 주가 될 것 같다.
외계로의 진출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지구의 화석연료, 원자력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방사능 동위원소를 비롯한 지하자원은 빠른 기간 내에 고갈되겠지만 달 및 화성 등에서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는 연료와 자원들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주개발을 위한 신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미래의 에너지의 모든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이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리라고 보아진다.
말과 낙타
남아메리카가 북아메리카와 연결되기 전 남미의 숲에는 말의 조상들과 낙타의 조상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육식성 새 일명 '공포새'의 먹이가 되는 수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북미와 남미가 지금처럼 연결되자 말과 낙타들은 북으로 이동하여 드디어 알라스카까지 왔습니다. 그때는 빙하기인지라 지금의 베링 해가 '베링기아'라고 불리는 육지였고 말과 낙타들은 '베링기아'를 지나 아시아 즉 시베리아로 건너왔습니다. 건조기후인 사막 주위의 초원에서 살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했고 사람들에게 사육되어 가축이 된 것입니다. 말은 처음에는 수레를 끌고 전장을 누볐지만 (러시아 초원에 거주하든 인도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로 마차를 타고 전투를 하여 문명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역시 남러시아 초원에서 살고 있던 이란인들이 처음으로 말을 직접 타는 기마대를 조직하여 문명사회에 극도의 공포를 주었습니다. 이들 이란 인들이 멀리 말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몽고 초원, 고비사막, 바이칼 호수까지 진출하여 거기에서 살고 있던 알타이족에게 기마전술을 가르치고 차츰 혼혈되어 자기들의 말을 버리고 알타이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터키인들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란인, 토카라인, 터키인, 몽골인, 퉁구스인들이 오랫동안 중국과 대항한 흉노, 월지, 오손, 강거,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키르기스, 거란 , 여진, 만주 등의 유목국가를 건설하였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우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그들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한편 낙타는 주로 중동에서 이동, 무역에 이용되었지요. 중동지방에는 혹이 하나인 단봉낙타가 박트리아 동쪽에는 두개의 혹을 가진 쌍봉낙타가 사육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출발하여 멀리 페르시아에 이르는 소위 '비단길'에 낙타를 주로 이용한 대상들이 왕래하면서 비단과 중국의 기술을 서쪽으로 전달한 것입니다. 말은 아메리카에서는 사라져 후에 유럽인들이 말을 도입하기 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유목민과 그들로 인한 문명국가가 생기지 않아 오늘날처럼 거의 사라지는 슬픈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낙타의 친척은 아직 남미에 남아 있지요. 과나코, 라마, 알파파 등이 이직 살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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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화학공학회, “에너지공학”, 교보문고, 1996
첫댓글 와우 ! 끝 없는 도전과 희생 그리고 삶의 처절한 투쟁 어디서나 인간은 살아 남기에 무지 고생들 많이 하였구만요
사실 지금도 모양새는 달라도 역시 자기 밥그릇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펀이지요 단지 지금은 좀 비겁하고 권모술수에 능하다는것 빼고는 비슷한것 같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