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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산주의운동사] 발표자료 제2장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권력투쟁 1920~1924
12 김은진 추천 0 조회 294 14.10.04 17:41 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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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0.08 01:06

    첫댓글 이동휘는 귀화하지 않은 조선인 출신으로 볼셰비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코민테른의 선택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 귀화 한인들의 집단이었던 이르크츠크파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이동휘의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주도권 싸움으로 말미암아 자유시 사변이 발생했다. 공산주의 운동은 한 사람, 한 집단의 노력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공산주의 운동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동휘가 볼셰비즘을 좀 더 이해하고, 다자와의 관계 속에서 운동을 해나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 14.10.15 20:02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분파주의는 한국 토착 공산주의의 힘을 약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분파주의가 특히 한국공산주의에 처음부터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한국 토착공산주의가 해외에서부터 시작된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라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러시아 시민권을 딴 한국인과 시민권을 따지 않는 한국인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파주의는 여기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나라 안에서 한국 공산주의가 시작되었다면 아마 목표부터가 공동 목표를 위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14.10.10 18:39

    * 안윤석 : 문장을 좀 더 다듬으세요.

  • 14.10.15 20:02

    수정하였습니다.

  • 14.10.16 21:51

    제1차 극동 피압박 민족 회의를 통해서 코민테른은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열성적인 지지를 얻게 되는 쾌거를 거두었고, 더불어 이르크츠크파도 국내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상해파를 밀어내고 주도권을 잡았다. 이르크츠크파가 코민테른이 선택한 한국의 유일한 공산주의당으로 그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뤄왔던 한국 공산주의의 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될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르크츠크파가 여러 분파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또 어떻게 공산주의의 과도기적 문제를 극복하며 활동을 벌일지를 주목해야 한다.

  • 14.10.10 18:41

    * 양수현 : 퇴고하세요.

  • 14.10.16 21:51

    수정하였습니다.

  • 14.10.12 21:22

    처음에는 상해파가 코민테른에 참가하는 공식 대표로 지지 받지만 러시아 공산당 극동사무국에 슈미아츠키가 이르크츠크파를 지휘하면서 이르크츠크파는 상해파를 장애물로 여겨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 싸움에서 이동휘는 슈미아츠키를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패배합니다. 후에 코민테른은 지령을 만듦으로써 상해파를 견제하고 이르크츠크파에게 주도권을 줍니다.

  • 14.10.17 07:06

    저는 이동휘의 의용군과 문창범의 이르츠크파의 이념 차이가 많은 사람의 희생을 낳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이 사건으로 공산주의자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받았지만 코민테른의 대처는 중립적이지 못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민테른은 전투에 승리한 이르츠크파를 선택하였고, 이것을 보면서 공산주의운동에서 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14.10.10 18:42

    * 조선아 : 문장을 좀 더 다듬으세요.

  • 14.10.17 03:10

    * 조선아 : 1) 저는 이동휘의 의용군과 문창범의 이르츠크파의 이념 차이가 많은 사람의 희생을 낳은 역사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 * 문장이 매끄러워지도록 다듬으세요. 2) 이 사건으로 공산주의자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받았지만 코민테른의 대처는 중립적이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코민테른은 전투에 승리한 이르츠크파를 선택하였습니다. ->> * 비문입니다. 3) 이것을 보면서 한 운동에 있어서 지지와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 문장이 완전해지도록 보완하세요.

  • 14.10.17 07:08

    수정하였습니다.

  • 14.10.08 13:32

    2장에서는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본격적인 권력투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자유시 참변을 통해 상해파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극동피압박민족회의를 기점으로 이르크츠파에게 권력을 완전히 내주게 됩니다. 이 둘은 궁극적으로 계급타파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지만, 이론적, 이데올로기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집단의 이익을 위한 권력 다툼에만 치우쳤습니다. 그 결과 공산주의 이념을 확산시키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역사의 한 축에서 볼 때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한 파벌로써 일컬어질 뿐이었습니다.

  • 14.10.08 13:32

    이것은 서로 간의 조화와 협력 없이는 결국에는 둘 다 자멸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을 가르쳐주며, 성공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를 공동체라는 존재로 인식하고 함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 14.10.10 18:43

    * 황경하 : 퇴고하세요.

  • 14.10.08 14:42

    이번 장에서는 상해파와 이르츠크파의 권력투쟁의 과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 한국 공산주의가 비롯된 기원에서 시작되어 이번 장에서는 한국공산주의의 성격을 나타냈습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은 주변국의 원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제 치아아래 가두어 있었고 강대국들 간에도 보이지 않은 권력싸움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긴박한 상황 안에서 우리민족에게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고, 속속히 나오는 많은 지도자들 아래 많은 집단이 형성됩니다.

  • 14.10.08 14:42

    최종 목적이나 목표는 같았을지 모르지만 추진해가는 과정이나 혁명의 방법에 있어서는 속속히 차이가 드러났고 결국 하나로 통속되지 못한 채 승자와 패자로 나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민테른은 맹목적으로 적대적인 두 파벌을 결합시키려는 도발적인 행동만을 보였고, 양 파가 공산주의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논리를 다루기에는 많은 부족이 있었습니다. 이르크츠크파와 상해파의 합작의 실패는 파벌 투쟁의 화근이 되었다는 결과로 말미암아 한국공산주의의 특징과 성격을 잘 말해줍니다.

  • 14.10.10 18:46

    * 김유경 : 퇴고하세요.

  • 14.10.11 14:22

    2장은 이르크츠크파와 상해파의 심화된 대립과 상해파의 쇠락과정을 보여줍니다. 두 파는 코민테른의 지시로 합작을 시도하지만, 견해 차이와 주도권싸움으로 실패합니다. 이러한 분파주의는 한인이 러시아로의 귀화 여부로 나뉘고, 한국 공산주의 운동이 국외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 기인합니다. 한국 공산주의의 시작이 공산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점이 아쉽습니다. 만약에 한국 공산주의가 온전한 상태의 국내에서 시작되었다면, 볼셰비즘과 레닌주의에 대한 깊은 고찰과 공산주의운동이 협력과 상호보완 속에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 14.10.10 18:47

    * 고대훈 : 퇴고하세요.

  • 14.10.11 14:23

    수정했습니다.

  • 14.10.14 18:32

    저는 2장에서 일본의 한국 공산주의자들이 나온 것에 주목했습니다. 일본 경찰들이 한국에 공산당이 있고 대중들을 움직이려고 하는 사실을 알고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을 강력하게 탄압했습니다. 이를 보면 일본이 한국 공산주의 운동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즉, 일본은 공산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허용하였지만, 운동을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 14.10.14 18:33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선진 사상을 흡수한 나라였기 때문에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관련한 서적들이 많았고,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일본으로 이끌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의 연구만 허용되었던 일본에서 학생들이 구성원 대다수를 이루는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공산주의를 펼칠 수 있었기에 일본의 공산주의가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 14.10.10 18:48

    * 김나연 : 내용을 좀 더 보완하고 다듬으세요.

  • 14.10.14 18:33

    수정했습니다.

  • 14.10.13 20:24

    분파주의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의 초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상해파와 이르크츠파는 목적이 다른 분파였습니다.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이해보다는 서로의 권력싸움에 의해서 두 파의 싸움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상해파는 몰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두 분파는 언젠가는 부딪칠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유시 사변이 일어났는데 혁명이라는 성격이 강한 공산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의 집중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러한 사건은 필수적이었지만 공산주의 운동사 또한 권력 투쟁의 양상을 띠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14.10.10 18:52

    * 신정섭 : 내용을 좀 더 보완하고 다듬으세요.

  • 14.10.12 16:12

    수정했습니다.

  • 14.10.17 03:01

    * 신정섭 : 1) 분파주의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의 초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 * 문장이 매끄러워지도록 다듬으세요. 2) 상해파와 이르크츠파는 목적이 다른 분파였습니다. ->> * 내용이 분명해지도록 문장을 좀 더 보완하세요.

  • 14.10.16 09:06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을 해야 하고,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바탕에 있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가 이끄는 집단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상해파의 몰락은 꽤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해파는 자유시 사변, 극동 피압박 민족 회의 등 연이은 패배를 맛보며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표자인 이동휘의 ‘비 귀화 한인’이라는 신분의 비극성, 상해파가 이르크츠크파에 비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던 점, 한국 공산주의 운동이 협력이 아닌 권력 투쟁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이 이유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14.10.19 18:35

    두 분파의 권력 투쟁은 우리에게 목표를 이루기 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 것인지,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14.10.10 18:55

    * 노시헌 : 내용을 좀 더 보완하고 다듬으세요.

  • 14.10.16 09:06

    수정하였습니다.

  • 14.10.17 02:53

    * 노시헌 : 1) 이르크츠크파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을 위해 장애물을 걷어낼 수 있었던 기간이었으며, 상해파의 입장에서는 목표를 이루기 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 것인지,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 문장이 매끄러워지도록 다듬으세요.

  • 14.10.19 18:35

    다시 수정하였습니다.

  • 14.10.09 18:52

    이 장에서는 상해파와 이르츠크파의 대립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공산주의의 이념을 올바로 이해하고 더 나은 공산주의를 위한 싸움이었다기 보다는 한국공산주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단순한 알력싸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두 분파가 처음부터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공산주의 운동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코민테른의 지지를 얻게 된 이르츠크파가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코민테른의 지지를 얻게 된 이르츠크파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한국공산주의를 이끌어 나갈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14.10.10 18:56

    * 장현호 : 내용을 좀 더 보완하고 다듬으세요.

  • 14.10.18 19:48

    자유시 참변과 제1차 극동피압박민족회으로 인해서 이동휘를 필두로 한 상패하는 몰락하게 되고 슈미아츠키가 지지하는 이르크츠카가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 두 세력이 서로 싸우지 않고 힘을 합쳤더라면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방향을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서로의 세력을 비관적인 태도로만 보지 않고 서로 견제하며 발전을 해 나갔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 14.10.10 18:56

    * 박소연 : 퇴고하세요.

  • 14.10.16 13:48

    수정하였습니다.

  • 14.10.17 02:50

    * 박소연 : 1)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서 이동휘를 필두로 한 상해파는 몰락하게 되고 제1차 극동피압박민족회을 통해 한국민들 사이의 주도권은 슈미아츠키가 지지하는 이르크츠파가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 * 문장이 어색하니 다듬으세요. 2) 두 세력이 서로 싸우지 않고 힘을 합쳐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방향을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 * 비문인 이유를 [우리말 바루기]에 밝히세요. 3) 하지만 한편으로 서로의 세력이 몰락하기만을 바라지 않고 서로 견제하며 발전을 해 나갔으면 서로 도움이 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 * 문장이 매끄러워지도록 다듬으세요.

  • 14.10.18 19:48

    수정하였습니다.

  • 14.12.21 15:20

    * 과제 수행 : 김은진 김상규 안윤석 양수현 조선아 장세진 김유경 고대훈 김나연 신정섭 노시헌 장현호 박소연 이상 총13명

  • 14.10.12 02:22

    2장은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권력 투쟁을 다뤘습니다.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는 서로 합작을 통해 공산주의 운동을 실행할 수 있었으나 두 파는 합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동휘와 슈미아츠키가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서 공산주의의 이론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에 대한 논쟁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과 부르주아 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착취한다는 개념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인이 마르크스주의 및 레닌주의 전략과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14.10.28 03:41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권력투쟁이 본격화되고, 이동휘를 지지한 대한의용군은 일본수비대와 싸우기 위해 결집되었다. 이들의 유일의 목적은 항일투쟁을 통해 한국독립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반면 고려혁명군정의회는 이르크츠크파의 역량을 결집한 집단이었다. 이들의 권력투쟁은 자유시 사변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사건은 이동휘에 있어서 더없이 참담한 패배였다.

  • 14.10.28 03:41

    또한 이동휘는 재일 한국인 조직에 접근하고, 일본의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과 접촉에 힘쓰는 등 일본에서 공산주의운동을 시작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재일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의 초기 역사의 대부분은 이동휘의 영향과는 독립적이었고, 더 급진적이고 과격한 학생 그룹들이나 일본의 무정부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조직들에는 흑도회, 흑로회, 북성회가 있다. 특히 급진적인 조직들 중 하나인 흑도회는 후에 일본에서 한국인 공산주의자 그룹으로 발전한다. 일본과 해외에서의 한국 공산주의가 일본과 해외에서의 활동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 14.11.22 17:56

    1장에서 등장했던 이동휘의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권력투쟁이 2장에서 본격화되었습니다. 비 귀화인으로, 공산주의의 정통성이 약한 이동휘에게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이 주어지는 것을 이르크츠크파에선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둘의 싸움에서 승자는 이르크츠크파였습니다. 이 권력투쟁에서 우리는 공산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당성입니다. 공인기구로써 코민테른에 인정받고 지원을 받는 파만이 공산주의 운동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주도권입니다. 주도권의 싸움으로 자유시 사변이라는 큰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 14.11.22 17:56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공산주의 운동에서 주도권은 포기할 수 없는 힘입니다. 모든 것을 바꾸려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빼앗긴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정당성과 주도권, 이번 발표를 통해 한국 공산주의 운동가들에게 필요한 요소를 알 수 있었습니다.

  • 14.12.21 15:19

    * 과제 미수행 : 박종철 신효진 이상 총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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