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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맛집기행 회원님들과 통영 당일치기 여행 시
세 번째로 들린 곳
세병관이 있는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국내 여행지
100선에 포함되어 있는 곳입니다.
아침식사 후
충렬사 둘러보고
문화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도보로 이동을 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충렬사 인근에 있어요.
통영삼도수군통제영
(사적 제 402호)
삼도수군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영될 때까지
전라, 충청, 경상의 3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부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최초의 통제영이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떠난 정유재란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져
지금의 통영시 두룡포에 자리를 정했습니다.
1604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부임한 뒤
제 209대 통제사 홍남주까지
무려 290년간 왜적에 대비하는 조선수군의
총본부로서 오늘날의 해군사령부와 같은 곳입니다.
1998년 2월에 사적으로 저정되어 사라진 건물들에 대한 복원계획을
수립하고 세병관, 운주당, 백화당, 중영청, 병고, 산성청, 12공방 등의
건물들을 복원하였답니다.
한 겨울인데도 날씨가 너무 포근하고 화창하여
즐거움이 더합니다.
삼도수군통제영 내에 있는
세병관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토지대장군이라고 적혀 있는
통영 문화동 벅수
중요민속자료 제 7호
벅수(장수)는 나무나 돌의 상부에 신장상이나
귀면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부에 신장명이나 이정을 새깁니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해안지방에 널리 분포되고 있습니다.
돌벅수는 마을의 전염병과 액운을 막기 위한
비보장승으로서 동남방이 허다하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광무 10년(1906년)
세병관 입구에 벅수계를 만들어 세운 거랍니다.
높이 198cm, 둘레 160cm
주차장에서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올라가는
길몫에 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을 관람하기 위해선
입구에서 티켓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성인 기준 3,000원
우리 일행은 문화해설사님의 도움으로
단체할인을 받았어요.
일단 종합안내도 한번 둘러보고
안으로 이동합니다.
망일루(望日樓)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들어가는 누각입니다.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누각이라고 하여
일명 세병문이라고도 한답니다.
광해군 3년(1611년) 제10대 우치적 통제사가 세운
종루(鐘樓)입니다.
오래전 훼손되어 없어졌으나 2000년 10월
통영시에서 복원하였다네요.
수항루
임진왜란의 승전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숙종 3년(1677) 제 58대 윤천뢰 통제사가 건립하였습니다.
원래 남문 밖에 위치해 있었는데
해안매립으로 인해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려
198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중영청과 응수헌
중영청은~
통제사의 참모장격인 우후의 군영으로
우후영이라고도 하였답니다.
통영세무서가 있던 자리였는데 무전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발굴유구와 문헌에 의해서 2011년에 중건하였습니다.
응수헌은~
중영안에 있었던 영빈관으로
일명 응수정이라고도 한답니다.
중영청과 응수헌은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길몫
왼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냥 통과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망일루로 올라가는 돌계단
광해군 3년(1611) 제10대 우치적 통제사가 세운 망일루
돌계단 만큼은 그 때 그 당시 그대로 입니다.
좌청
군관과 병사가 대기하던 곳입니다.
산성청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 등이 근무했던 곳입니다.
규모가 작은 곳에서 어떻게 많은 군인들이
근무했는지 궁금합니다.
지과문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지과문 담벼락
지과문 보다는
양쪽으로 길게 조성된 담이 멋집니다.
지과문을 통과하자 그 규모에
깜짝 놀랄만한 세병관이 눈에 들어옵니다.
"와~ 진짜 크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세병관 (국보 305호)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습니다.
제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입니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입니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의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습니다.
세병관 주변에 이처럼 넓은 공간이 있어
세병관이 더욱 더 웅장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세병관 바닥은 마루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건축물 중 바닥면적이 가장 넓다고 합니다.
단청도 상당히 화려하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네요~
조선시대에 기중기도 없었을 텐데
저 큰 나무를 어떻게 올렸는 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 는 뜻이랍니다.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입니다.
세병관 기둥
사진으로는 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요~
직접 보면 상당합니다.
통영 사람들은 다리 굵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놀린답니다.
"저저저 다리 좀 봐라~
세병관 기둥보다도 더 굵네~"
그만큼 기둥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여자분들~
바로 마라토너 전용재처럼 달리고 또 달리겠지요.
세병관 왼쪽 끝에 있는 기둥~
문화해설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무늬가 나무의 자연스러운 흔적이라고 하는데요.
참 신기합니다.
살아생전 산전수전 다 겪은 나무 같습니다.
처마 부분도 환상적입니다.
이게 바로 한국의 멋 아닐까요.
세계 제일의 멋입니다.
세병관을 둘러보고 왼쪽으로 접어들자
많은 기와집이 보입니다.
잉번청(仍番廳)
숙종 14년 (1688년) 제66대 이세선 통제사가 건립하였으며
통제영 공방의 건물이나 물건 등을
지키는 사람이 근무하던 곳이랍니다.
안에 조선시대 옷이랑 소품이 있어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곳입니다.
안쪽에 많은 기와집들이 12공방입니다.
12공방(工房)
제반 군기와 진상품을 생산했던 곳으로
군수품 생산과 민생에 필요한 물품은 물론 조정에 진공품과
때로는 중국가는 사신의 현상품까지도 조달하는
조직적인 분업의 군영 공방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초기 변방에서 각종 군수품을 자체 조달목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한산진에서 시작하였으나 (1593년) 임진란 이후
통제영이 창성하자 크게 번창하여 다양한
생활용품까지도 생산했다고 합니다.
한곳한곳 둘러봅니다.
야장방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 및 각종 철물을
주조하던 곳으로 19세기 초기에는 연마장, 도자장 등으로
구성된 연마방이 별도로 있었답니다.
야장방에서
쇠를 가공하고 있는 두 장인입니다.
이처럼 공방마다 작업하는 모습을
밀랍인형이나 사진으로 재현해 놨어요.
완성품인 장검을 비롯하여 농기구 등도 있구요.
은방은~
금과 은을 세공하여 각종 장신구를 만들던 곳이구요~
주석방은~
주석과 백동으로 각종 장석을 만들던 곳입니다.
은방과 주석방 안에는
통영에서 4대째 장석일을 하고 계시는
중요무형문화재 64호 두석장 김극찬 선생님의
사진이 반깁니다.
소목방
각종 나무로 장롱 등
가구 및 문방구를 만들던 곳입니다.
소목방 내부입니다.
작업한 흔적이 있는 걸 보니
장인이 한번씩 나와 시범을 보이는 듯합니다.
화원방
지도와 수조도 및 의장용 장식화를 그린 곳입니다.
지금의 화실과 같은 곳이겠지요~
패부방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들었으며
후기에 신설되었답니다.
상자방
버들가지나 대오리를 엮어 상자류를
만들던 곳입니다.
총방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유건 등을 만들던 곳입니다.
입자방
통영갓으로 일컬어지는 흑립을 비롯한
벙거지, 패랭이 등의 갓을 만들던 곳입니다.
선자방
부채를 만들던 선자방 건물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공방이 있습니다.
각종 공예품에 옻칠을 하던 칠방을 비롯하여
화살을 넣는 동개를 만들었던 통개방,
신발을 만들었던 화자방,
말 안장을 만들었던 안자방,
가죽제품을 만들었던주피방 ,
둥근부채를 만들었던 미선방 등 다양합니다.
세병관 뒷모습입니다.
12공방을 둘러보고 오른쪽으로 들어서자
백화당 건물이 보입니다.
백화당 (百和堂)
선조 36년(1603녀)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하였습니다.
중국 사신 등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청인데 비장은 지방장관 및 중국사신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도 맡았으며
지방장관이 임의로 임명하였답니다.
통제사비군도 보입니다.
통제사비군은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동향으로 58기를 4줄로 나란히 세워놓은 것을 말합니다.
이 통제사비군은 통제사가 부임하여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에
이 지방 군, 관, 민이 세운 일종의 숭덕비인데
표제도 숭덕비, 추사비, 거사비, 사적비, 불망비, 타루비, 유애비,
선정비 등 다양합니다.
운주당
인조 23년(1645년) 제21대 이완 통제사 때 경무당과
함께 창건하였답니다.
운주는 "운주유악지" 중에서 나온 말로
군막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뜻~
즉 통제사가 통제영 군무를 보는 집무실이랍니다.
운주당 안에 있는 창
통제사가 지휘하던 자리겠지요~
"여봐라~ 왜놈들 동향을 똑바로 살피거라~"
방 안에서는
통제사가 지도를 보며
전시 작전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운주당에서는
조선시대 입었던
각종 의복도 볼 수 있습니다.
희한한 나무입니다.
분명 지금이 한겨울인데
이렇게 푸른잎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네요.
내아(內衙)
통제사가 거처했던 곳으로 지방관청의 안채에 해당됩니다.
현재 안방, 대청, 건넛방, 부엌, 찬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아의 부엌입니다.
참 소탈하지요~
내아 안방에서 통제사가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주전소
통제영 주전소 유구는 조선시대 동전을 만들던 곳
국내 최초로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와 노가니, 화로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통제영 내 공방지와는 별개로 통제사가 집무를 관장하는
운주당지 주변에서 확인되는 것은
특별한 관리, 감독을 위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주전소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뿐인 점을
참고해 볼 때 통제영에서도 화폐를 주조했다는 새로운 실체가
확인된 것으로서 화폐사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영 앞바다와
삼도수군통제영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육의정과 의두헌입니다.
육의정은~ (위쪽 육각형 정자)
정조 18년 (1794년) 제148대 이득제 통제사 때
세웠던 작은 정자입니다
의두헌은~ (위쪽 사각형 정자)
순종 5년 (1805년) 제153대 류호원 통제사 때
세웠던 작은 정자입니다.
육의정과 의두헌을 경유하여 언덕에 올라서자
삼도수군통제영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통영시내와 통영 앞바다도 훤하게 보이구요~
가슴이 후련합니다.
삼도수군통제영
경남 통영시 세병로 27
전화 : 055-645-3805
삼도수군통제영 내에 있는 세병관
어마어마할 정도의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통영여행 시 꼭 둘러보시면 좋을 듯 싶어요.
세병관
약 370년 전에 건립된 건축물이라고 하는데요~
그 당시 어떻게 거대한 용마루용 통나무를 들어 올려
고정시켰는 지 미스터리입니다.
우리 선조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음 목적지인 동피랑마을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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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같이 봤는데도 새롭네여
공부 너무 많이 하셨습니다.
블로그 운영하면서 느지막하게 공부 꽤나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설쳐대니 집에서 컴 중독되었다고까지 하네요~
사실 세병관 보기 전에는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나하나 아는 재미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킹덤님 반가워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함께 했던 하루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먹으면서 공유한 까닭에 함께 한 횐님들 아직도 생각나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좀 늦게 올렸습니다.
공부하면서 포스팅하는 거라 시간이 필요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유익하고 만족한 여행이었습니다.
꽃피는 봄에 다시 함 뭉쳐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제가 보지 못한 장면도 많네요^^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죠~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와우 역시 짱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그 때 참 좋았어요.
꽃 피는 봄에 또 가야지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가이드짱이시네요~~~~~
감사감사요~~~~^^**^^~~~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추억 마음껏 꺼내어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