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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특종세상' 캡처
[헤럴드POP=임채령 기자] 두봉 주교의 선교 방식이 존경심을 이끌어 냈다.
5일 밤 9시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두봉 주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봉 주교는 "한국 이름이 두봉이다"라며 "두견새의 '두'와 봉우리의 '봉'이다"라고 했다.
이어 "즉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 1954년도에 왔으니 벌써 70년이 넘었다"며 "25세였는데 90세가 넘은 것"이라며 웃었다.
두봉 주교와 이야기는 나누는 여성들에게 제작진은 천주교 신자냐고 물었다. 이에 한 여성은 아니라고 했다. 알고보니 한명은 무교이고 한명은 불교신자였다.
두봉 주교는 원래 천주교 초대 안동교구장을 지냈으나 은퇴 후 성당이 없는 시골마을로 이사와서 주민들과 함께 지낸다고 전했다.
두봉 주교는 "이 마을에는 성당이 없다"며 "그래서 이 집이 그냥 성당이다"라며 웃어보였다. 이어 두봉 주교는 "이 집은 햇빛이 잘 들어와서 참 밝고 기쁘고 떳떳하게 사는 데 힘이 나고 그렇다"고 했다.
두봉 주교에게는 또 전국 각지에서 매일 편지가 온다며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전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두봉 주교는 원래 프랑스 선교사였다. 그러다 50년대 한국행을 결심했는데 그렇게 한국에 온 두봉 주교는 지난 70여년간 한국에서 봉사를 하게 됐다.
두봉 주교는 벌써 90세가 넘었기 때문에 언제든 하느님이 부르면 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두봉 주교는 "두 번이나 내가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있다"며 "한번은 비행기 타다 쓰러졌고 또 한번은 미사를 올리다가 쓰러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세번 째는 영원히 주님에게로 갈지 모르겠다"며 "주님을 만나 뵙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두봉 주교가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바로 전쟁이라고 했다. 두봉 주교는 "6.25 전쟁 때 많은 성직자가 죽었다"며 "신부가 필요했고 그때 보내진 사람 중 하나였다"고 했다.
당시 프랑스, 이집트, 스리랑카, 싱가폴, 베트남, 홍콩, 일본을 거쳐 배로 두 달 반이 걸린 게 한국행이라고 했다. 두봉 주교는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천막 밑에서 그냥 살고 있었고 비참했다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가난한 사람들끼리 도와주자 싶어 내 물건 남에게 주기도 하고 먹을 게 있으면 그냥 나누고 참 어떤 면에서 보면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이상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ek.
두봉 주교는 "누구 보다 '믿어라' 난 이런 식의 선교는 안한다"며 "나답게 살면서 그냥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오고 내 양심대로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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