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목) 이사야 43:14-21 찬송 540장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개역 개정)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언과
하나님의 증인에로의 초청의 글을 기록한 어제 말씀에 이어 오늘 말씀에서는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인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한 놀라운,
그러면서도 질적인 면에서 이전과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구원 역사를 행하실 것에 대해 예언한다.
여기서 그 새로운 역사란, 일차적으로 여호와께서
바사왕 고레스를 통하여 B.C.539년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선민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시키시는 구원 사건을 가리킨다.(14절)
이사야는 이 사건을 과거 출애굽 사건과 비할 수 없는
새로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묘사한다.(15-18절)
그러나 이사야는 이 사건을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들이 생겨나게 하고
들짐승들이 목마름을 해소하며, 택한 백성들이 구원의 벅찬 감격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신천 신지(新天新地)의 도래와 함께 주어질
세상 끝날의 궁극적인 구원 사건과 연관시키고 있다.(19-21절)
그렇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궁극적으로 얻게 될
구원은 이처럼 엄청나고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귀환으로
이같은 구원의 기쁨을 어느 정도 맛보았으며,
신약 시대의 우리들은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
이같은 기쁨을 영적으로 체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서 체험하게 될 구원에는
결코 비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날의 영광을 사모하며
현실의 모든 환난과 고통을 능히 극복해 나갔다.(딤후4:7-8, 18; 히12:1)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기쁨을 맛본 자들이라면
이 기쁨을 혼자만 간직하고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그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는 것이다.(21절; 엡1:6, 12)
그러므로 입술로, 복음 전파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여호와께 영광 돌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전10:31)
19b-20절)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말씀은 19절 전반부에서 말씀한 ‘새 일’의 한 측면을 구체적으로 말씀한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일 곧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셨다고 하신 16절의 말씀과 대응을 이루는 말씀이다.
여기서는 16절의 바다가 광야로, 큰 물이 사막으로 바뀌었으며,
지름길이 강으로 바뀌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이 상황만 바뀌었을 뿐
‘이전 일’과 거의 유사하게 진행될 것임을 보여준다.
사실 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은 제2의 출애굽 사건이라 불릴 정도로
출애굽 사건과는 아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흥해를 갈라 길을 내신 것은 문자적, 역사적 사실이지만
본절에서 말씀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은
문자적, 역사적 사건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이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형통하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는 광야나 사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을 방해하려는 요소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사건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놓임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나안으로 가는데 장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는 수많은 장애들을 만나야 했다.
그러한 장애를 대표할 만한 것이 홍해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놓인 홍해는 그들로 절망적인 탄식을 하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들이 본향으로 돌아가는데 있어서 홍해에 버금가는 장애 요소들이 있다.
그러한 장애 요소들이 바로 광야와 사막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로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것처럼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앞에 놓인 모든 장애 요소들도
다 거두어 주심으로 그들이 형통하게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셨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도상에 있는 우리의 앞길에 놓인 장애도
하나님께서 제하시며 형통한 구원을 베푸실 것임을 가르쳐준다.
우리들이 죄에서 구속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완전한 구원은 천국 입성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우리들의 천국 길을 가로막은
홍해나 광야 같은 장애 요소들이 여전히 산적하여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장애 요소로 인하여 자칫 낙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로막는 홍해를 가르셨듯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이스라엘을 보호하사 사막에 길을 내셨듯이
하나님은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장애 요소들을 제거하여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구원을 완성케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길을 막는 장애 요소가 있다 해도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이 아무리 크고 절망스럽게 보여도 결코 위축되거나 낙심하지 말고,
모세와 같이 담대하게 하나님이 행하실 큰 일을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발길을 담대히 내딛어야 한다.
그리할 때 낙심을 주며 심령을 곤고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막이 변하여 생명의 강물로 변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119: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