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조용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포도송이처럼 영글어가고 있는 나의 꿈을
뚝 뚝 떼어내며 웅크린 내 잠에
확 불빛을 쏘아대었다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어둡고 따스한 잠 속에 끊임없이 울려오는
무거운 물방울 소리들
신성한 외로움에 빠진 나의
둥근 영혼을 누가 불안하게 하는가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머리가 먼저
으깨어진다 세상에 대한 불길한 나의 사랑이
누군가를 붉게 물들인다
바라본다
나는 바라본다
내부의 나를
하지만 늘 나의 내부에
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나는 의식의 바깥으로
즐거운 외출을 한다
나의 내부는 그것을 허락하고 있다
내부의 나는 내부 밖의 나를
바라볼 수 없다
나의 내부는 바라보는 행위를
할 수 없어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
그 외로움으로 나의 내부는
내부 밖의 나를 마구 흔들어댄다
내부 밖의 나는 나의 내부에 의해
강하게 지배된다
하지만 내부 밖의 나는
나의 내부를 바라볼 줄 아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 힘으로 가끔 시를 쓴다
지금 나의 내부는 황폐하다
나의 내부가 내부 밖의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 조용미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문학동네(개정판) / 2021)
조용미
1990년 『한길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당신의 아름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