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피해 수요·공급 몰리며 청약경쟁 치열
낮은 청약문턱, 단기 시세차익 노린 투기수요 대거 흡수
웃돈 붙여 임차권 거래 활발, 실수요자 피해 우려 가중
정부의 전방위적 규제로 사업성을 올리기 어려운 건설업체와 오갈 데 없는 유동자금이 민간임대로 집중되면서 정작 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서민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임대아파트가 투기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 규제로 사업성을 올리기 어려운 건설업체와 오갈 데 없는 유동자금이 민간임대로 집중되면서 정작 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모습이다.
집값 급등·전세난 가중…민간임대 선호도↑ 건설사 공급도 활발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건설사들이 공급하는 민간임대아파트가 세 자릿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수요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단기간 집값이 급등한 데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난까지 가중되면서 민간임대에 대한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져서다.
최근 대전에서 분양한 '동일스위트 리버스카이2단지'는 평균 12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청약 마감했다. 앞서 5월 경기 평택시에서 분양한 '안중역 지엔하임스테이'는 평균 28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올 3월 충남 아산시에서 공급된 '아산 모아엘가 비스타2차'는 평균 187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민간임대는 건설사가 짓는 브랜드단지에서 장기간 거주할 수 있고 청약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장기일반민간임대의 경우 최장 10년 거주한 이후 분양전환도 할 수 있다. 만 19세 이상이라면 청약통장 및 주택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청약 가능하다.
자금력이 달리고 청약가점이 낮은 무주택자에게는 안정적으로 거주하며 내 집을 마련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그간 외면하던 건설사들도 당초 분양단지로 계획한 아파트를 임대로 전환해 공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이날부터 청약을 받는 롯데건설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엘'은 올 초 민간분양으로 사업승인을 받았으나 6월, 민간임대로 사업계획을 변경했다.
임대아파트 임차권은 일반아파트 분양권과 달리 취득세, 재산세, 양도세 등 세 부담이 없다. 청약 당첨 포기에 따른 불이익도 없으며 전매도 자유롭다.ⓒ뉴시스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제값을 받지 못해 마냥 공급을 미루던 건설사들이 우선 임대수익을 올리고 나중에 분양하는 것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임대기간 종료 후 분양하면 분양가는 사업 주체가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다. 집값 상승세가 계속됨에 따라 늦게 분양할수록 수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인 간 임차권 거래 등 사각지대 발생, 실수요자 피해 우려↑
이처럼 민간임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급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추세다. 문제는 제도적 빈틈을 노린 투기수요까지 대거 몰린다는 점이다. 임대아파트 임차권은 일반아파트 분양권과 달리 취득세, 재산세, 양도세 등 세 부담이 없다. 청약 당첨 포기에 따른 불이익도 없으며 전매도 자유롭다.
통상 민간임대는 월 임대료를 내는 임대차계약방식(월세형)으로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는데 실제 계약은 매매예약방식(전세형)으로 체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세형은 향후 분양전환가격을 미리 결정해 미래 불확실성을 없애고, 임대보증금과 매매예약증거금을 입주시까지 납부, 추가금 납입없이 분양전환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월세형은 계약기간 종료 후 퇴거해야 하지만 전세형은 분양전환에 따른 거주우선권이 생기는 셈이다. 이 같은 내용을 시행사가 청약 당첨자를 대상으로 안내하는 탓에 실거주 목적이 아니더라도 우선 청약에 나서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실제 충남 홍성군 일원 민간임대단지인 '홍성 승원팰리체'는 지난 27일 당첨자에 대한 정당계약 실시 이후 며칠 만에 1000만원가량 임차권 프리미엄이 형성됐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분양전환 전까지 주택에 대한 소유권은 시행사가 갖기 때문에 당첨자 계약 시점에 관련 안내를 하고 분양전환 직전에 최종적으로 소유 의향을 묻는다"며 "장기임대다 보니 임대 기간을 모두 못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거주자 편의를 고려해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임대기간을 못 채운 임차인이 또 다른 임차인에게 향후 거주우선권에 대한 피를 붙여 임차권을 넘긴다면, 이와 관련한 부분은 시행사도 시공사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분양전환에 임박해 웃돈을 주고 매수한 수요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임차권은 실질적으로 주택을 소유하는 분양권 개념이 아니어서 달리 제재할 방법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주체인 지자체 역시 법적 근거가 없어 사실상 단속에 나설 수도 없는 실정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수요자에겐 1가구1주택을, 건설사에는 분상제 등 주택에 대한 투자를 과도하게 규제하다 보니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임대기간을 모두 채우지 못하면 임차권을 임대업자에게 반환하는 조건부 계약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는 임차인이 또 다른 임차인을 두는 식의 임차권 매매가 가능한 법적 사각지대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건설사는 향후 이익을 앞당겨 벌어들이고, 투자자들은 단기 시세차익을 보는 식으로 윈윈하다 보니 정작 살아야 할 사람들이 투기세력에 밀려 살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서민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정부가 과한 규제를 한 탓에 산업자본으로 가야 할 자금이 비생산자본으로 몰리는데, 이는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