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노래 겨레의 소리를 찾아서
아리랑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교무부
일하면서 소리하고, 장사 치르며 소리하고, 빌면서 소리하고, 그리워하면서 소리하는 것이 민요다. 민요는 생활 현장의 소리이다. 그 민요 중에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우리가 이 땅에 나서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모든 삶의 여정을 노래하는 아리랑! 그 노래, 그 소리를 따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찾아 나서 본다.
아리랑의 유래
전국에 알려진 아리랑의 곡은 무려 50곡 이상이며, 가사도 3,000가지를 넘는다. 한국의 개별 민요 작품 중에서 ‘아리랑’만큼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애창되는 노래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순수하고 애틋한 정서에 잘 부합되는 민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 민족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리랑’의 발원지는 어디이며 어떤 뜻이 담겨져 있을까?
아리랑에 대한 연구는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시작되어 왔으나, 어원설에 대해 아직 확실히 규정된 것은 없다. 대체적으로 아리랑의 기원은 여음(餘音)01인 ‘아리랑’의 어원에서 그 바탕을 찾고 있다. 다만 아리랑의 최초의 형태가 1930년대까지 정착된 아리랑의 용어와 유사할 것이라 보고 있으며, ‘아리랑’이라는 단어를 실제적 품사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리랑의 역사와 어원은 기원설만 해도 20여 가지가 넘을 만큼 내용이 다양하다. 그 유래 중에서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꼽으면, 첫째로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아리랑설(我離娘說), 둘째로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 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아이농설(我耳聾說), 셋째로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아랑전설(阿娘傳說), 마지막으로 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알영설(閼英說) 등이 있다. 이밖에도 특정 고개 이름인 ‘아라’(자비령)설02, 보통 명사인 ‘아리령(嶺)’설03, 여진어 ‘아린’(취락지)설, 무의미한 여음설 등이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여러가지 해석이 등장하는 것은 ‘아리랑’의 본뜻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로 미루어보면 아리랑이란 용어는 구음(口音)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유래하였다고 봄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이와 같은 전설과 역사는 아리랑의 오랜 숨결이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숨결은 물결이 되어 넘실거리며 곳곳에서 노래되어졌다.
이렇게 전국으로 퍼진 아리랑은, 먼저 한국 전통 민요로서의 3대 아리랑으로 꼽히는 강원도 심심산골의 구수한 정선아리랑, 입술에 쩍쩍 달라붙는 진도아리랑, 매우 꿋꿋하고 경쾌한 밀양아리랑이 있으며, 그 밖에도 춘천아리랑, 해주아리랑, 서울아리랑, 경기아리랑, 여주아리랑, 중원아리랑, 정읍아리랑, 구례아리랑, 울릉도아리랑, 영천아리랑, 평창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원산아리랑, 태평아리랑 등 다양한 아리랑이 전국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모든 아리랑이 각각의 역사와 의미를 가진다 할지라도 그 모두는 우리의 아리랑이요 삶의 노래이다. 일제 초기에 어떤 외국인 선교사는 “조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아리랑이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만큼 아리랑이 우리민족에게 많이 불려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랑은 밭 매면서, 방아 찧으면서, 모내기하면서, 벌목하면서, 배를 타면서, 길을 걷다가도, 지게지고 가면서도, 놀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레 샘이 솟듯 나오던 소리였던 것이다.
새로운 문화 영역을 연 영화, ‘아리랑’
아리랑을 이야기할 때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빼놓을 수가 없다. 회령 출신인 나운규는 고향에서 들었던 민요 아리랑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영화 ‘아리랑’으로 탄생시킨다. 1926년에 상영된 영화 ‘아리랑’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항일민족정신을 주제로 하여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에 핍박받던 우리 민족에게 뜨거운 감격을 주었고, 이상숙(李上淑)이 부른 주제가 아리랑은 겨레의 암묵(暗默) 속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영화의 주제가로 불려진 ‘아리랑’은 전민족의 항일 노래가 되었는데, 현재 우리들이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아리랑’의 노래는 세대별, 성별, 계층별, 문화적 차이를 넘어 전파되어 갔으며, 특히 지리적으로는 동경과 대판 등에까지 레코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리랑은 일제의 압박과 수탈에서 해방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었고 함께 어우러지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또한, 저항의 노래로 민족을 결속하였던 아리랑은 일제 때 김산(본명: 장지락)이라는 조국 해방의 뜨거운 열망으로 살다 간 항일 혁명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가 체포를 당하여 신의주 감옥으로 이송될 때 감옥 벽에다 “나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고 새겨 넣었다고 한다. 김산에게 아리랑은 절망과 좌절의 순간마다 민족을 일깨워 힘을 주는, 식민지 고개를 넘고자 하는 힘의 뿌리였을 것이다.
영화 ‘아리랑’의 등장은 아리랑이 지니는 역사적 상징이 민간전승으로부터 다른 차원의 문화영역으로 옮겨갔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랑은 단순히 단일한 장르의 민요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지닌 음악사·문학사·예술사의 거봉으로서, 우리 민족의 원초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아리랑, 대동(大同)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시간적으로 구한말에서 일제치하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아리랑은 공간적으로는 우리나라 땅을 비롯해 중국 동북삼성 지역, 러시아 연해주와 사할린, 중앙아시아, 일본, 하와이, 미주, 멕시코, 쿠바 등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울려 퍼져 어느 새 한민족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민요가 되었다. 중국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 사는 200만이 넘는 동포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에 사는 5만 명이 넘는 동포들에게 아리랑 노래는 지금도 불리고 있고, 그들에게는 아리랑이 고향과 다름없다. 러시아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도 아리랑은 고향이요, 조국이요, 눈물이다. 아리랑은 한국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불린다.
뿐만 아니라 아리랑은 서울 올림픽 당시 공식 음악으로 선정되어 선수 입장식 때나 시상식 때 연주되어 지구촌 곳곳의 안방에까지 울렸고, 폐막식 때도 각 나라의 선수들 모두가 아리랑 가락에 손에 손을 잡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1989년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 단일팀의 단가로 아리랑을 택하면서 아리랑은 분단을 넘어서 남북이 어우러져 부를 수 있는 노래로 각광받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전야제에서는 조용필이 부른 ‘꿈의 아리랑’과 개막식에 울려 퍼진 역동적인 ‘상암 아리랑’이 희망의 노래로 온 세상을 수놓았다.
아리랑은 이 땅에서 저절로 나오는 자연발생적 노래요, 소리요, 삶이다. 아리랑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고 있어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끼며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함께 부르고 있으면 포근하면서 동시에 내면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무엇인가가 영혼을 자극하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우리 겨레에 흐르고 있는 한(恨)과 흥(興)의 호흡일지도 모른다. 아리랑의 소리는 모일수록 그 깊이와 기운이 커다란 감동으로 거듭 살아난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닌 한국인의 노래요 겨레의 노래이다.
참고자료
ㆍ김연갑, 『아리랑』, 집문당, 1988
ㆍ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4』, 웅진출판사, 1999
ㆍ정우택, 「아리랑노래의 정전화과정 연구」, 『대동문화연구』 제57집, 한국학술진흥재단, 2007
ㆍ김창주, 『아리랑 기원설 연구』, 디지털교보문고, 2008
ㆍ『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VD』, (주)두산, 2002
ㆍ『브리태니커백과사전CD EX』, 한국브리태니커회사, 2002
ㆍ정선아리랑연구소, http://www.arirang.re.kr/
01 시가(詩歌)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음성이나 말로서 없어도 시상(詩想)은 성립될 수 있는 것들을 여음(餘音)이라 하고, 특히 행이나 연이 끝날 때마다 나타나는 여음을 후렴(後斂)이라 한다. 후렴은 여음 중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중요한 형태이다.
02 한사군 중 ‘낙랑’이 ‘아라’에 대한 대역(對譯)인 것을 주장하며 아라(낙랑)를 떠날 때 자비령을 넘었다는 설이다.
03 ‘고유어+한자’의 혼합적 해석으로 ‘아리’는 >>알>아리의 변천형태이며 광명을 뜻하고 한자어인 령(嶺)과 접합시킨 설이다.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