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포럼과 함께하는 언소주~ '레드마리아' 특별시사회 30명 선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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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 전화 010-6650-6258
■ 4월 문화다양성 포럼 행사 안내
1. 영화 특별시사회(무료)
레드마리아Red Maria
연출 | 경순 Kyung Soon
제작 | 빨간 눈사람 Redsnowman
배급 | 시네마 달 Cinema DAL
2011 | HD | 98min | Documentary | color | 16:9 | Dolby 5.1
2011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1 제37회 서울독립영화제 /2012 제 12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예정)
SYNOPSIS
한국, 일본, 필리핀에는 다양한 직업과 역사를 지닌 많은 여성들이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들 중에서 가사 노동자, 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위안부 등으로 불리는 여성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는 그녀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녀들은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은 제각기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한 가지 공통점에 의해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그들의 몸과 노동이 그것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노동이 그토록 비슷한 방식으로 ‘몸’에 연결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치게 된다. 사회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노동의 의미’가 그것이다.
DIRECTOR’S NOTE
이 영화는 여성의 몸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다.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사회의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그녀들은 가사 노동자, 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 곳에서 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여성의 몸은 노동의 수단 또는 상품 그 자체가 된다. 그러나 때로 그것은 오염된 몸으로 간주되며, 그리하여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레드마리아>는 가장 낮은 곳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이 여성들의 신체를 기록하고, 그리하여 여성과 노동의 관점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의 사회적 의미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일시: 4월 18일 오후 8시
장소: 미정(추후 웹자보 공지 예정)
2. 정기 산행
소요산
높이는 587m이고, 주봉(主峰)은 의상대(義湘臺)이다. 서울특별시에서 북쪽으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 지점에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645년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개산(開山)하여 자재암(自在庵)을 세운 이후, 974년(고려 광종 25)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중대암(中臺庵)·소운암(小雲庵)·소요암(逍遙岩)·영원사(靈源寺) 등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자재암은 봉선사(奉先寺)의 말사(末寺)로서, 원효대사가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고 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요산에는 청량폭포(淸凉瀑布)와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 지대를 하백운대(下白雲臺, 500m)라고 한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元曉臺)가 솟아 있고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라고 전하는 옥로봉(玉露峰)을 넘어 북동쪽으로 나한대(羅漢臺, 510m)·의상대·비룡폭포가 나온다. 또 원효대에서 약 30m쯤 되는 절벽 위를 상(上)백운대라고 하며, 그 밑으로 선녀탕(仙女湯)을 볼 수 있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유명하다. 산 입구에는 구한말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홍덕문의 추모비가 있다.
일시 및 집결 장소 : 4월 21일(토) 오전 9시,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앞
준비물: 각자 도시락 및 생수
3. 사랑방 좌담회
“세상은 싸우는 사람의 요구대로 변한다”
강사: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와 내가 판사에게 인정받은 공이 있다. ‘정리해고를 사회적으로 여론화한 공’이다. 해고는 노동자에게 살인 행위인데, 우리 사회에서 이 살인 행위가 여론화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003년 한진중공업은 650명을 정리해고했다. 20년을 함께한 동지 둘을 잃게 한 게 바로 정리해고였다. 그러고도 (회사는) 8년 만에 다시 432명을 정리해고했다. 지난해 1월6일 동지를 잃은 그 크레인에 올라서 309일을 보냈다. (2003년 10월,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은 마지막 60명의 조합원을 보고 129일 만에 목을 맸다. 그때 한진중공업의 조합원 수는 2500명이었다. 2500명이 끝까지 싸움을 함께했다면 김주익과 곽재규는 살아 있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약속은 목숨이다.
6월27일 공권력이 투입되고 크레인에 전기가 끊겼다. 크레인에서 가장 힘든 일은 세상과의 단절, 고립감이었다.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 내가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트위터였다. 내가 살아 내려오길 기도하는 사람들, 그 간절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십니까.” 그때부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멸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버티는 게 싸우는 거였다.
157일차, 6월11일 희망버스 4대가 찾아왔다. 2차에 1만2천 명, 3차에 1만5천 명…. 이건 기적이었다. 크레인 위에 사람이 있다니까, 흑자 기업이 정리해고를 한다니까,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 명이 넘는다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찍소리도 못하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냥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오래도록 꿈꿔온 연대가 실현됐다. 2011년, 우리가 만든 역사는 만만한 게 아니다. 촛불집회는 패배한 싸움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 촛불이 이어져 희망버스가 됐고, 그 희망버스가 또 무언가를 잉태할 것이다(한계례 21)
일시: 4월 26일 오후 7시30분
장소: 민주노총 금속노조 4층 대회의실(정동 경향신문 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