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서 교회를 개척해 18년을 목회했다. 나의 목회에 힘을 빼준 교회가 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오늘 은퇴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게 된다. 나보다 세살이 아래이니 아직 교단이 정한 은퇴나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교회개척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목사의 큰형님의 아들이 목사인데 형님께 진 빚을 갚기 위함인지 그 조카에게 담임목사직을 양도하기로 하였다는 것. 아무튼 목사인 막내동생을 위한 형제들의 눈물어린 형제애가 부럽다.
신도시에서 개척목회를 하다보면 이웃교회와의 부정적인 에피소드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교회가 세월을 더하며 집회장소가 비좁아 더 넓은 장소로의 이전을 기도할 때 교회가 소재했던 아파트단지 바로 길건너에 새로운 상가가 건축되었다.
당시 교회의 재정이 열악하다보니 분양은 꿈도 못꾸고 적당한 사이즈의 홀을 임대하려고 알아보던중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거리가 꽤 떨어진 지역에서 목회하던 교회가 대형홀을 분양받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렵게 이사를 한다하여도 우리보다 사이즈가 큰 교회와 한건물 두교회로 존재해야 하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보니 이전에 대한 꿈은 접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공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도시이다보니 신자들의 이전이 빈번한 편이었다. 직장을 따라 타지역으로 이사하는 가정도 있고 직장을 따라 타지역에서 이사오는 가정도 있다. 교회가 단지내에 위치한 지리적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우리보다 몇배 규모가 큰 교회가 길건너편 새건물로 이사를 오면서 부터는 일체 새신자 등록이 중단되고 말았다.
오전에는 우리교회에 출석했다가 저녁예배는 새로 이사온 교회를 찾아가고 아예 그곳을 자신의 교회로 등록을 하는 것. 담임목사의 능력한계이니 누구를 탓할수도 원망할수도 없는 일이다. 새로 이사온 교회는 나의 목회에 의욕을 꺽어 버렸다. 날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날개가 없는 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현실이 나로 하여금 선교사의 결단을 촉구한 간접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확신한다. 아내는 그래서 그 교회와 목사를 매우 싫어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터이라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신자는 모르지기 훌륭한 담임목사의 복을 받아야 한다. 훌륭한 담임목사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다. 박사학위는 더욱 아니다. 설교를 잘하면 금상첨화이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조건은 온전히 자신을 죽인 경험이 확실한 자이어야 한다. 자신은 죽고 오직 예수로만 살아가는 목사가 가장 훌륭한 담임목사이다.
나는 굳이 목사가 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갈등을 옳바르게 인도해줄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안가도 될 신학교를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오로지 목사의 아내-사모가 되고 싶어 나를 선택했다. 하지만 늘 재정적으로 궁핍함을 면치 못하다보니 간혹 후회가 된다고 말한다. 더욱이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선교사가 됐다는 사실에 대해 극렬히 반대를 하고 있다. 아내에게도 내 자신에도 결코 축복받은 만남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