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앞둔 릴렉스 타임, 바람이 진수를 깨우다!<연극 이영녀 관람 후기2 >
처지 바꿔 생각해보기 -
그 여자는 밤에 술집에서 일하고 낮에는 대학을 다녀! ?
그 여자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술집에서 열심히 일해!
“팜므 파탈은 없다.” 또한, 착한 여자도 없다!
바람의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상대 여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버리고, 그녀들을 멍청하게 바라본다. 그녀들은 "배신"을 통해 유영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거짓 혹은 변덕 등의 말로 설명하겠지만, 그녀들은 남성적 욕망의 체제 안에서 자기식의 능동적 선택을 꾀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그렇게 완결될지도 모르는 서사에 대한 근본적 공포가 내면에 깔렸다. 그 공포는 결국 응징의 서사를 꿈꾸며, 완결되기도 한다. 거대한 환상이고 종국적 판타지를 꿈꾼다.
회색빛 도시의 밤은 유혹한다! 밤은 더는 잠자는 도시가 아니라 생산적인 원동력을 불어넣는다. 한낮에 쉬었다가 잠든 바람이 빈 섬을 유혹한다. 나의 모든 글속에는 반드시 바람이라는 단어가 양념이자, 나의 캐릭터인 바람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신이 내려준 대자연의 그 바람은 수천수만 개로 나뉘어 철학적인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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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이영녀’예나 지금이나‘닮은꼴’울부짖음 -
"미스코리아 출신…몸을 팝니다"
"돈 많은 유부남의 수표 50만원에 결국 처음으로 몸을 팔게 됐어요"
이글은 얼마 ‘전’ 미스코리아 출신의 이야기다. 이 여인은 좋은 남편과 결혼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뒤 생계유지를 위해 룸살롱 일을 시작, 몸을 파는 속칭 ‘2차(성매매)’를 나가야만 했던 한 여성의 기구한 사연이 누리꾼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소설 같은 이야기를 요약해봤다.
이 여인의 나이 올해로 39살 딱 20년 전에 미스코리아 ‘선’으로 뽑혔다.
이후 한 방송국 관계자가 “탤런트 하면 이른바 먹힐 얼굴”이라면서 “일단 단역으로 방송국 연기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와 왔다. 이러한 계기로 단막극 단역배우로 활동하게 됐다.
어느 날 방송 PD가 술자리 합석을 요구해 왔고, 이후 '성(性) 상납' 요구하며, 귓속말로 “성공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 PD는 또 “오늘 이분과 하룻밤을 함께하면, (여기서 이분은 고위 간부를 칭함) 바로 단막극의 주인공을 할 수 있다. 단막극 하다 미니시리즈로 가고, 예능 가면 바로 넌 스타가 된다”고 꼬셨다.
여인은 그 제안을 뿌리치고 6개월간 서울에서 짧고 굵었던 연예계 생활을 마감한 뒤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대학생활을 했다.
여기서 부터, 글쓴이와 기사전문 -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 대학 땐 남자친구를 참 많이 사귀었던 거 같아요.하지만 전 한 번도 남자들과 이른바 '잠자리'를 하진 않았어요. 제가 얼굴이 예뻐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남자와 얽히다 보니, 저 스스로 몸 관리는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켰어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저를 많이 좋아하는 남자가 두 명 있었어요. 우선 한 명은 지방에 있는 의대를 다니는 오빠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 공사시설업체 사람이었어요.
저는 이 두 명의 오빠와 모두 친하게 지내긴 했어요. 하지만 사귀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라 그냥 저냥 지냈는데, 지방 의대 다니는 오빠가 서울로 가더니 더 어리고 예쁜 여자랑 결혼을 하더라고요. 아버지 사업을 물려 받아 공사시설업체 대표가 된 오빠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국 저는 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됐어요. 그 오빠는 제게 “나와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 오빠는 정말 결혼하고 제가 손에 물 안 묻게 해줬고, 결혼 생활도 너무 행복했어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쁜 딸도 태어났고요.
하지만 제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나 봐요. 저는 정말 나쁜 X. 아니 누구 말대로 서방 잡아 먹을 X이었나 봐요.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제 딸의 2번째 생일날이었어요. 케이크와 음식을 장만하고 기다리는데, 사랑하는 남편이 안 오는 거에요. 그래서 빨리 오라고 남편에게 재촉 전화를 했어요. 그 전화를 받은 우리 남편은 눈길에 과속을 하다 다리 난간에 차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어요. 그 사고가 난 뒤 5일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다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어요(중략).
저는 지금도 시부모님과 연락을 안 해요. 남편이 사고로 죽는 그 순간 딱 2초 전, 최종통화 목록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시부모님께서 “저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고 하시며 펑펑 우시는 거에요. 그리고 제게 “넌 남편이 죽었는데 울지도 않냐”고 하시는데, 왜 저라고 안 슬프겠습니까. 너무 슬프면 눈물도 안 나고 머리에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사고를 당한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이었던 거 같아요. 잠깐 남편의 속옷을 챙기러 집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온 거에요. 병원 관계자는 “남편이 잠깐 의식을 차렸는데 저를 무지 찾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는데, 그렇게 아픈 사람이 갑자기 웃으면서 저를 반기는 거에요. 알고 보니 보통 사람이 죽기 직전, 잠깐 정신과 힘이 돌아온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죽기 전 “우리 딸 잘 부탁해. 아니 많이 사랑했다” 이런 말이 아닌 “절대 자살하지마. 그리고 재혼해!” 저는 남편의 이 유언을 잊지 못해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딱 그 말만 남긴 채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났어요. 그 때 왜 남편이 이 말을 했는지, 살면서 차차 깨닫게 됐죠. 정말 몇 번이나 죽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그 일 이후 모든 재산을 다 시부모님께 드렸어요. 아니 그래야만 할 것만 같았어요. 그때 당시 저는 남편과의 추억이 있는 이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보니 이젠 어떻게 딸을 키워야 하나, 현실적으로 그게 가장 큰 문제더라고요. 한번도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던 중 딸이 아직 어려 집 근처에 있는 동네마트에 취업을 하게 됐어요.
그 마트 대표가 제 이력서도 안 보고, 뭐 했느냐고 안 물어보고 바로 출근하라고 하길래, 첫 직장 생활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한 2개월 정도 다녔을까요. 그 대표가 거래처 수금하는데 같이 가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마침 서서 오랫동안 일하느라 다리도 아프고 바람도 쐴 겸 해서 같이 간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제가 미쳤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따라 가냐”고 했어요. 저도 알아요. 근데 그때 그 대표는 나이도 지긋하고 엄청나게 점잖아 주변 사람들도 다들 칭찬하는 분이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차를 타고 따라나섰어요.
근데 아니나 다를까. 차가 향한 곳은 인근의 한 모텔이었어요. 대표는 제가 혼자 사는 걸 알았나 봐요. 그 대표는 “한 달에 세 네 번 정도 만나주면 월급 외에 100만원 정도 더 챙겨줄 것이며, 출퇴근도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결국 잠자리 한번 하는데 25만원이네요. 전 한번에 100만원 주면 할 겁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그 마트를 바로 그만뒀어요(중략).
하지만 가난은 어찌하지 못했어요. 남편과의 추억 때문에 도저히 이 아파트는 못 팔겠고, 당장 생활비는 필요하고 취직은 전혀 안됐어요. 모든 여자들이 돈이 정말 궁하면 그런가 봐요. 결국 저도 룸살롱이나 노래방과 같은 유흥업소로 가야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다 제 운명이었나 봐요. 저는 그 당시 마담에게 ‘술과 웃음은 팔지만 몸은 절대 안 된다. 속칭 2차는 안 나간다’고 확실하게 못박아 뒀었어요.
그 마담이 그렇게 하라고 했고요. 그런데 룸살롱을 나간 지 한달 정도 됐을 때였을까요. 돈 많은 유부남의 수표 50만 원에 결국 처음으로 몸을 팔게 됐어요. 한번 그렇게 팔고 나니 30만 원에도 몸을 팔고 20만 원에도 팔았어요. 술도 많이 먹게 돼 몸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제 딸에게도 자꾸 화를 내게 되더라고요(중략).
한 달에 한 번 쉬는 일요일. 그냥 넋두리라도 해볼까 해서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남편, 하늘나라에서 잘살고 있는 거죠? 당신 말대로 자살은 안 했지만, 도저히 재혼은 못할 거 같아요. 제 몸이 너무 더러워졌거든요. 재혼할 남자에게 정말 미안해서라도 재혼은 안 해요. 조금만 더 돈을 모아 작은 옷 가게라도 하나 차려 딸과 함께 오순도순 잘 살게요’
출처: [세계일보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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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살아 가기 위해서 ....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야 한다는 말은 자기 변명이라는 생각이 ...
자신의 몸에 대한 경쟁력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쉬운 길을 택하기도 하지요,하느님도,세상 모든 국가에서도 오직 관리가 불가능한 아주 특별한 영혼의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각지대,사회가 만든 시나리오의 한 단면입니다.
선택의 문제인거 같아요. 집팔아서 당분간 생활비하면서 기술을 배우세요. 그리고 작은 가게라도 하세요. 이혼하고 남편죽고 새로운 삶 살고자 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사례도 참고 하시고요. 남편하고 살던 아파트라고 그 아파트 지키는 것보다 아마도 그 아파트를 발판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사망하신 남편도 좋아 하실 겁니다.
제가 생각해도 좋은 아이디어와 삶의 지혜인듯 싶습니다. 아마도 멘토가 없었던지,어쩌면 픽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여자의 사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주위에 친구도 없나 싶고요.
미인이면서도 생각이 깊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공감하나,아마도 유혹의 트라우마가 있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