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두고
지난 봄 학교를 옮겨온 지 일곱 달 지난다. 이전 학교에서 만기를 채웠기에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니 좀 어색했다. 그럼에도 동료들과 학생 여러분들이 잘 도와주어 학교생활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나이가 좀 든 축에 든다고 담임은 비켜 있어 다행이었다. 별도 학습 공간인 별탑원과 별마루를 담당해 이른 아침이나 밤늦은 시각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우리 학생들이 점심 식후면 잔디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걷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천연잔디가 잘 가꾸어진 운동장이었다. 다른 어느 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싱그러운 장면이었다. 푸른 잔디만큼이나 풋풋한 정경이었다. 동료 교사들도 삼삼오오 거닐었다.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취재요청을 해 널리 알리고 싶은 정도였다. 뒤뜰의 별탑 동산엔 점심시간 분수가 솟구쳐 품어 올랐다.
학교 도서관은 ‘학사재(學思齋)’라 불렀다. 논어에서 따 온 구절이었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허망하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점심이나 저녁 식사시간에 들려보면 우리 학생들은 도서관 출입도 꾸준했다. 서가에 비치된 장서도 열람하고 잡지나 정보 검색에도 열중이었다. 교과 공부 틈틈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독서에도 열중하였다.
나는 때때로 교정에 피어난 꽃들을 글감으로 일기를 써 듯 일상의 흔적을 남겼다. 주말은 학교를 벗어나 근교 산행이나 들녘을 걸고는 그 풍광도 스케치하듯 기록으로 남겼다. 정기고사가 끝난 뒤면 학생들에게 내가 생활 속에 남기는 글들 가운데 일부를 가려 유인물로 건넸다. 이때 교정에 피어난 화사한 꽃이나 산자락이나 들녘에 피어난 야생화들을 사진에 담아 곁들여 보여주었다.
우리 학생들의 심성은 착했다. 비가 오면 우산꽂이 관리를 잘해 복도 바닥 물방울이 젖지 않았다. 청소시간엔 모두 제 역할에 충실했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똑 부러지게 해 별도 지도가 필요 없었다. 옷차림도 지정된 교복을 단정히 입고 한창 멋을 부리고 싶은 때인데 화장을 하려는 학생은 극히 드물었다. 청소년들의 말씨가 거친 경우가 더러 있는데 우리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학업 성적은 능력에 따라 기복이 있으나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에도 별탑원이나 별바루로 책을 들고 와 촌음도 아껴 공부한 학생도 있었다. 교실에서 밤 열 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그 이후 시간 별마루로 옮겨와 더 공부하고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주말은 물론 일요일까지 학교로 나와 별마루에서 공부하고 간 학생들도 있었다. 공부벌레(?)라 불러줄 만했다.
지난 1학기 화법 수행평가 때였다. 자신의 직업 선택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급우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설계가 꼼꼼하고 야무졌다. 내가 평가자 위치였지만 오히려 피 평가자인 학생들로부터 한 수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학생들의 꿈이 머지않아 이루어지길 소망했다.
수학능력시험이 꼭 열흘 남았다. 교정 건물 벽면 세 곳 선생님과 후배들의 이름으로 수험생 여러분들을 격려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관련 업무부서에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공모 받아 심사를 거친 구절이었다. “너라면 끄떡없지! / 잘해왔으니까 믿는다, 얘들아!” “ 수 없이 갈고 닦은 능력을 믿으시고 / 대학으로 가는 길 박차를 가하세요.” “너의 조물주는 너다 / 만들어라! 이루어라!”
요즘은 대학입학 전형이 다양해졌다. 수능 등급만으로 대학 입학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현 입시제도에선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소홀할 수 없다. 수능은 우리 학생들이 초중고 과정을 총결산하고 대학과 청춘으로 드는 통과의례가 되다시피 했다. 내가 몸담은 창원여자고등학교 수험생 여러분! 수능 당일 여러분 실력을 최상으로 발휘해 만족한 결과를 나오길 기원합니다. 16.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