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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닭에 대한 예의/ 김필영
은하수 추천 0 조회 114 17.08.23 21: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닭에 대한 예의/ 김필영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

닭대가리라고 놀리는 것을 보았다, 허나

닭도 필요한 만큼 이상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암탉은 알을 낳고 품어 병아리를 기르며

수탉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을 깨운다

닭에게서 온갖 것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논쟁 한다

닭이 먼저면 어떻고, 알이 먼저면 어떠랴

사람에겐 닭도 알도 모두 소중하다

사람은 닭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알 껍질을 깨고 태어난 병아리에게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동정심을 배운다

솔개가 하늘을 배회할 때

날개깃아래 병아리를 모으는 암탉에게서

희생적인 참사랑을 깨닫는다

만약 닭이 없다면

다양한 치킨요리는 식탁에서 즐길 수 없다

밀가루만으로는 맛좋은 빵이 진열될 수 없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백신은

계란흰자가 없이 어디서 추출할 것인가

닭털은 방한복이 되어 겨울을 따뜻하게 하고

뼈와 계분은 산야에 뿌려져

산성화된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준다

닭은 사람에게 온 영혼을 바칠 뿐

계산적이거나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식탁에 오른 계란 프라이 한 알

가난해도 닭 덕분에 고마운 아침이다.

 

- 시집 (시문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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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이 없는 식탁과 닭고기가 없는 외식문화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계란은 어떤 형태로든 하루에 한 번 이상 접하면서 거의 식량화되었다. 지금 가축으로 사육하는 닭들은 기원전 2천년 인더스문명에서 기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사람과 닭의 관계는 장구한 세월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닭은 12간지 중의 10번째 동물이자 유일한 조류로 인간과의 깊은 관계를 대변해 주는데 한자로는 ‘酉’로 표기한다. 올해가 바로 ‘丁酉年’ 닭의 해이다. 그만큼 닭은 인간에게 도축되는 모든 가축들 중에서 가장 많이 희생되어온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만도 한해 10억 마리 이상이 도축되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그러고서도 지금껏 ‘사람에게 온 영혼을 바칠 뿐 계산적이거나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이 시도 실은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다. 닭이 사람에게는 참 고마운 동물이지만 닭의 입장에서도 과연 그럴까. 이른바 ‘현대 축산’이란 미명아래 인간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좁은 새장에서 살을 찌우고 계란만 잘 생산하면 그만인 공장 방식의 사육 상황을 닭들도 반겼을까. 그들도 ‘지혜’가 없지 않았겠으나 오직 인간을 위한 복무에 그동안 참고 또 견뎌왔을 것이다. 그러니 양계장 출신의 닭고기와 달걀엔 스트레스 호르몬이 함유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오늘날의 축산은 전적으로 인간중심이다. 그들의 생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육방식이다. 밤낮 없는 빛 세례에 잠을 조절당한 닭, 수면착각증후군에 점령된 불면증이 종족번식본능을 속성으로 앞당긴다. 그러니 병들 수밖에 없고 이를 막아보려고 또 약을 사용한다. 닭은 야생 상태에서는 땅에다 몸을 문질러 설령 진드기가 붙더라도 다 떼어낼 수 있다. 밀집 사육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살충제에 의존하게 된다. 살충제를 뿌릴 때도 닭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이번에 밝혀졌듯이 그냥 뿌리는 양계장이 적지 않다. 수만 마리의 닭을 일시에 이동시킬 만한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고온다습한 날씨가 잦아지면서 진드기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살충제에 의존하는 사이 기존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진드기까지 출현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그런 계란을 우리는 먹는다. 자연양계는 아무리 추워도 인위적으로 온도를 조절하지 않는다. 야생조류가 춥다고 해서 따뜻한 방에 들어가지 않듯이 스스로 온도에 적응토록 한다. 또 기본으로 바닥에 흙이 깔려야 한다.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있으니 부리로 쪼고 발톱으로 바닥을 긁는 닭의 본능은 억제되고 땅의 기운도 차단된다.


 오늘날 양계는 문제투성이다.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크기나 모양 맛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다보니 부작용이 속출한다. 소나 돼지의 경우도 그렇지만 양계는 그 정도가 극심하다. 햇볕 한 올 들어오지 않은 닭장에 대류가 일어나지 않아 자연적인 공기의 흐름이 차단되고 기껏 후앙으로 강제 환기하는 정도라 매번 조류독감에 시달린다. 특히 온도에 적응을 못할 때 일어나는 것이 AI조류독감인데, 겨울철만 되면 전 국민이 이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고 양계업자들 역시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오리도 매일반이다. 요즘의 오리 사육은 완전히 물 없이 자란다.


 오리발에 물갈퀴가 있는 까닭은 수륙 양용, 즉 물에서도 살아가라는 하느님의 섭리가 깃들어있다. 하지만 평생 물에 발 한번 담그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현대축산은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닭의 부리를 자르고 돼지도 이빨과 꼬리를 잘라버린다. 이러한 행태는 가히 동물학대 수준이다. 동물도 동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최대한 존중하고 보살핀다는 명분으로 ‘동물보호법’이란 것도 제정되어 있지만 주로 반려견 등에 적용되는 이 법은 닭과 오리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은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


 당장 같은 사람끼리도 지난 세월 피부색깔이 다르다며 차별하거나 신분의 격차를 이유로 밀쳐내기도 했다. 오로지 내 이익이 먼저고 내 행복이 우선이란 생각에 다른 생명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더 많은 돈, 더 큰 이익을 위한 욕망 앞에 약한 것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조류독감, 광우병, 구제역 등의 피해도 실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은 달걀이라는 한 식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물의 건강과 인간의 건강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다. 동물도 우리와 같은 본능이 있고 불쾌한 감정도 느낀다. 앞으로도 ‘닭 덕분에 고마운 아침’을 맞이하려면 이참에 악순환을 끊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닭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정도로는 택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보다 훨씬 어마무시한 ‘동물들의 역습’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권순진

Take me home Country Roads -  John Den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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