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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원문보기 글쓴이: 일어나 함께 가자
② 모든 민족마다 세우신 하나님의 뜻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1-2)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신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갈3:8)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합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렘6:22)
ㆍ모든 민족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한 뜻이 있다.
ㆍ성경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6)라고 말씀한다.
a. 이스라엘
ⅰ.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한 이스라엘 민족사가 아니다. 거기에는 그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ⅱ.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지금의 이라크, 곧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그와 그의 자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그들을 복 주심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고, 나아가서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의 복을 주기를 원하셨다. 이 사실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신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갈3:8절)라고 말씀한다.
ⅲ. 그러므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복 주심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복 주시려는 집단적 의미가 있다. 성경은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국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사19:24-25)고 말씀한다.
ⅳ.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복 받는 것을 다른 민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서 그들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초림)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계약과 복의 준비요, 표상이라 할 수 있다.
b. 우리나라
ⅰ. 한국 민족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ⅱ.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은 유사성이 있다. 과거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교적 목적으로 선택하셨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 고난은 훈련이며, 믿음의 전사(戰士)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민족도 선교적 목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왕성하게 받아들인 민족이며, 역사적으로도 많은 고난을 겪어온 민족이다.
ⅲ.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는 험난했다. ‘밟아도 아리랑’이란 노래가 있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질경이어라. 짓누르고 짓이길수록 살아나는 뗏장이어라” 하는 이 노래는 청산리 전투 때 우리나라 독립군들이 불렀다던 군가였으며, 일제 때 일본 홋카이도 철로공사에 징용되었던 한국인이 혹사를 감내하면서 불렀다던 노래이다. ‘질경이’는 수레가 밟고 다니는 길 복판에 자생하여 바퀴에 짓눌려도 잘도 살아난다 하여 차전자(車前子)라 불린 들풀이며, 한편 ‘뗏장’은 옮겨심기 위해 흙에 엉긴 뿌리 채 떼어낸 잔디로 밟아도 짓이겨도 살아나는 민족의 끈질김과 저력의 상징으로 거론되는 야생초이다. 한국의 토착 야생초인 질경이와 잔디는 바로 가뭄과 홍수와 전란 속을 각박하게 살아낸 한국의 민족성과 무관치 않다.
ⅳ. 지금도 우리 민족의 현실은 험난하다. 비록 국력은 OECD에 가입하고 동북아시아의 균형자 역할(자칭)을 운운할 만큼 신장되었지만, 여전히 남북분단과 전쟁위협, 주변 강대국들의 존재와 그들의 영향력, 그리고 내부의 경제ㆍ정치ㆍ종교ㆍ사회ㆍ문화의 갈등과 불안정은 우리에게 큰 시련이 되고 있다.
ⅴ. 한국교회는 이 같은 민족의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의 모든 시대적 여건을 한국교회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선교 130년과 광복 70년을 훌쩍 지나고 있다.
ⅵ. 첫 번째 60년(1885-1945년)은 구한 말 척박한 땅에 복음의 뿌리를 내리고 일제 강점기 속에서 고난과 함께 교회가 성장했던 시기였다면, 두 번째 60년(1945-2005년)은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성장과 분열을 함께 겪어온 세월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세 번째 60년을 시작하고 있다.
ⅶ. 우리에게는 자신의 교회사와 더불어 현대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할 임무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영적 각성을 통해 더욱 교회다워지고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십자가를 져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의 지평을 넓혀 북한을 비롯해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의 복음의 빛을 비추며 온 세계를 섬기는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ⅷ.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기탄잘리(신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시집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1929년 일본에 들렀을 때 한 일간지에서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그는 방문 대신 그 신문에 한국의 존재 가치와 사명을 역설한 시(詩)를 기고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주요한 옮김)
③ 각 개인을 향해서 세우신 하나님의 뜻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요15:16)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욥23:13-14)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거하라…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12:10, 창21:1-2, 46:2-3)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1-23)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렘1:5-1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킴이러라…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21:18-22)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빌더라…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12:1-2,7)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1-3)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군중으로 들어가니라 아람 왕이 그 병거 장관들에게 이미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의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왕이 병거에서 스스로 부지하며 저녁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다가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대하18:28-34)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2:8)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7-10)
ⅰ.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인생에 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ⅱ. ‘개인 영혼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에 속한다. 성경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고 말씀한다.
ⅲ이 밖에 개인의 ‘국적, 고향, 성, 가족관계, 외모ㆍ체격 등의 신체적 조건, 신분, 성격, 재능, 직업, 개별적 사명, 수한(壽限), 일생의 중요한 사건들’ 등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에 속하며,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선택과 능력 밖의 일들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10:23)
* 하나님의 작정
* 운명론
a. 하나님의 작정
(a) 성경의 위인들
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애굽 이주 문제를 놓고 각각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애굽 이주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으시며 자율에 맡기셨지만, 이삭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반대하시며 애굽행을 막으셨고, 야곱에게는 적극적으로 애굽으로 내려갈 것을 권하시며 애굽으로 이주시키셨다.
ⅱ.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지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다.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과 무조건적인 은혜, 그리고 구원은 인간의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근거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ⅲ. 욥은 자신의 원인 모를 고난에 대해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고 고백했다.
ⅳ.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아람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일반 병사로 변장하였으나 한 사람이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었으며, 동행한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음으로 적들의 표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ⅴ. 예레미야는 자신이 복중에 잉태되기 전부터 구별되어 열방의 선지자로 세워졌음을 알았다. 그는 자기 민족의 심판과 멸망을 예고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함으로 기꺼이 고난의 일생을 받아들였다.
ⅵ.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ⅶ.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장렬하게 순교할 것을 들었다. 그는 주님께 요한의 미래를 물어봤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다.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도록 정해진 일에 대해 어떤 일이 일어나건 각각 주를 따르는 것이다.
ⅷ. 베드로와 야고보는 둘 다 투옥되었으나 야고보는 처형을 당했으며, 베드로는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구출 받았다.
ⅸ. 바울은 자신의 이방 선교의 고생스러운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육체의 고질병까지도 기꺼이 감수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그에게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b)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미국인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1885.4.5일 인천 제물포항에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두 사람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척 대조적이다.
ⓐ 아펜젤러
아펜젤러는 1902년 6월 목포에서 모이는 한국 성서번역위원회에 참석차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안개로 인해 배끼리 충돌하는 사고를 만나게 된다. 배가 침몰하자 아펜젤러는 한국인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대를 그 여학생에게 던져 주고 자신은 군산 앞 바다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그가 승선했던 배와 함께 사장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순교의 피는 그로부터 복음을 받았던 많은 한국 교회 교인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으며 오늘날 한국 교회를 이처럼 성장시키는 밑거름으로 작용하였다.
ⓑ 언더우드
언더우드가(家)는 대를 이어 가며 피붙이보다 더한 사랑을 한국인들에게 쏟아 부었다. 그들은 한국 땅과 한국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사랑과 헌신을 바쳤다. 한국은 그들에게 ‘제2’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고향이었다. 이들 일가의 한국에 대한 소명의식은 4대째 계속되었다. 1세가 연세대와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YMCA를 조직해 캄캄했던 그 시대 민중들을 위해 신문명의 불을 밝힌 이래 후대들은 이 땅에서 나거나 자라며 사랑을 기울여 왔다. 3대가 모두 이 땅에 뼈를 묻었다.
(c) 그 밖의 모든 사람들
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각각 다른 계획과 목표를 정해 두시고 인도하신다. 모든 사람들은 각각 하나님 아버지께 특별한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며,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되 각각 다른 역할로 부르시며, 또한 이를 감당하기 위한 재능과 열심을 주시고 환경을 조성하신다.
ⅱ. 만약 우리가 자신을 누구와 비교하여 판단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주권에 대한 월권이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사64:8),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사45:9),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9:21)고 말씀한다.
ⅲ.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자신이 처한 여건과 현실, 그리고 타고난 조건과 재능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선택과 능력 밖의 사항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곧, 우리는 욥처럼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욥23:14)라고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께서 보시기에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적절하고 최선의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우리는 각각 자기 위치에서 ‘내 모습 이대로’를 가지고 ‘나를 향한’ ‘나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ⅳ. 웨이크필드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33세의 여인인 웨이크필드가 2003년 ‘루 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왜 하필 나지?” 막 이해해줄 사람을 만났고, 아이를 낳고 싶은 희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헛되이 사는 대신, 남은 날들을 기쁘게 보낼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아이 낳는 일에 도전한다. 그녀는 자기 운명을 원망하는 대신 아직 남아 있는 것들에 감사했다. “이렇게 살아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 혼자 옷을 입을 수 있어서, 내 손으로 청바지 지퍼를 올릴 수 있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서, 전등을 켤 수 있어서 정말로 감사하다. 심지어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조차 감사하다. 예전엔 이 모든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2004.9월에 3.7kg의 건강한 아들 샘을 낳는다. 하지만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고, 손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컴퓨터에 의지해서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생의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내가 말하고 걷는 법을 잊어버리는 사이 샘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법과 미소 짓는 법, 다리를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고 썼다. 그리고 책이 나온지 두 달 뒤인 2005.12월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기록은 그렇고 그런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삶이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가’를 깨우쳐 준다.
b. 운명론
ⅰ.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과 유사한 사상으로 운명론이 있다. 운명론은 불리한 상황을 한탄만 하고 피하려하거나 자포자기식으로 맞게 함으로 인생을 망하게 만든다.
ⅱ. 곧, 운명론은 소극적인 대응을 하게 함으로 위기를 새로운 회생의 기회로 만들지 못한다. 운명론은 나름대로 정교한 이론을 갖추고 있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부패한 인간 이성의 산물일 뿐이다.
(a) 명리학(命理學)
ⅰ. “태어난 사주팔자(四柱八字)에 의해 각 사람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들이 그것을 모르고 공연히 스스로 바쁘게 뛰어 다닌다”고 말한다.
ⅱ. 사주팔자란 무엇인가? 사주(四柱)는 네 기둥이라는 뜻인데, 태어나는 연ㆍ월ㆍ일ㆍ시를 가리킨다. 한 기둥마다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에 의한 60갑자의 두 글자가 붙어 있으므로 네 기둥을 합하면 여덟 글자(八字)가 된다.
ⅲ. 예컨대 2004년 11월 16일 오전 8시(진시)에 태어났다고 가정하고 이를 만세력(萬歲曆: 앞으로 100년 동안의 일월성신ㆍ절기를 추산하여 만든 책력)에서 뽑아보면 갑신년, 을해월, 기해일, 무진시가 된다. 이 여덟 글자는 다시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환산된다. 오행이 조화로우면 좋은 팔자이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좋지 못한 팔자로 해석한다.
ⅳ. 산명가(算命家 : 命數 곧 운명과 재수의 길흉을 점치는 사람)들은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자르는 그 시점에 우주에 펴져 있는 별자리의 기운들이 태아에게 순간적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사주팔자’라는 것은 이때 과연 어떤 별자리 기운이 많이 들어가고 적게 들어갔는가를 살펴보는 일종의 ‘조견표(早見表)’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산모는 좋은 사주팔자를 지닌 아이가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60갑자가 표시된 만세력(萬歲曆)을 보고 제왕절개 수술 날짜와 시간을 정하기도 한다. 현대의 고(故) 정주영 회장의 사주팔자는 을묘년ㆍ정해월ㆍ경신일ㆍ갑신시로 이것을 풀어보면 큰 재물을 모으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한다(조선/조용헌).
(b) 오이디푸스 왕
ⅰ.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론이 만들어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 태어났다. 왕은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는 신탁을 받고, 굵은 못으로 아기의 발꿈치를 뚫어 산에 버리게 했다. 명령을 받은 양치기는 그 아기를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넘겼고, 그 양치기는 아기를 코린토스 왕에게 데려갔다. 아들이 없던 왕은 아기를 양자로 삼고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ⅱ. 오이디푸스가 어른이 되어, 한 연회에서 우연히 자기가 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진실을 알기 위해 델포이의 신탁을 물으러 갔다. 신관은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며 코린토스에서 추방하였다. 그는 코린토스 왕과 왕비를 친부모로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죽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길을 떠났다. 어느 십자로에서 그는 마차를 타고 있는 낯선 사나이(친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를 만났다. 마부가 길을 비키라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마부는 수레바퀴로 오이디푸스의 발을 치면서 그대로 돌진했다. 더구나 마차를 탄 사나이는 옆으로 지나면서 오이디푸스를 채찍으로 때렸다. 화가 난 오이디푸스는 도망친 하인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일행을 모두 죽여 버렸다. 오이디푸스는 여행을 계속하여 테베까지 오게 되었다.
ⅲ. 그때 테베에서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에 대해 신탁을 묻기 위해 델포이로 가던 왕이 살해되어 모든 국민이 슬픔에 빠져있었다. 테베의 여왕은 스핑크스를 없애는 사람에게는 여왕을 아내로 맞고 테베의 왕위를 바치겠다고 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찾아 갔다. 스핑크스는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뚱이,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괴물로,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인간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다. 그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약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인간' 이었고,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히자 스핑크스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ⅳ. 오이디푸스는 여왕과 결혼하고 테베의 왕이 되었고, 왕비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그가 테베의 왕이 된 후 계속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자 델포이 신탁에 묻게 되었는데, 결국 오이디푸스의 출생의 비밀과 그가 저지른 일들이 밝혀졌다. 여왕은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운명을 저주하며 자기의 눈을 후벼 빼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오이디푸스가 방랑생활을 할 때 끝까지 시중을 들어준 여인은 딸 안티고네였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은 사람들이 운명론을 과신하고 두려워하고 피하려고만 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두려워한 대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c) 불교의 윤회
ⅰ. 불교에서는 각 사람의 운명은 전생업보(前生業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업(카르마)’이란 인간의 일체의 사고와 언어와 행위 및 그 결과를 총합한 것을 말한다. 이 ‘업’이 사람의 죽음 이후의 운명이 결정한다.
ⅱ. 사람은 업을 멸하기 전에는 ‘삼계’(三界 : 천계ㆍ지계ㆍ인계)와 ‘육도’(六道 :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인간ㆍ천상) 안에서 윤회전생(輪回轉生)하며, 윤회하는 그 자체는 고(苦)라고 말한다.
베트남의 한 민요는 “제 신세는 떨어지는 빗방울 같아서/ 어떤 것은 우물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꽃밭에 떨어지죠.”라고 노래한다. 인생이 운명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는 것을 슬퍼하는 비애가 느껴지는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