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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伏先生別集卷之一 / 詩
우복집 별집 제1권 / 시(詩)
전정원(全淨遠)이 본도의 도사(都事)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시를 부쳐 왔기에 차운하여 답하다.
이때 정조(鄭造)가 감사(監司)로 있었다.
탄탄한 길 알아보기 아주 쉬운데 / 坦坦非難見
휩쓸리는 사람들은 갈 줄 모르네 / 滔滔昧所之
나아감을 신하 의리 따라 했으니 / 用行元義分
물러남도 어찌 자신 위해서 하랴 / 潦止豈身私
큰 강물을 누가 능히 건널 수 있나 / 大水誰能涉
깊은 병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네 / 沈痾不可爲
정녕할사 난진이란 글자 있나니 / 丁寧難進字
이 도리가 다 쇠하진 아니하였네 / 此道未全衰
[주-D001] 난진(難進) :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겨야 한다는 뜻으로, 《예기》 〈유행(儒行)〉에, “선비는 관직에 나아감에 있어서는 어렵게 여기고 물러남에 있어서는 용감히 물러나야 한다.〔其難進而易退也〕”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04
● 전식 [ 全湜 ]
이칭별칭 | 자 정원(淨遠), 호 사서(沙西), 시호 충간(忠簡) |
유형 | 인물 |
시대 | 조선 |
출생 - 사망 | 1563년 ~ 1642년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옥천(沃川) |
관련사건 | 임진왜란, 병자호란 |
대표관직(경력) | 예조좌랑, 울산판관, 전라도도사, 예조정랑, 병조참의, 대사간, 예조참판, 대사헌 |
● 정경세 [ 鄭經世 ]
이칭별칭 | 자 경임(景任), 호 우복(愚伏), 시호 문장(文莊) |
유형 | 인물 |
시대 | 조선 |
출생 - 사망 | 1563년(명종 18) ~ 1633년(인조 11) |
성격 | 문신,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晉州) |
● 정조 [ 鄭造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광해군 때 이이첨의 측근으로 폐모론을 제기하여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등 세도를 부리다가 인조반정 후 세 동생과 함께 처형되었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시지(始之)이다. 승지를 지낸 정척(鄭惕)의 손자이자 정문영(鄭文英)의 아들로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며, 1602년 연일현감을 지냈다.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광해군 즉위 후 이이첨(李爾瞻)의 도움으로 1612년(광해군 4) 예조정랑을 거쳐 이듬해 장령에 올랐다. 이이첨의 사주를 받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시해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1617년 폐모론을 적극 제기하여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켰다. 이후 부제학·대사성·대사간·형조참판·동지의금부사 등 요직을 차지하며 세도를 부리다가, 인조반정 후 동생 정준(鄭遵)·정도(鄭道)·정규(鄭逵)와 함께 처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 [鄭造]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