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월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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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월요일 강론>(2024. 9. 16. 월)(루카 7,1-10)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루카 7,2-3).”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루카 7,6-10).”
1)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말씀만으로 만물을 지배하시는
주님,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권능과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 즉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증언입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라는 백인대장의 말은,
“저는 주님께서 말씀만으로 병을 고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의사들은 여러 가지 약을 사용하거나 의술을 사용해서 병을
치료하지만, 예수님은 ‘병이라는 것’을 지배하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병이라는 것’에게 “병자에게서 떠나라.” 라고
명령만 하시면 됩니다.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라는 말은, “주님께서 떠나라고 명령하시면,
‘병’이 그 명령에 복종하고 떠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 백인대장은, 예수님이 하느님과 같은 권능과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곧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입니다.
2) 뒤의 8장에, 예수님께서 말씀만으로 바람과 물결을
고요하게 만드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잠잠해지며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셨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라워하며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루카 8,24-25)”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은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같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순서만 보면,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이 앞에 있고, 제자들의 질문이 뒤에 있지만,
복음서에 있는 이야기들의 순서가
꼭 시간적인 순서인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놀라운 기적들과 표징들을 체험하면서 줄곧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백인대장의 이야기는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 같은 것입니다.>
3)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이런 믿음을 고백한 사람은 이 백인대장이
처음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간에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은 것은 그 백인대장이 최초입니다.>
그 백인대장은 어떻게 해서 그 믿음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 과정을 모릅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과 계시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경우에는 말씀과 체험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그 신앙에 다가갔고,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신앙에
완전히 도달하게 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그리고 요한 사도는 그 신앙을 증언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4)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자기가 믿고 있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서학이나 신학 지식 같은 없어도 상관없는데, 최소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신 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분, 부활하신 다음에는 우리 안에, 또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분,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는 분,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들은
결코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옛날이야기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나의 목숨과 인생을
모두 바쳐서 완성해야 할 ‘나의 삶’이고, ‘나의 신앙’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여기서,
나에게(우리에게) 여러 가지 경로로 말씀하시고,
우리가 바치는 기도를 주의 깊게 듣고 계십니다.
“늘 나만 바라보시는 분, 늘 나를 걱정하시는 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