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서 인성(충효예)교육 요청이 왔습니다.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딱딱한 내용보다 제 경험담위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강연내용을 요약합니다.
1. 충(忠)
나는 1991년 38세 나이로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에 군 위탁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한가지 에피소드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한 교수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신입생들을 보면 현역(고3 졸업생)보다는 재수생이 많다는데 재수생 손 한번 들어봐”
“ 다음 3수생” 그러더니 내 쪽을 보면서 “좀 된것 같은데...,” 하길래 “예, 18수입니다” 하였더니 학생들이 뒤돌아보며 와 하고 깜짝놀라는 것이었습니다. 농담으로 학부형이 와서 앉아 있었는 줄 알았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등학교를 ‘73년에 하였으니 18년 만에 대학에서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위탁학과가 러시아, 루마니아, 헝가리, 베트남, 아프리카, 이란어과가 있었는데 그래도 중동국가가 좋을 것 같아 이란어과를 택하였습니다.
당시에 대학에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중심에는 전국대학생협의회라는 약칭 전대협 (全大協) 이 있었습니다. 이 협의회는 1987년 8월에 결성된 전국적 학생조직으로 반정부 및 반미(反美)·통일운동에 앞장선 단체였습니다.
1991년 4월 26일 시위 도중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1학년 강경대군이 숨지는 사태를 계기로 정부에 격렬한 시위를 하던 때였는데 하루는 학교정문부근에서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무슨 소리가 나길래 가보니 어느 나이드신 분이 흰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나중 알고 보니 당시 총리로 지명된 정원식씨가 마지막 외대 강의에 왔다가 큰 봉변을 당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에는 우리과 학생 한 명이 화염병을 던지다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당번을 정해 조를 짜서 병원을 지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군은 국가의 보루’라며 군인이 국가에 저항하여 시위를 벌인 학생에게 병문안을 갈 수없다고 단호하게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며 월남을 생각해보라고 하였습니다.
“ 끊임없는 정치 싸움과 분열된 국론 거듭되는 혼란과 분열속에 시달려온 월남이 1975년에 공산화됨으로써 세계지도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지도 벌써 16년이 지났다.
월맹군에 의한 무력통합으로 월남은 역사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조국을 잃은 월남인 정치난민인 보트 피플(Boat People)수 만해도 2백만에 이르렀고, 이들은 현재 30여 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너희들은 어떠한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고 일갈하였습니다.
나라조차 없는 상황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며 학생들과 토론을 벌여 나름대로 그들에게 국가관을 심어주는데 일조하였습니다.
특히 북한은 변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똑바로 직시해야합니다.
《판문점 「스트립쇼》
납북 어부들의 송환은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았다. 67~68년 한반도 정세가 가장 위태롭던 시기에 북한은 한국 어선에 대해 비우호적이거나 도발적이어 어선을 나포하고 많은 어부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반면 유엔군사령부나 한국정부는 한국으로 넘어온 북한 어선들에 대해서는 전원 송환해주는 인도적 방침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정부의 인도적 대우를 고맙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경직된 사회에서 살아왔다.
78년 6월13일은 군사정전위 쌍방 수석대표들의 합의에 따라 북한 어부 8명을 북한에 돌려보내는 날이었다.
버스 한 대가 「자유의 집」 앞마당에 멈춰 섰다. 문을 열자 고급 신사복을 입고 선물을 한 보따리씩을 안은 북한 어부들이 한 사람씩 내렸다. 이들은 쌍방 군정위 비서장들의 인수인계절차가 끝나자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그리고 바로 북한 어부들은 군사분계선 남쪽을 향해 선물 보따리를 풀어서 선물들을 하나씩 집어던졌다. 시계, 구두, 양복도 벗어 던졌다. 급기야 런닝 셔츠까지 벗어 던진 어부들은 그 인민군 소좌한테 팬티도 벗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같더니 팬티는 그냥 입은 채 맨발로 판문각 계단을 올라갔다.
( '78.6.13) ( '09.12.21)
어느 언론에서 왜 팬티는 벗어던지지 않고 입고 갔느냐고 농담어린 기사를 실었다.
‘09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사상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남북한 비교되는 재미있는 사진 한 장 소개합니다.
북한은 김일성 동상이 16,000여 개라고 하는데 그와 비슷한 한국의 뭔가 있다고 하며 질문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이순신, 세종대왕, 단군 동상 등의 예를 들었습니다.
위의 것들 (교회, 동상 등)의 숫자가 얼마되는지 모르지만
당시 한국이 노래방 수가 16,000 여개가 된다고 합니다.
저들은 김일성 동상을 전국 곳곳에 세워 주체사상 주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는 한가로이 노래방에 들어앉아 소리높여 흥청망청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동부 전선 최전방 안보견학을 갔습니다.
OP뒤로 북한의 고지가 보이고 불철주야 한치의 경계태세를 하고있어 자랑스럽게 돌아오는데 멀리 버스행렬이 보입니다.
무슨 차량일까요?
바로 금강산 관광객을 태우기 위한 버스들입니다. 이러한 관광비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위해 전용하는 등의 혈안이 되고 있음에 우리는 속편하게 관광이나 즐기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일까요?
2. 효(孝)
얼마 전 타개한 황수관 박사의 강연 내용입니다.
늙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마귀예요” 조금 후 또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마귀라고 했잖아요”
조금 후 또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마귀라고 몇 번이야기 해야 알아들어요?” 하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얘야, 네가 어렸을 적에 저 새 이름이 뭐냐 고 수십 번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너에게 새 이름을 일러줬단다”
아버지는 사랑으로 자식을 키웠는데 아들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고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는 내용입니다.
하늘과 같은 부모님 은혜를 다시한번 생각해봅시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고려장(高麗葬) 이야기입니다.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고 하는 장례 풍습으로 효(孝)를 강조하는 일부 설화에서 전해지는데 늙은 부모를 산속의 구덩이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냈다는 풍습으로 오늘날에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를 버리고 돌아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얘야, 돌아가는 길을 모르면 중간 중간 내가 나뭇가지를 꺾어놓았으니 그것을 보고 집을 찾아가거라”고 하는 감동어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져야하는 풍습이지만 그래도 그런 아들을 마다하지 않고 사랑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또 70살이 된 늙은 아버지를 풍습대로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함께 갔던 손자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지고 온다며 그 지게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지성으로 봉양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자식들에게 학대받고 버림받는 노인들, 현대판 고려장이 점점 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서로 부모님을 안 모시려 나몰라라 하거나 노인요양원에 보내고 한번 얼굴도 안 내미는 그런 자식들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주자십회(朱子十悔)중 처음 나오는 구절입니다.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불효하면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는 내용입니다. 살아계실 때 말 한마디 행동하나라도 잘해야 합니다.
3. 예(禮)
예의 의미는 예(禮)자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보일 시(示)변에 풍년 풍(豊)자로서 풍성하게 보인다는 뜻으로 몸에 옷을 입어서 풍성하게 보이고 남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란 나의 행동과 언어를 통하여 남에게 보이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의 생활에 있어서 남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며 마음에 들도록 처신하는 것입니다
예는 우리가 공동체로 구성된 삶을 살아가면서 항시 일상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모든 예의와 절차를 말합니다.
고운미소 상냥한 말 한마디 겸손한 태도는 우리가 사회생활 속에서 갖는 기본적 도리입니다.
여기서 행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는 공손해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앨버트 매러비안은 사람들 사이에 언어적 메세지와 비언어적인 메세지를 두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언어적 메세지가 상대에게 영향을 많이 미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의 내용(단어)가 전체 커뮤니케이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고 7%에 불과하며 그 외의 목소리, 표정, 태도가 93% 정도를 차지, 즉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레스토랑에서 고객의 주문을 받는 종업원을 예를 들어 보면 주문 시 종업원과 고객이 소통하기 위해서, 종업원의 메뉴에 대한 설명은 단지 7%의 영향밖에 끼치지 않고 의외로 종업원의 인상, 목소리 톤. 태도로 고객에게 어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로서 대화를 합니다.
한가지 우리 몸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머리부터 보면 비듬, 눈꼽, 콧물, 침(가래), 대소변, 때 등의 노폐물은 모두 지저분합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하기에 따라서 노페물처럼 지저분하기도 하지만
또 따라서는 아름다운 자연처럼 깨끗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서양 에티켓의 기본 개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2) 상대방에게 호감을 준다.
3) 상대방을 존중한다.
아무쪼록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타인에게 예절을 잘 지키며
살아가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오랫만에 방문합니다. 회원님들 새해 복많이 받고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되씹으며 하루를 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