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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갈 근… 삼갈 근 이라….
한자공부를 하다보면 '삼가다'는 훈을 가진 글자가 여럿 있습니다.
謹(삼갈 근), 愼(삼갈 신), 恪(삼갈 각, 1급), 慤(정성/삼갈 각, 특2급), 踧(삼갈 축, 특급) 등등…
저는 이 삼가다의 뜻을 정확히 몰랐었다고 해야 되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어오기는 했었지요.
‘그런 행동은 삼가해라.’, ‘잔디밭에 들어가는 행동은 삼가해주세요.’ 등등 말입니다.
저는 이 '삼가다'는 말이 ‘하지 말아라.’의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쵸? 위 용례에서 ‘삼가해라’를 ‘하지 말아라’로 바꾸어도 뜻은 정확히 통하니 말입니다.
그리고서는 중학교 때에 또 ‘근’자를 보게 됩니다. ‘근신’ - 바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징계처분의 하나 말입니다.
징계수위가 ‘근신-유기정학-무기정학-퇴학’의 순이었으니 이 ‘근신’이란 것은 제일 낮은 징계처분인 것이지요.
역시나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퇴학은 당연히 학교에서 짤리는 것이고,
정학도 학교에 못 나오던데, 근신은 학교에는 나오는 것 같던데 뭘 어쩌라는 건지…
누구하나 설명해 주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는 것 같더군요.(물론 제가 받은 건 아니구요.^^)
한자공부를 하다보니 그 ‘근신’이 알고 보니 ‘삼갈 근’에 ‘삼갈 신’으로 이루어진 유의결합어였던 것이었습니다.
또 장례식장이나 장의차량앞에 검은 천에 흰 글씨로 써져 있던
‘謹弔’라는 단어도 많이 보아왔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그냥 ‘사람이 죽었다는 또는 죽어서 슬프다는 그런 뜻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던 듯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에서 ‘삼가’가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요.
마찬가지로 ‘근하신년’의 ‘삼가 신년을 축하드립니다.’의 '삼가'가 또한 무슨 뜻인지도 말입니다.
이렇듯 ‘삼갈 근’자는 제 삶의 경험에서 볼 때, 좀 부정적이고 음울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글자였던 것 같습니다.
징계나 죽음에 관련하여서 보이는 글자였으니 말이지요.
특히나 생활속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謹弔’에서 처럼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씌여진 ‘謹’자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하고도 어두운 인상을 남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는 생뚱맞게 또 ‘근하신년(謹賀新年)’에서는 ‘근조’와는 전혀 다른 기쁘고 좋은 뜻에도 쓰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謹’이 ‘삼가다’가 뭐란 말인가? 참으로 헷갈립니다.
이는 곧 제가 ‘삼가다’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전체의 뜻를 이해하지 못하는 있다는 말에 다름아니겠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한자공부를 하는 과정에 제일 먼저 건진 것,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단연 바로 이 ‘謹’자 입니다.
‘삼가다’는 말은 바로 몸과 마음, 그리고 행동을 조심하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정도는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이것 만으로는 그 정확한 뜻을 알기에 부족하지요.
자 하나씩 풀어볼까요. 먼저 ‘근신’… 근신은 징계처분이지요.
停學은 ‘머무를 정’이니 잠깐 멈추어 있다는 의미이지요. 머무른다는 것은 얼마 후에 다시 움직인다는 것을 전제하지요.
따라서 정학은 일정기간후 학업 또는 학교에 복귀시킴을 의미합니다.
근신은 말 그대로 ‘특별한 징벌을 내리지는 않지만 스스로 몸과 마음을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로서
자율적인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허나 불량학생들이 이 심오한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ㅋㅋ.. 나 근신이래.. 그냥 뭐 아무것도 없어…“ 그 뜻을 정확히 알아도 행동을 조심할까말까한데
그 뜻이 뭔지도 모를 불량학생이 ‘근신’이란 말에 “별 거 없네… 그 딴 게 뭐야?” 하며
‘근신’하지 않을 일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겠지요.^^
두번째, ‘그런 일은 삼가해라’, ‘잔디 밭에 들어가는 것을 삼가해 주세요’.
‘삼가다’가 원형이니 당연히 ‘삼가해라’는 ‘삼가라’, ‘삼가해 주세요’는 ‘삼가 주세요’의 오기가 되는 것이지요.
‘조심하다’와 일정 부분 그 뜻과 용례가 유사함에 따른 아주 흔한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많은 이가 ‘삼가하다’로 잘못 알고 있음은 그 만큼 그 ‘삼가다’의 의미를 저만큼이나 잘 모르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이 용례에서 ‘삼가세요’라는 말은 ‘조심해 주세요’라는 뜻이고, 가급적 하지 말아라하는 뜻이 되니
자연 ‘부정’의 뜻이 첨가 되어 대충 이해해 버리자면 ‘금지해 주세요’라고 해도 뜻은 통하게 되니
어느새 ‘삼가다’라는 말이 ‘그만두다, 금지하다’라는 '부정'의 의미로 까지 확장되어 버리고 만 것이지요.
세번째, 그러나 ‘삼가다’가 ‘금지, 부정’의 뜻이라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나 ‘謹賀新年’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 되고 말지요.
‘고인의 명복을 빌지 않거나 빌어서는 안 됩니다.’와 ‘신년을 축하드리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되고 말테니까요.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망자(亡者)와 슬픔에 잠긴 유가족에 대하여 최대한 몸가짐을 조심히하고 정중히하여
즉, 예를 다하여 조의를 표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근하신년’은 년초에 웃어른이나 상대방에게
경망되지 않게 몸가짐을 바로이 하여 공손하게 신년인사를 드린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살펴보면 이제 ‘삼가다’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이처럼 ‘삼가다’라는 말은 애초에 긍정이나 부정의 의미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삼가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나 일을 대함에 있어서 경망되지 않게,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히 살펴서 예의와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몸과 마음가짐을 조심한다는 뜻이지요.
자 이렇게 ‘삼가다’의 뜻을 이해하고 보면 위에서 예로든 많은 삼가다의 ‘용례’가 더욱 명확하게 이해됨은 물론
자연히 ‘오기’도 피할 수가 있게 됨과 더불어 ‘謹弔’에서 느껴졌던 무지에서 비롯한 막연한 ‘불길함’을 떨쳐낼 수가 있으며,
나아가 ‘愼獨’, ‘獨愼’ 등의 어려운 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기에 이릅니다.
사전에 나오는 몸과 마음을 조심하다는 ‘위험을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가짐을 조심히하다.’ 즉 허물될까 흐트러질까 경계하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테러가 두렵다’고 할 때는 ‘恐(두려울 공)’이나 怖(두려워할 포)’자를 쓰지만,
‘하늘이 두렵다’고 할 때는 ‘畏(두려워할 외)’자를 쓰는 차이와 같다 하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恐’자와 ‘怖’자는 유의관계지만,
‘畏’자와는 형식적인 훈만 같을 뿐 의미가 다른 고로 유의관계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한자에는 이와 같이 같은 훈이지만 뜻이 다른 글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표면상으로는 비슷하거나 때로는 정확히 같은 훈을 가졌음에도
유의어가 되지 못하는 글자가 있는 반면에 전혀 다른 듯한 훈을 가졌음에도
유의관계가 되는 글자가 더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한자에만 국한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말도 또한 마찬가지지요.)
따라서 이 ‘삼갈 근’자는 ‘겸손할 겸’, ‘두려워할 공’, ‘겸손할 손’ 등의 한자와 뜻으로 보면 사촌간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謹愼’만이 유의어가 아니라 ‘謹恭’역시 유의어가 되는 까닭이 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謹恭’이 왜 유의어가 되는 지를 모르고 의아해한 채 그저 외워야만 하는 것이지요.
뜻은 모르는 채 제가 ‘빌 경’자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몸가짐을 조심히 하려면, 또 조심히 한다면 어찌 겸손하고 공손하지 않고, 거만하거나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한 얘기는 누구도 저에게 가르쳐 준 바, 말해준 바 없는 얘기입니다.
한자공부를하는 와중에 여러글자와 한자어들을 거듭 보면서
‘아… 삼가다가 그런 뜻이구나…’하고 저 스스로 깨닫게 된 것 입니다.
학계 등의 확인된 바 없이 그저 제가 깨달은 것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지요.)
딸내미와 조카를 가르치면서도 늘 얘기합니다.
漢字 한 글자에도 여러 뜻이 있고, 따라서 그 글자 뿐 아니라 비슷한 여러 글자와 단어의 ‘용례’를
다양하게 자주 보다 보면 자연 그 글자의 정확한 의미와 다양한 쓰임을 알게 된다고 말입니다.
‘백독이면 의자현’은 그런 의미라고 말입니다. ‘유의자(어)’, ‘반의자(어)’는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많은 독서와 경험이 필요한 것이지요.
실제로도 많은 경우에 우리가 외우고 있는 ‘대표 훈’의 의미로써는 이해되지 않는 한자어들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상당히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말 그대로 그 한자가 가진 여러 가지 뜻 가운데 ‘대표(적인) 훈’이지 ‘전체 훈’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위와 같은 이유때문이기도 합니다. 말이란 이렇듯 그 문맥 속에서 그 뜻을 이해하고 알아야
나 역시 그런 말을 적절한 상황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말이 되는 것이지,
뜻도 모르면서 단어장안의 훈음만을 외워서는 죽은 말 밖에는 안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실전에서의 우스운 얘기 하나.^^ 금번 43회 특급시험의 뜻풀이 문제 중에
“사람은 위기에 대비하여 糗脩[34]와 屨賤[35]이 罄竭[36]되지 않는 것이 좋다.”에서
‘경갈’이 나왔습니다. 이 ‘경’자가 ‘빌 경’인 줄은 외웠지만
그 뜻이 ‘기도하다(祈)’인지 ‘비어있다(空)’인지 ‘빌다(借)’인지는 모른채 외우기만 했습니다.
‘竭’자는 ‘다할 갈(다하다, 없어지다)’자 아닙니까? 그래서 맨 처음에는 ‘借’의 의미로 ‘다 써서 남에게 빌어 오다’로 썼었습니다.
뭔가 좀 찝찝하더군요. 외울 때부터 ‘빌 경’의 빌다가 기도하다는 뜻이야, 비어 있다는 뜻이야 하고 궁금했었는데 말입니다.
문맥을 찬찬히 살펴보니 ‘비어있다.’ 즉 ‘空’의 의미로 해석해야 더 맞을 듯 했습니다.
그래서 ‘다 써서 없어지다’로 고쳤습니다. 정답을 보니 ‘다 없어짐.’으로 나왔더군요. 이만하면 맞앚겠지요?^^)
이렇게 보면 이 ‘謹’이라는 글자는 참으로 무거운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우리말 ‘삼가다’도 그렇구요.
그래서 저희 집 가훈은 외자입니다. 바로 ‘謹’이지요.
제가 초등학교 때 서예를 잠깐 했었는데,
그래서 요새는 서예를 다시 배워서 이 ‘謹’자를 크게 멋있게 써서 표구를 하여 벽에 걸어두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딸내미한테 늘 얘기하고 세뇌(?)시킵니다. 그리고 가끔씩 물어봅니다.
‘유진아, 우리집 가훈이 뭐지? 아빠가 제일 강조하는 게 뭐지?’
‘첫째, 삼갈 근, 둘째, 야무진 것, 셋째, 인사’하고 대답합니다.
가훈이 세 항목이지만, 사실 ‘謹’이 근본이고 ‘謹’으로써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謹하지 않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데 매사를 대충대충 하고말지 어찌 야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며,
謹하지 않는데, 겸손하지 않고 교만한데 어찌 남에게 부러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할 것이며 공손하고, 겸손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한자 공부는 제게 ‘謹’의 의미와 함께 제 집에 ‘謹’이라는 ‘가훈’도 함께 주었습니다.
이 좋은 글자, 이렇게 무거운 글자(가벼운 줄 알았던)를 알게 되었다는 것… 어찌 큰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저는 이 ‘삼갈 근’자를 다른 몇 백, 몇 천 글자와 바꾸자고 하면 바꿀 용의가 있습니다.^^
저는 아래의 [특급시험을 봤습니다.]라는 글에서 분명히
“한자 공부를 하면서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한자 몇 백, 몇 천자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말입니다.”라고 썼었습니다.
이만하면 허투루 한 말이 아님이 증명이 되겠는지요?
건승하십시오.
첫댓글 정말 소름돋는 좋은 글입니다^^ 우리말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앞으로 이런글 많이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싸이 게시판에 퍼가도 될런지요..? 바쁘실텐데 이런 오묘한 한글과 한자의 조합 쓰임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도 괜찮겠네요.
첨부터 쭉 잘 보았습니다. 참회를 하게 되네요^^
잘 보았습니다. 特級이신데, 罄字의 說明이 좀 理解가... 얼핏 보니 缶가 部首字일것 같은데, 그렇다면 "장군"이 뭔가? 옛날 糞을 處理하던 桶이잖아요. 그럼 당연히 "통이 비다"는 의미의 빌/경이지 않을까 하는 허접한 생각입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