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58]‘남미의 피카소’ 보테로
시골에 살면서 종종 속상한 것은 ‘문화(文化의 향유(享有)’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에 산다해도 그 문화를 제대로 향유하지 못할 텐데도 ‘시골쥐’(촌놈)들이 흔히 하는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을 기름지게(윤택하게) 하는 ‘삶의 비타민’인 종합예술, 즉 영화, 그림, 음악, 공예 등에서 나아가 문학과 스포츠까지 이른다고 볼 때, 대도시에서 활발한 활동이 수시로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굳이 전라도의 큰 도시에서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으나, 조금 많이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국중박(국립중앙박물관)과 예술의전당 등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이지만, 실제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과 돈이 없는데 한가로운 말하지 말라면 할 말은 없지만, 나같은 화백(화려한 백수)는 그렇다는 말이니 오해없으면 좋겠다.
어쨌든, 상경한 김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페르난도 보테로展>을 관람했다. 진짜 처음 듣는 작가여서 나의 허물을 탓했다. 페르난도 보테로(1932-1923)는 콜롬비아의 국민화가로 ‘라틴 아메리카의 피카소’로 불린다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할매, 국민여동생, 국민오빠 등‘국민00’로 불린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일 듯하다. ‘국민정치인’은 왜 없을까? 그것은 이건희 회장이 말했듯, 정치가 가장 후진 4류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먼저 놀란 것은, 그림의 주인공들을 기가 질리게 터무니없이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처럼 ‘빵빵하고 뚱뚱하게' 그렸다는 것. 봐주는 것도 좀 민망하다. 대작가는 그것을 ‘양감’(量感. volume)이라고 하는데, “양감이야말로 감성적인 것을 건드린다고 생각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어록이 인상적이었다. ‘형태의 미학’(The Triumph of Forms)이라는 전시회 부제도 재밌다. 트라이엄프는 장엄하다는 뜻이 아닌가. 참 가지가지, 영혼이 자유로운 예술가들은 못말리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 다작인 그는 3천여점을 남겼다하는데, 고국에서 몇 년 살지도 않고 90 평생을 모나코 등 유럽에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고국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수구초심(首丘初心), 그의 진정을 알기에 2023년 그가 죽은 후 고향(메데인시)에서 일주일의 추모기간을 가졌을까.
100여점을 관람하면서 이색적인 그림들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반가웠던 것은, 그가 이라크 수용소에서 미국 군인들에 의해 벌어진 포로 학대를 고발하는 ‘이라크판 게르니카’를 2005년 그렸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소도시가 나치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현장을 담았다. “전 세계가 폭력과 만행이 무참하게 짓밟고 지나간 현장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그림을 그렸다. 만약 피카소가 없었더라면 그 누가 게르니카의 학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겠는가” 역시 거장다운 어록을 남겼다. 언제나 어디서든 ‘찐진보’는 예술가의 본령(本領)이라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항쟁을 보라. 세월호와 이태원참사를 보라. 이들을 위로할 자, 예술가밖에 없지 않은가.
그는 1972년 "조각은 진짜 양감을 창조할 수 있게 해준다. 형태를 직접 만질 수 있고, 원하는 만큼의 부드러움과 관능성을 부여할 수 있다”며 조각에 몰입했다. (Sculptures permit me to create real volume. One can touch the forms, one can give them smoothness, the sensuality that one wants). 그렇다. 형태를 직접 만지며 부드러움과 관능성을 느낄 수 있으니, 그림보다는 조각이다. 하하. 그제서야 그의 뚱뚱한 그림과 뚱뚱한 조각이 나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의 대표적인 어록(Analect) 몇 개를 상기한다.
"나는 오직 양감을 그릴 뿐, 뚱뚱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I don't paint fat people. What I paint is volume.)
"나는 예술이 관대하고, 감각적이며, 육감적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예술은 언제나 과장이다. 화가는 색채와 형태 그리고 선을 과장한다.”(Art is always an exaggeration. The painter exaggerates the color or the shape or exaggerates the line.)
"예술은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찬미이자, 삶의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오아시스여야 한다.”
"인생에서 거두는 성과는 당신이 누구를 경외(admirations)하느냐에 달려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닮고 싶어 하는가이다.” 누구를 롤 모델로 삼을 것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육감적이고 풍요로운 형태’를 그리는 대화가를 만나게 돼 좋은 시간. 역시 ‘인생은 짦고 예술은 길다’는 명제는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