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는 무겁고 거칠며 투박하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험로에서 흙탕물 뒤집어 쓴 ‘상남자’ 이미지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막내’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진가는 친절함과 부드러움이다. 나긋나긋한 승차감, 직관적인 기능배치, 조용한 가솔린 엔진, MTB 바이크 정도는 가볍게 삼키는 트렁크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랜드로버, 신동빈 기자
랜드로버의 시간은 다른 브랜드보다 천천히 간다. 5~6년에 한 번씩 모델 체인지를 하며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기보단, 숙성에 초점을 맞춘다. 맏형 레인지로버가 대표적이다. 1967년 1세대 출시 후, 2세대로 거듭나기까지 27년이 걸렸으니까. 현행 4세대는 2012년 나와 데뷔 10년차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등장한 다른 SUV처럼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2015년 등장했다. 지난해 5년 만에 부분변경을 치렀다. 그런데 여느 브랜드의 페이스리프트와 성격이 다르다. 큰 차이 없는 외모만 보고 속단하긴 이르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어 배출가스를 줄였다. 또한, 플랫폼을 바꿔 무게중심은 낮추되 차체 강성을 키웠다. 적재용량은 기본 897L이며, 최대 1,794L까지 구형보다 늘렸다.
①익스테리어
이름이 암시하듯,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디스커버리의 표정과 특징을 쏙 빼닮은 동생이다. 크기는 작지만 정통 SUV 비율로 탄탄한 이미지를 앞세운다. 이 차의 경쟁 상대는 메르세데스-벤츠 GLC, BMW X3, 볼보 XC60 등 D-세그먼트 중형 SUV. 이들과 비교해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차체 높이다. GLC보다 87㎜ 높고, X3보단 57㎜, XC60보단 82㎜ 더 크다.
부분변경 거친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전보다 매끈한 얼굴을 지녔다. 그릴 속 패턴을 바꾸고 새로운 LED 헤드램프 속 주간주행등도 멋스럽게 변했다. 램프 성능이 올라가면서 범퍼 양쪽에 붙었던 안개등은 덜어냈다. 대신 ‘ㄷ’자 모양의 굴곡을 주고, A필러와 사이드 미러, 지붕을 검게 칠해 스포티한 느낌을 더했다. P250 SE는 네 발에 19인치 알로이 휠을 신었다.
②인테리어 - 앞좌석
“레인지로버랑 별 차이 없는데?” 신형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실내에 먼저 탄 후배 기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과장 좀 보탠 표현이겠지만, 실제로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소재는 꽤 훌륭하다.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에 화사한 아이보리 가죽을 씌웠다. 중앙 터치스크린은 10.25인치로 키우고 해상도와 터치 반응 속도를 높였다. 계기판은 12.3인치 풀 HD 모니터를 끼웠다.
기존과 비교하면 송풍구와 모니터 위치를 바꿨다. 화면 아래 조작부는 터치 패널로 바꿨는데, 버튼 사이 간격이 넓어 직관성이 떨어지진 않는다. 또한, 다이얼 방식의 기어레버는 소위 ‘기어봉’ 형태로 변했다. 야간 빗길 주행에 요긴한 클리어 사이트 룸미러도 포인트. 특히 센터 콘솔박스 용량은 9.9L로 기존보다 17% 더 키웠다. 500㎖ 생수병 4개도 너끈히 품는다.
신형의 핵심은 PIVI Pro(피비 프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로, 태블릿 PC의 UI처럼 직관적이고 쓰기 편하다. LTE 모뎀 2개를 통해 원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가능하다. 지도와 앱 등을 항상 최신 버전으로 유지할 수 있다. 아울러 수입차의 오랜 약점인 내비게이션도 T맵을 통해 극복했다. eSIM을 내장했기 때문에 스마트폰 T맵처럼 실시간 경로 안내도 받을 수 있다.
③인테리어 – 뒷좌석 & 트렁크
기존에 승용 세단을 타다가 SUV 찾는 고객은 가족과 함께할 넉넉한 뒷좌석 & 적재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이 부분이 강점이다. 건장한 남자 성인이 앉아도 다리공간이 충분하며, 특히 경쟁 SUV보다 지붕이 높아 머리공간이 쾌적하다. 2열 시트는 앞뒤로 160㎜ 슬라이딩할 수 있고, 40:20:40으로 나눠 접을 수 있어 쓰임새가 좋다.
트렁크 기본 용량은 VDA 기준 897L. 참고로 현대 싼타페가 634L, 기아 쏘렌토가 705L다. 국산 중형 SUV와 비교해도 한층 넉넉하다. 벤츠 GLC와 BMW X3는 550L로 300L 이상 차이가 난다. 2열 시트를 접고 트렁크 최대 용량으로 비교하면 싼타페가 1,735L, 쏘렌토가 1,755L이며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1,794L다. 가족과 함께 캠핑을 즐긴다면 주목할 만하다.
④파워트레인 및 섀시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부분변경을 거치며 랜드로버의 차세대 중형 플랫폼인 PTA(프리미엄 트랜스버스 아키텍처)로 바꿨다. 신형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같은 뼈대다. 그동안 랜드로버는 총 5개의 플랫폼을 운용했다. 최근 2개로 성큼 줄였다. 이보크‧디스커버리 스포츠 등 막내들이 쓰는 PTA, 디펜더‧차세대 레인지로버 등 ‘덩치’들이 쓰는 MLA 두 가지로 나눈다.
이들 신형 플랫폼은 내연기관뿐 아니라 전동화 파워트레인까지 얹을 수 있도록 개발한 골격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직렬 4기통 2.0L 인제니움 엔진에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을 더했다. 동시에 엔진 위치를 기존보다 낮춰 차체 무게중심을 내렸다. 또한, 차체 강성은 이전보다 13% 더 키웠다. 묵직한 주행 안정감과 강력한 험로주행 실력을 기대하는 이유다.
오늘 시승할 디스커버리 스포츠 P250 SE는 라인업 중 가장 호쾌한 성능제원을 지녔다.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인제니움 엔진으로 최고출력 249마력, 최대토크 37.2㎏‧m를 뿜는다. 특히 최대토크는 1,300~4,500rpm까지 줄기차게 나오기 때문에 시원스러운 가속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제조사가 발표한 0→시속 100㎞ 가속 성능은 7.8초. 최고속도는 시속 225㎞다.
⑤주행 성능
자동차 기자 일을 하면서 여러 신차를 타보면, 차의 외모로 주행 성능을 예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짐작은 대부분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겉모습과 딴판이다. 운전대는 가볍게 움직이고, 페달의 답력 또한 의외로 가볍다. 울퉁불퉁한 노면 요철을 부드럽게 삼키는 서스펜션도 예상 밖이다. 여러 모로 다른 랜드로버와 성격 차이가 뚜렷했다.
비슷한 가격의 독일 SUV와 비교해도 차이를 단박에 느낄 있다. 나긋나긋 움직이는 모습이 전형적인 외강내유 형이다. 따라서 “이거 주행 안정감이 떨어지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 있다. 가볍지만 밀도는 꽉 찼다. 굽잇길을 호쾌하게 달릴수록 스티어링은 정교하게 반응한다. 묵직하게 휘감는 독일차와 결이 다른데, 재미와 스릴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든다.
이러한 주행 특성은 한 이불 덮는 재규어의 영향이 명백하다. 또한, 플랫폼을 바꾸면서 무게중심을 낮춘 결과 전보다 선회 한계가 올라갔다. ZF가 공급하는 9단 자동변속기의 촘촘한 기어비도 예리한 주행에 한 몫 보탠다. 내리막에선 저단 기어를 적극적으로 물어 엔진 브레이크 효과를 높인다. 운전자가 수동 모드로 조작할 때 반응속도 역시 빠른 편이다.
굽잇길에서 반전 성격을 경험하고 인근 험로를 찾았다. 명색이 랜드로버인데, 오프로드 없으면 섭섭하지. 마침 오전까지 비가 내려 진흙 투성이었다. 중앙 모니터 아래 오른쪽 다이얼을 누르고→돌려 험로 주행모드를 ‘오토’로 맞췄다. 이 상태에선 노면 상태를 자동으로 감지해 최적의 주행모드를 차가 결정한다. 일일이 고르기 귀찮은 나 같은 사람한테 ‘딱’이다.
주행모드는 다양하지만, 일반 SUV용 타이어가 들어갔기 때문에 빠질 각오도 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미끄러운 진흙길을 가뿐하게 넘나든다. 노면 상황에 따라 엔진 출력과 제동력을 조절하는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TPC) 덕분에, 슬립을 최소화하며 코스를 빠져나갔다. 내심 차를 빠트려 막내의 한계를 알리고픈 못된(?) 마음이 있었는데, 재미없을 정도로 잘 달렸다.
도강 코스는 없었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최대 600㎜ 깊이의 강도 건널 수 있다. 특히 2021년형부터는 차 앞쪽 하부와 사이드미러에 자리한 3대의 카메라를 통해 마치 보닛을 투과해 노면을 볼 수 있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기술도 들어갔다. 또한, 3D 서라운드 카메라, 도강 수심 감지 기능 등을 통해 시야 확보가 어려운 험로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다.
⑥총평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랜드로버의 막내지만, 레인지로버에서도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술이 녹아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상급 모델의 기술을 대부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또한, 일반적인 도심 환경에선 가볍고 사뿐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SUV 운전이 서투른 운전자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여러 모로 반전이 많았던 시승이었다.
2021년형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P250 SE
*장점
①조용하고 부드러운 엔진과 의외의 운전재미
②동급에서 가장 넉넉한 수납 및 적재공간
*단점
①2열 시트 쿠션이 조금 단단한 편이다.
②플랫폼까지 바꿨지만, 외관 디자인은 이전과 큰 차이 없다.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