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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 함을 말한다.
手 : 손 수(手/0)
不 : 아닐 불(一/3)
釋 : 풀 석(釆/13)
卷 : 책 권(卩/6)
(유의어)
수불폐권(手不廢卷)
출전 :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
手(수)는 손을 나타낸다. 여기에서의 不(불)은 ‘∼않다’라는 뜻이다. 釋(석)은 ‘풀다, 내버리다, 놓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放(놓을 방)과 함께 쓰인 석방(釋放)은 ‘풀어놓다’라는 뜻이 되고 解(풀 해)와 함께 쓰인 해석(解釋)은 ‘풀고 풀다’ 즉, '풀어놓다’라는 뜻이 된다. 卷(권)은 ‘말다, 둘둘 감다’라는 뜻이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나무를 얇고 길게 잘라서 그 표면에 글씨를 쓴 후에 가죽 끈으로 연결하여 책을 만들었다.
책(冊)이라는 한자는 이러한 나뭇조각이 끈으로 연결된 모양을 나타낸다. 그러나 나뭇조각은 무겁고 또한 분량이 많았으므로 후대에는 비단과 같은 옷감에 글씨를 썼다.
그리고 이를 말아서 보관하였다. 이렇게 말아 놓은 것 하나가 한 권(卷)의 책(冊)이다. 글자 수가 많은 책(冊)은 당연히 여러 권(卷)으로 나눠 보관했다.
오늘날 한 편의 대하소설이 여러 卷으로 구성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의 卷이라는 말은 이러한 연유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卷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말다’이기 때문에 卷이 들어간 한자는 ‘말다’라는 뜻과 관계가 있다.
증권(證券)이라고 하는 경우의 권(券)에는 刀(칼 도)가 들어가 있다. 이는 글씨를 써서 말아 놓은 것을 칼로 잘라 놓은 것이라는 말로서 증서(證書)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증권은 증거가 되는 보증서라는 뜻이다.
태권도(跆拳道)는 발로 밟고 주먹을 쥐는 무예라는 뜻이다. 跆(태)는 ‘밟다’라는 뜻이고, 拳(권)에는 手(손 수)가 들어가 있으므로 ‘손을 말다’ 즉 ‘주먹을 쥐다’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위의 의미를 정리하면 석권(釋卷)은 ‘책을 놓다’가 되고, 부석권(不釋卷)은 ‘책을 놓지 않는다’가 된다. 그러므로 수불석권(手不釋卷)은 ‘손이 책을 놓지 않는다’ 혹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라는 뜻이 된다.
항상 손에 책을 들고 글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책을 가까이 두고 독서하는 것을 가리킨다.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에서 후한(後漢)이 멸망한 뒤 위(魏)나라, 오(吳)나라, 촉한(蜀漢) 세 나라가 정립한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손권(孫權)의 장수 여몽(呂蒙)은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장군이 되었다. 손권은 학식이 부족한 여몽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하였다.
독서할 겨를이 없다는 여몽에게 손권은 자신이 젊었을 때 글을 읽었던 경험과 역사와 병법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고 하면서 후한(後漢)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 위(魏)나라의 조조(曹操)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여몽은 싸움터에서도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뒤 손권의 부하 노숙(魯肅)이 옛 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박식해진 여몽을 보고 놀랐다. 노숙이 여몽에게 언제 그만큼 많은 공부를 했는지 묻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하였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여몽의 고사로, 손권이 여몽에게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권유하면서 말한 수불석권은 손에서 책을 놓을 틈 없이 열심히 글을 읽어 학문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이상(理想)을 위하여 산다. 이상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여타의 동물은 이상이라는 것이 없다. 다만, 현실만을 위하여 산다. 즉, 먹기 위하여 살고, 살기 위하여 먹는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가 않다. 먹기도 해야 하겠지만, 먹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를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상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어떠한 꿈을 그리며 산다는 말이 된다. 이 꿈이란 것은 현실이 아니란 말이다. 현실 이상의 것, 초현실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꿈과 이상은 꼭 같지가 않다. 꿈은 허탄한 가공의 환상을 가리키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상은 결코 허황한 망상이 아니다. 초현실적이고, 따라서 비현실적인 점에서는 이상과 꿈이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이상은 실현의 가능성이란 것을 수반하는 사고작용이다.
이상은 비현실적인 것, 초현실적인 것이란 점에서 우리 현실의 권외에 있으면서도, 이것을 추구하기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면 도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꿈과 다르고, 따라서 공상이 아니다. 꿈과 이상은 이와 같이 정신세계의 차원이 다르다.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여 그것을 실현하면, 그것은 벌써 현실이 되어 버리고, 이상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게 되며, 그 이상의 것이 다시 이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그것이 실현되었느냐 않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 하겠다.
가령, 사람이 월세계에 가서 살려고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자.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요, 아직 현실은 아니다. 우리의 월세계에서의 생활은 오늘날까지도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현실로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가능성만은 충분히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월세계에서 몇몇 사람의 이상과 마찬가지로 별장도 짓고, 농장도 건설하게 되면, 그 때에는 이것이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은 이상을 추구하면서 산다. 그리하여 그것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의 실현이라는 것은 그다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리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한 가지는 노력이니, 노력은 다시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 일면은 이상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물질의 축적이요, 다른 일면은 이러한 물질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육체적 부지런이다. 즉, 근면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하고 정교한 물질이 풍부하게 있다 할지라도, 육체적 근면이 없이는 그 가치를 발휘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대가는 지혜(智慧)이다. 지혜도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으니, 그 하나는 예지(叡智)요 다른 하나는 지식(知識)이다. 예지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지만, 지식은 후천적으로 배워 얻는 것이다.
그런데 예지가 아무리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하지마는, 후천적인 지식을 연마하고 수득함으로써 이것을 계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하고, 가능하고, 긴절한 활동은 지식을 획득하는 그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을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가장 초보적이요 원시적인 방법은 체험으로써 지식을 얻는 일이다.
불을 만져 보고 뜨거움을 느끼게 되면, 불은 뜨거운 성질, 즉 열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이 체험으로 한 가지 지식을 배운 것이다.
또, 얼음을 만져 보고 차가움을 느끼게 되면, 얼음은 차가운 성질을 가졌다는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실제의 체험으로써 일생 동안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지식은 그 종류와 양이 무한하다. 오늘날까지 인류가 알아 낸 지식은, 한 개인이 한평생 체험을 거듭할지라도 그 몇만분의 일도 배우기 어려운 것이다. 또, 지식중에는 체험으로써 배우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도 많다.
가령, 콜레라균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독성을 가진 미생물인데, 이것을 어떠한 개인이 먹어 보아서 그 성능을 증면하려 하면, 그 사람은 그 지식을 얻으려는 것은 매우 졸렬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지식을 획득하는 둘째 방법은 배우는 일이다. 즉, 교육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어려서는 가정교육을 통하여, 좀 자라서는 학교교육을 통하여,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교육에 의하여 지식을 배우게 되나, 도저히 그 전부를 배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학교교육과 같은 것은 인격 함양과 더불어 지식 획득을 주목적으로 하는 전문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지식을 획득하는 제3의 방법은 연구와 터득이다. 배움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이지만, 터득은 자력으로 미지의 새로운 지식을 향하여 개척하여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능동적이요 적극적인 지식 획득의 방법이니, 수확에 비하여 그 노력은 막대한 바가 있다.
기지(旣知)의 지식과 끈기있는 실험으로써, 또는 추리로써 대상에 대한 진상을 밝혀 내면, 거기서 비로소 새 지식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새 지식을 향하여 연구하고 터득해 나가는 데에는 선배나 기타 전문가의 힘을 빌리게 되는 일도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불편과 곤란이 개재된다.
그러므로 어느 방향의 전문가가 되든지, 대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독력(獨力)으로 개척하여 나가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비교적 쉽사리 입수할 수 있는 재료가 서적이다.
서적은 어떠한 종류를 막론하고, 그 저자가 적거나 많거나 간에 자기의 체험과 상상력 또는 추리력을 근거로 하고 토대로 삼아서 저작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무한한 노고와 오랜 세월의 연마를 거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노작(勞作)의 결정체인 서적을 읽는다면, 저자의 장구한 기간의 체험이나 연구를 독자는 극히 짧은 시일에 섭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서적에서 얻은 지식이나 암시에 의하여, 그 저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새로운 지식을 터득하게 되는 일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서적은 어두운 거리에 등불이 되는 것이며(暗衢明燭/암구명촉), 험한 나루에 훌륭한 배가 된다(迷津寶筏/미진보벌)고 일러 왔다.
앞에서, 사람은 이상을 위하여 산다고 말한 바 있다. 그와 거의 같은 내용으로 사람은 문화를 위하여 산다고 다시 말하고 싶다. 문화를 위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함이란 뜻이다.
그리고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된다. 즉, 새 문화를 생산한다는 것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인생의 목적은 기성 문화에 얼마만큼 새 문화를 더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논술했다.
예컨데, 이를 인생의 목적≒α+χ라는 공식으로 나타낸다면, 이 공식의 α는 기성문화요, χ는 각 개인이 창조한 새문화이다. 그리하여 χ는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영(零)이 되는 수도 있다.
혹, 사람에 따라서는 χ가 마이너스(陰數)가 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 하면, 기성문화를 파괴할 뿐이요 새 문화를 조금도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이상을 가졌다고 할지, 못 가졌다고 할지 의문이다.
설령,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런 이상은 인류에 해독을 끼치는 종류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과연 그런 것도 이상이란 명칭을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던, 사람만이 이러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졌고, 또 창조할 능력도 가졌다.
그리하여 사람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화를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로써 인간과 금수(禽獸)를 구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람만이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요, 일반 동물들은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오직 생존만을 하고 있다.
문화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지식의 소산인 것이다. 이상이나 문화나 다 같이 사람이 추구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요, 또 인생의 목적이 거기에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일치되는 것은 아니니, 그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즉, 문화는 인간의 이상이 이미 현실화된 것이요, 이상은 현실 이전의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두 가지를 추구하여 현실화시키는 데에는 지식이 필요하고, 이러한 지식의 공급원으로는 다시 서적이란 것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
문화인이면 문화인일수록 서적 이용의 비율이 높아지고, 이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서적 의존도 또한 높아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서적 중에는 입수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는 불평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 낸 서적의 양은 실로 막대한 바가 있다.
옛날에도 서적이 많다는 표현을 오거서(五車書)와 한우충동(汗于充棟)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오거서나 한우충동 따위의 표현으로는 이야기도 안 될 만큼 서적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은 일반적으로 책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시험이란 위력 때문이랄까, 울며 겨자먹기로 교과서를 파고들지만, 일단 졸업이란 영예의 관문을 돌파한 다음에는 대개 책과는 인연이 멀어지는 것 같다.
옛말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 속에 가시가 돋친다(一日不讀書 口中生刺/일일부독서 구중생자)는 말이 있지만, 오늘날은 하루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문제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경쟁이 격심한 마당에서는 하루만큼 낙오가 되어, 열패자(劣敗者)의 고배와 비운을 맛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지혜와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널리 남의 의견을 들어서 중지를 모아 놓지 아니하면, 자기 깜냥의 정와(井蛙)의 편견으로 독선과 독단에 빠져서 대사를 그르치는 일은 옛날부터 비일비재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벌의 거두와 사업가들도, 그 성공 비결의 중요한 일부분은 독서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 공장에서 나오는 생산품을 어떻게 하면 사용하기에 가장 편리하고, 내구력이 있고, 또 가장 생산원가를 적게 하여 제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동시에, 수요자의 구미에 맞도록 고안할 수 있을까 온갖 심혈을 경주한다는 것이다.
또, 어떻게 하면 자기 상점에 고객을 많이 끌 수 있을까, 가장 견고하고 좋은 상품을 선정하여 가장 보기 좋게 진열하고, 또한 최대한의 친절한 서비스 수단을 발휘하여 고객의 환심을 사기에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직접 그 방면의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보겠지만, 그 주인이나 책임자 자신이 각각 그 방면의 서적을 물색하여 탐독과 연구를 거듭한 나머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안출(案出)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실업계의 그 많은 사장님들이 수불석권(手不釋卷)한다는 것은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니, 실로 한심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도서는 옛날부터 내려오며 인류의 가장 우수한 지성인, 예지자(叡智者)들의 두뇌의 총화를 축적한 저장고라 하겠다.
그 속에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 미술, 음악 등 학술과 예술에 관한 것은 물론, 기타 취미와 오락 등 인간 생활에 관계된 것으로 없는 것이 거의 없다.
요는, 이와 같이 많은 도서 중에서 어떻게 하면 자기가 요구하는 서적을 찾아내며, 또 어떻게 하면 그 종류 중에서 가장 우량한 것을 찾아 낼 수 있겠는가가 문제된다.
사람도 많으면 그 중에는 선인(善人)도 있고 악인(惡人)도 있듯이, 서적도 워낙 많으니까 그 중에는 양서(良書)도 있고 악서(惡書)도 있다. 그리하여 그 많은 도서 중에서 양서를 골라내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자기가 요구하는 분야에 능통한 선배나 전문가에게 문의하는 편이 가장 손쉽고 편리하지만, 이것은 어느 경우나 가능한 일은 아니요, 또 타당한 일도 아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가 많다.
모든 일은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 그 방면의 서적 중에서 우선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내용과 차례 등에 의하여 선택해서 읽어 볼 일이다. 이와 같이 하기를 수삼권(數三卷) 하면, 자연히 그 양부(良否)를 판단하여 가려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학문의 연구는 이와 같이 하여 점점 깊이 들어가고 폭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노력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결코 아낄 것이 아니다.
매사가 정성과 노력을 안 들이고 공(空)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또 노력을 들이면, 그 노력은 결코 허사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 노력의 효과는 언젠가는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거두어지게 마련이다.
▶️ 手(손 수)는 ❶상형문자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마찬가지로 손의 모양에서 생긴 글자는 又(우; 또), 寸(촌; 치) 따위가 있다. 手(수)는 投(투; 던지다), 招(초; 부르다) 따위 다른 글자의 부분이 되면 재방변(扌=手; 손)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手자는 '손'이나 '재주', '수단', '방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다. 본래 '손'을 뜻하는 글자로는 又(또 우)자가 있었지만, 후에 뜻이 바뀌면서 금문에서는 手자가 '손'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손의 기능이나 역할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재주나 솜씨, 수단 등과 같이 손과 관련된 기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手자는 운전수(運轉手)나 가수(歌手)와 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手(수)는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두는 기술의 뜻으로 ①손 ②재주, 솜씨 ③수단(手段), 방법(方法), 계략(計略) ④사람 ⑤힘, 도움이 될 힘이나 행위 ⑥필적(筆跡) ⑦권한(權限), 권능(權能) ⑧가락, 곡조(曲調) ⑨바둑돌이나 장기 말을 한 번씩 두는 번수 ⑩손수, 스스로 ⑪쥐다, 손으로 잡다 ⑫속박하다, 묶어 두다 ⑬손바닥으로 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발 족(足)이다. 용례로는 죄인의 손목에 걸쳐 채우는 수갑(手匣), 손으로 움직이는 것을 수동(手動),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 방도를 수단(手段), 늘 가지고 다니면서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마한 공책을 수첩(手帖), 의료 기계를 써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을 수술(手術), 정해진 급료 이외에 경우에 따라 덧붙여 주는 보수를 수당(手當), 손과 발 또는 손발과 같이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을 수족(手足),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망을 폄을 수배(手配), 순서나 과정을 수순(手順), 손아래나 부하를 수하(手下), 일을 꾸미고 치러 나가는 재간을 수완(手腕),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을 적은 기록을 수기(手記), 어떤 일에 손을 대어 시작함을 착수(着手), 잘못하여 그르침 또는 그 짓을 실수(失手), 기쁨과 찬성과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거나 할 때 두 손뼉을 마주 두드림을 박수(拍手),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운동이나 기술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을 선수(選手), 얼굴을 씻음을 세수(洗手),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손에 들어옴 또는 손에 넣음을 입수(入手),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鼓手),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를 공수(拱手), 손에 땀을 쥔다는 뜻으로 위험한 광경이나 사건의 추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몹시 긴장됨을 이르는 말을 수악한(手握汗),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 함을 이르는 말을 수불석권(手不釋卷), 형제간의 우애를 일컫는 말을 수족지애(手足之愛), 자기에게 직접 딸린 병사 또는 자기의 수족과 같이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수하친병(手下親兵),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뜀을 일컫는 말을 수무족도(手舞足蹈),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손을 묶인 듯이 어찌 할 방책이 없어 꼼짝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뻔히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꼼짝 못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속수무책(束手無策),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을 양수집병(兩手執餠),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녹사수수(鹿死誰手), 쉽게 승부를 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타수가결(唾手可決)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釋(풀 석, 기뻐할 역)은 ❶형성문자로 釈(석)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분별할변(釆; 분별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睪(역, 석)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睪(역, 석)은 짐작으로 범인을 잡다, 물건을 분류하는 일을, 采(채)는 자잘한 것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釋자는 '풀다'나 '설명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釋자는 釆(분별할 변)자와 睪(엿볼 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睪자는 노예를 감시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엿보다'는 뜻을 갖고 있다. 釋자는 이렇게 감시하거나 선별하는 것을 뜻하는 睪자에 동물의 발자국을 그린 釆자를 결합한 것으로 동물의 발자국을 보고식별이 가능함을 뜻하고 있다. 사냥하는 사람들은 땅 위에 찍힌 동물의 발자국을 보고 어떤 동물인지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釋자는 어떠한 사물을 보면 능히 알아낼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釋(석, 역)은 뒤섞인 사물을 풀어내는 일의 뜻으로 (1)아침 저녁으로 부처 앞에 예불(禮佛)하는 일 (2)새벽에 목탁과 종을 쳐서 여러 사람을 깨우는 일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풀다 ②설명(說明)하다 ③풀리다, 깨닫다 ④(의심이나 오해가)사라지다, 벗다 ⑤용서(容恕)하다 ⑥놓아주다, 석방(釋放)하다 ⑦내놓다, 내버리다 ⑧쫓기다, 추방(追放)하다 ⑨(쌀을)씻다 ⑩깔다, 펴다 ⑪따르다, 쫓다 ⑫적시다 ⑬(활을)쏘다 ⑭석가(釋迦), 불교(佛敎) ⑮풀이, 해석(解釋), 주해(註解) 그리고 ⓐ기뻐하다(역) ⓑ즐거워하다(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흩어질 만(漫), 놓을 방(放), 느릴 완(緩), 풀 역(繹), 풀 해(解)이다. 용례로는 법에 의하여 구속된 사람을 풀어 자유롭게 함을 석방(釋放), 마음이 환하게 풀림 또는 미심쩍었던 것이나 원한 등이 풀림을 석연(釋然), 사실을 설명하여 내용을 밝힘을 석명(釋明), 염려하던 마음을 놓음을 석려(釋慮), 짚신을 벗는다는 뜻으로 처음으로 벼슬길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석갹(釋蹻), 맡아 보던 정무나 직무를 내어 놓음을 석무(釋務), 중들이 사는 곳 곧 절을 이르는 말을 석원(釋苑), 부끄러운 마음을 풀어 없앰을 석참(釋慙), 어떤 일이나 현상 등을 자기 나름으로 어떤 의미나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해석(解釋), 몹시 묽게 섞어 타거나 풂을 희석(稀釋),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자세하게 풀이함을 주석(註釋), 강의하여 해석함을 강석(講釋), 일정한 보증금을 받고 미결 구류 중의 피고인을 석방하는 일을 보석(保釋), 의심 등이 얼음 녹듯이 풀림을 빙석(氷釋), 이름난 승려를 명석(名釋), 한문에서 글의 뜻을 새김을 훈석(訓釋), 옳고 그름을 따지어 가며 해석함을 변석(辨釋), 용서하여 석방함을 원석(原釋), 글자 뜻의 해석을 자석(字釋), 글 가운데서 필요한 부분을 뽑아 적고 알기 쉽게 풀이함을 기석(記釋), 글의 내용이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풀이함을 설석(說釋), 한자로 표기한 글을 우리 나라 글이나 말로 해석함을 언석(諺釋), 문장이나 시가를 비평하고 주석하는 일을 평석(評釋), 죄인을 용서하여 놓아 줌을 유석(宥釋), 죄인의 무고함을 밝혀서 석방함을 소석(昭釋), 의심이 얼음 녹듯이 풀림을 환석(渙釋), 가까운 곳을 버리고 멀리 간다는 뜻으로 쉬운 방법을 버리고 어려운 방법을 택하여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말을 석근지원(釋近之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 함을 이르는 말을 수불석권(手不釋卷), 얼음이 녹듯이 마음에 한 점의 의심도 남기지 않고 의혹이나 미혹이 풀림을 이르는 말을 환연빙석(渙然氷釋) 등에 쓰인다.
▶️ 卷(책 권)은 ❶형성문자로 捲(권)의 간자(簡字), 㢧(권)과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병부절(卩=㔾; 무릎마디, 무릎을 꿇은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龹(권; 두 손으로 자잘한 낟알 같은 것을 뭉치는 모양, 주먹을 쥐다)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이 몸을 구부리다, 물건을 말다, 만 것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卷자는 ‘책’이나 ‘두루마리’, ‘(돌돌)말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卷자는 모양이 크게 바뀌기는 했지만 㔾(병부 절)자와 釆(분별할 변)자, 廾(받들 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금문에 나온 卷자를 보면 㔾자 위로 양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죽간(竹簡)을 손으로 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卷자의 본래 의미는 ‘말다’였다. 그러나 후에 말아놓은 죽간 자체를 뜻하게 되면서 ‘책’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扌(손 수)자를 더한 捲(말 권)자가 ‘말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卷(권)은 ①책을 세는 단위 ②조선 종이를 셀 때의 단위로 1권은 20장임 ③같은 계통이나 종류의 서적을 두 권 이상으로 편찬하였을 때 그 차례를 나타내는 말 ④영화 필름 길이의 단위로 1권은 305m 등의 뜻으로 책, 공문서, 시험지, 두루마리, 주먹, 풀의 이름, 말다, 접다, 돌돌 감아싸다, 굽다, 굽히다, 끊어지다, 거두다, 단절하다, 정성스럽다, 친절하다, 아름답다, 곤룡포(衮龍袍)(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책의 맨 끝을 권말(卷末), 책의 수를 권수(卷數), 종이로 말아 놓은 담배를 권연(卷煙), 두루마리를 권자(卷子), 책의 권과 질을 권질(卷帙), 갑옷을 말아 둠이라는 뜻으로 전쟁을 그만 둠이라는 권갑(卷甲), 혀를 만다는 뜻으로 감탄하거나 경탄함을 권설(卷舌), 말아서 품음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이라는 권회(卷懷), 많은 책을 가지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옹서만권(擁書萬卷), 만 권의 책을 막힘없이 읽음을 독파만권(讀破萬卷), 썩 많은 책을 만권시서(萬卷詩書), 책을 펴 글을 읽으면 새로운 지식을 얻음을 개권유득(開卷有得), 혀가 꼬부라지고 불알이 오그라 진다는 뜻으로 병세가 몹시 위급함을 이르는 설권낭축(舌卷囊縮)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