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죽음에 대한 묵상을 인도해 주신다. 기억에 남는 지인들의 죽음은 첫째로 결혼 후 세명의 처남이 둘째부터 시작해 막내까지 차례로 죽어간 기억이다. 뇌전증을 앓아 재능이 많음에도 제대로 사회활동을 못하는 둘째 처남은 거의 우리와 함께 지내다시피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얼마를 지내던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형제간의 일로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는 차량과 정면충돌이었다. 피하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즉사했다.
첫째처남은 건설업에 종사하다가 건강문제로 고향에 내려와 지내던중 간경화로 잠을 자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다행은 결혼해 두명의 아들을 남겼다는 것. 셋째처남은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위암이 발견됐지만 너무 늦게 발견돼 제대로 손도 못써보고 별세하고 말았다. 세명의 처남중 투병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터이다보니 미이라처럼 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고통을 당하느니 빨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사연많은 인생을 사신 모친은 외롭고 쓸쓸한 마지막을 보내셨다. 더군다나 코로나 시절이다보니 요양병원에서 별세하셨다. 임종이 임박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찾아갔으나 이미 별세하신 후였다. 그래도 우리나이로 90까지 사셨으니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중국에서 한인교회를 출석하며 인연을 맺은 분들도 꽤 여러명이다. 그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집사님 한분은 교회내 등산팀 대장을 맡아 나와는 매우 친한 친분관계를 유지했는데, 귀국한 이후 갑자기 별세했다는 비보를 들어야 했다.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됐다. 투자실패로 인한 투신자살이었다. 그야말로 황망한 소식이었다.
최근에 별세하신 이건재집사는 중국에서 만나 15년간을 교제하며 정도 많이 드신분이다. 재발한 암을 수술했지만 결국은 극복을 못하고 별세하셨다. 암이 재발하면 희망이 없다는 결론이다. 주변에서 암이 재발해 수술하신 분들은 대다수가 얼마 못버티고 별세를 하였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연기자 이선균씨의 경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가 유명한 연예인이라 아무래도 표적이 된 셈이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의 입장에서도 뭔가 실적을 내겠다는 과욕이 결국은 아까운 한사람의 가장을 파멸로 몰아간 셈이다. 이 세상에는 이선균보다 다 악하고 반드시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막강한 권력과 돈이 있다는 방패때문에 백주대낮에도 활개를 치며 살아가고 있다.
어차피 떠나야하는 인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시간이라도 더 이 세상에 머물고 싶은 욕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