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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5(수) 한동훈, 독대 요청에…대통령실 "담판 형식은 곤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의 9월 24일 만찬을 앞두고 한동훈 대표의 독대 요청이 당·정 갈등의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동훈 대표는 9월 24일 만찬에서 "의·정 갈등을 해소하려면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의 독대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동훈 대표 측 인사는 “밥만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의료 공백을 해결할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생각은 다르다. 9월 24일 만찬은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원전 세일즈 성과를 공유하고, 의료개혁에 대한 당·정의 결속을 다지는 화합의 자리라는 것이다. 독대도 부정적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9월 23일 통화에서 “대통령의 당 지도부 격려가 9월 24일 만찬의 핵심이다. 여기에 충실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만찬이 담판의 형식이 돼선 곤란하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한동훈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에 공개된 점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독대는 언제든 가능하지만, 비공개가 원칙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과 당 대표의 독대는 긴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하는 것인데, 언론에 알려지면 그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8월 30일로 조율됐던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도 그에 앞서 한동훈 대표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2026년 의대 정원 증원 유예’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당·정간 이견이 표출되며 9월 24일로 연기된 측면이 있다.
대통령실에선 9월 24일 만찬 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3인이 잠시 차담회를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동훈 대표 측 요청을 일정 부분 수용하되 형식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의료 개혁에 대한 논의가 오갈 수도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보고 일정이 밀려있어 만찬 전 시간을 낼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만남에 제3자가 배석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이 두 사람 간의 불편한 관계를 드러내는 방증이란 해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30일 한동훈 대표 요청으로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한동훈 대표와 1시간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당시도 가교 역할을 했던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독대하면 언론에 어떤 말이 어떻게 흘러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윤-한 냉랭” “창피할 정도”…대통령이 대화 주도
“빈손만찬이다.”(친한계 1) “밖에 나가 얘기하기 창피해 죽겠다.”(친한계 2) “무거운 주제는 아예 안 나왔다”(친한계 3) 9월 24일 저녁 용산 대통령실 만찬에 참석한 친한동훈계 의원들은 행사가 끝난 뒤 ‘예상했던 대로 의미를 두기 어려운 자리’였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한 친한계 의원은 ‘의정갈등 같은 현안 이야기는 없었느냐’는 물음에 “없었다. 빈손만찬이다”라고 답했다. 또다른 친한계 의원은 “되게 썰렁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대화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따로 대화랄 게 없고, (한동훈 대표가) 고기 좋아하니 그거 했다고 한 정도”라고 전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된 데는 만찬이 이뤄진 장소가 집중이 어려운 옥외 공간인 데다, 참석자가 30명 가까이 되고 식사 도중 음식 서빙이 지속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친한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사이의 분위기와 관련해 “(과거 했던 것처럼) 어깨를 치거나 이런 게 전혀 없었다. 냉랭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실 쪽에서 빨리 마치려고 계산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대화를 주도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한 친한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주로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짧게 추임새를 넣는 정도였다. 의원들에게 소속 상임위가 어딘지, 국회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 별 의미 없는 대화만 오갔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관련해 “모두 발언도 특별히 한 게 없다. 그냥 다같이 모시고 싶었는데 처음 왔다, 날씨가 좋다, 그러면서 밥 먹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체코 원전 수주 문제와 관련해 국내 원전 생태계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 아일랜드 원전 사고 등을 언급하며 현안에 대한 박학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간혹 윤석열 대통령과 지도부 의원들 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가기는 했으나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참석자들에게도 인사말 등 개별 발언을 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한동훈 대표에게도 ‘한 말씀 하시죠’ 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없었다. (테이블 대화는) 대통령이 주도했지만 뚝뚝 끊겼다. 이야기하다가 침묵하고, 그런 분위기에서 대통령이 계속 얘기하시는데, 한두 명이 맞장구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동훈 대표는 만찬 내내 표정이 무거웠다고 한다. 한동훈 대표의 한 측근은 “대표는 거의 얘기를 안 했다. 한동훈 대표가 마지막에 홍철호 정무수석한테 ‘오늘 얘기를 전혀 할 분위기가 아니지 않았나. 그러니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어달라. 드릴 말씀이 있다’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만찬에 으레 나오는 술 종류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한동훈 대표가 폭탄주 돌리고 하지 말자고 미리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폭염 날렸지만… 남부 할퀸 200년에 한 번 가을폭우
유례없는 가을 폭염이 끝나자마자 이어진 가을 폭우로 1명이 사망하고 세계유산 일부가 무너지는 등 전국에 피해가 잇따랐다. 이번 폭우는 200년에 한 번 내릴 수 있는 확률의 '역대급 물폭탄'이었다. 한반도 상공에 머물던 비구름이 지나간 뒤 기온이 떨어져 본격적인 가을 날씨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9월 22일 전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장흥군 장흥읍 평화저수지에서 A씨(89)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전날 오후 재활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아내를 마중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직접 간호하며 성심껏 돌본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내린 강한 비로 부산과 충북·경북 등 7개 시도에서 1500여 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19~21일 전남에서는 여수산단 401.5㎜를 비롯해 장흥 339.3㎜, 강진 313.9㎜, 순천 331.5㎜ 등 강수량을 기록했다. 유례없는 가을 폭우로 농작물 피해도 잇따랐다. 전남에서는 수확을 앞둔 논 1030㏊에서 피해를 봤다. 20일과 21일 경남 창원시와 김해시에는 이틀 새 각각 529㎜, 428㎜의 물폭탄이 쏟아져 역대 9월 하루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상청은 이 수치가 2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빈도라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대성동고분군 일부가 무너지는 피해도 입었다. 폭우로 고분 일부가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붕괴는 폭우가 내렸던 지난 9월 21일 정오에 발생했다. 대성동고분군 서쪽 사면으로 가로 12m, 세로 8m가 한꺼번에 잘려 나가듯 붕괴했다. 붕괴 당시 많은 비가 내렸지만 행인 등이 없어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해시는 사고 후 현장 일원을 통제하고 고분을 대형 덮개로 가렸다. 구릉 형태인 이 고분은 평소에도 시민과 관광객 등이 자유롭게 산책하거나 둘러볼 수 있도록 개방된 곳이다. 김해시는 고분 일부 붕괴 사고 후 국가유산청에 상황을 보고했으며 비가 완전히 그치고 지반이 마르고 나면 사고 원인을 규명한 뒤 복구할 계획이다.
이틀간 400㎜가 넘는 비가 내린 부산은 기록적인 폭우에도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1500건에 육박하는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 9월 21일 내린 집중호우로 16개 구·군과 소방당국에 총 1456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구·군으로 접수된 피해 552건 중 도로 침수가 222건으로 가장 많았고 맨홀 관련 83건, 토사 유출 36건, 도로 파손 55건, 기타 156건으로 집계됐다. 부산 사하구에서는 지난 9월 21일 땅꺼짐(싱크홀)으로 차량 2대가 빠지기도 했다.
이번 폭우는 14호 태풍 풀라산이 소멸한 뒤 만들어진 온대저기압이 비구름을 몰고 와 장마전선과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가을 폭염이 길어져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찬 상태였는데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한반도 상공에는 강한 장마전선이 형성돼 있었다. 비가 그친 이번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맑고 선선한 가을 날씨에 접어들 전망이다.
다만 동해안은 9월 23일 새벽까지, 제주도는 오전까지 5~40㎜의 비가 더 내리고 부산과 울산은 태풍급 강풍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11~21도, 낮 최고 기온은 22~29도로 예보됐다. 일교차가 10도 이상 크게 벌어지면서 기상청은 건강관리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수요일(9월 25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29도 이상을 웃돌 전망이다.
서울대생 아지트 '녹두호프' 몰락… "맥주 한 병 팔았다"
녹두호프 점주 김례숙씨가 지난 9월 19일 유일한 영업의 흔적이었던 맥주병을 치우고 있다. 2만원의 하루 매상이 처량했지만, 말벗 하나 없이 공(空)치는 날에 비하면 차라리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이땅의 자영업은 쇠락하고 있었다. 녹두호프 점주 김례숙씨가 지난 9월 19일 유일한 영업의 흔적이었던 맥주병을 치우고 있다. 2만원의 하루 매상이 처량했지만, 말벗 하나 없이 공(空)치는 날에 비하면 차라리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이땅의 자영업은 쇠락하고 있었다.
유리문은 재질보다 무거웠다. 지난 9월 19일 그걸 열고 들어온 유일한 손님은 오랜 단골이었다. 김례숙(69·여)씨는 그에게 맥주 한 병과 마른안주 한 접시를 대접했다. 그 음식의 단가 2만원이 그날 올린 매상의 전부였다. 더럽힌 게 없으니 씻고 닦을 것도 많지 않았다. 오후 11시쯤 맥주병을 치운 김씨가 무겁게 일어섰다. 출입문은 제 주인을 내보내는 것으로 변변치 않았던 노동을 끝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일명 녹두거리에 터 잡은 지 27년. 한때 서울대생의 아지트였던 녹두호프는 옛 영화를 잃은 지 오래다. 손님이라고는 하루에 한두 무리가 고작이고, 공(空)치는 날도 드물지 않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땅의 숱한 자영업자들과 함께 그는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김씨는 농사꾼이었다. 195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대부분의 또래 여성들처럼 배움이 길지 못했다. 고교를 작파한 뒤 섬(진도)으로 시집가 농부의 아내가 됐다. 논매고 밭 일구며 아들딸을 낳아 기르던 그는 가난과 농촌이 지긋지긋했다. “‘에라! 남의 집 일을 할지언정 서울 가서 돈이나 벌자. 돈을 벌어야쓰겄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밀려든 지방민의 행렬에 그도 동참했다. 동류에 비해 늦은 상경이었다. 마흔을 넘긴 1996년 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의 손을 붙잡고, 이고 진 채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남편과 고교생이던 딸은 고향에 남겨둔 채였다. 시댁 친척 몇몇이 살고 있던 관악구 삼성동에 터를 잡은 그는 이듬해 녹두호프와 인연을 맺었다. 녹두거리도, 녹두호프도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그는 직원으로 채용됐다. 이른바 ‘운동권 호프’로 입지를 굳힌 가게라 선배가 후배를 데려오고 그 후배가 또다시 후배를 데려오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 호프집 고된 노동이 남긴 건 툭하면 부러지는 늙은 몸뚱이
심야영업 제한 규제의 수혜도 톡톡히 입었다. 녹두거리는 자정 이후에도 은밀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사장이 가게 외부에서 내부의 직원과 무전기로 은밀하게 신호를 주고받은 뒤 셔터를 열고 금지된 손님들을 들여보냈다. 월급 100만원을 받으면서 5년간 일한 김씨는 그 거리와 가게의 전성기를 똑똑히 지켜봤다. 2002년 주인이 장사를 접으려 하자 2000만원의 권리금을 내고 잽싸게 가게를 인수한 이유다. 그가 인수한 뒤에도 한동안 녹두호프는 위상을 유지했고, 손님은 계속 밀려왔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심야영업 제한이 풀리고 서울대 인근 이곳저곳이 개발되면서 녹두거리 독점 체제는 종막을 고했다. 고객 공급원이던 운동권 문화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신세대는 선배들만큼 술을 많이 먹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는 치명상을 가했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2년 동안 대학 새내기들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애초 인연의 고리가 없는 그들이 그 이후에도 녹두호프를 찾을 이유는 없었다.
◆“올해로 4년째 새내기 꼴을 못 봤어. 3월이면 우르르 몰려오던 학생들이 너무 그리워.”
설상가상으로 사법고시 완전 폐지와 함께 고시생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원룸촌으로 변한 그 지역은 밤에 잠만 자러 들어오는 소수의 외지인이 점거했다. 고객은 빠르게 줄었고, 공치는 날은 점점 늘었다. 그러는 동안 나이를 먹은 김씨는 세상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중력은 그에게만 작용하는 듯했다. 세상은 땅에 붙박여 있던 그를 음속으로 추월했고, 김씨에게는 그 꼬리라도 부여잡을 능력과 여력이 없었다. 배달앱이니, 키오스크니 하는 건 남의 이야기였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첨단 문물에 익숙한 사람을 쓸 수도 없었다. 그는 빠르게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현재 그의 매출액은 월 300만~4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주류 매입비, 식재료비, 세금 및 공과금, 대출금 이자에 허리 치료를 위해 한 달에 두 번 맞는 주사 및 약값 등을 제하면 그의 손에 남는 건 잘해야 수십만원이다. 임대료(124만원)는 낼 수도 없다. 2000만원의 보증금은 이미 임대료 대신 깎여서 사라진 상태다. 국세청에서 1년에 한 번 주는 165만원의 근로장려금, 자녀들이 가끔 주는 용돈으로 겨우 임대료 펑크를 막고 있다.
27년간의 고된 노동이 그에게 남긴 건 거의 없다. 전세로 거주 중인 단독주택, 그리고 가끔 찾아와 추억과 용돈을 보태주는 옛 단골들이 전부다. 고용보험은 고사하고 제 몫으로 부어둔 국민연금도 없다. 뒤늦게 상경해 25년간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면서 살림을 지탱하던 남편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지난해 자리를 잃었다. 이제 가계의 고정수입은 월 45만원인 남편의 국민연금과 두 사람 몫의 기초연금 25만원, 운수 좋은 달에만 챙길 수 있는 수십만원의 가게 운영 수익이 전부다.
그가 폐업도 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폐업은 공짜가 아니다. “건물주에게 폐업 얘기를 꺼냈더니 가게를 원상 복구하고 나가라더군. 주변에 물어보니 최소한 800만원은 들거래. 그 돈이 어디 있어?” 그가 평가한 자신의 생활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30점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힘드니까….” 힘겹게 가게 문을 잠근 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김씨의 뒷모습이 처연했다. 노동과 노쇠로 지난해에만 두 번이나 골절된 그 연약하고 늙은 등에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 얹혀 있었다. 유난히 어두웠던 골목길, 그 짐 받아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원주 일산봉 9월말 풍경.....!!!!!!!!!!
10월 초 오픈 예정인 도영의 흑풍대패삼겹살......
남원로 527번길.......
서원대로.......
삼토축제를 준비 중인 둘레숲길.........
마가목........
원주종합체육관........
당겨 본 백운산(1087m)........
성원 상떼빌.........
감나무
아마란스
원동을 지나.........
일산동...... 우보 삼성
일산동 감나무.........
10:03 일산공원에........
일산공원에서 본 치악산맥........
어제 다녀온 치악산 비로봉(1288m)........
9월말의 일산봉 둘레길 데크........
무늬잎란.......
사근초....... 서양등골나물
건너다 보이는 일산동........
일산봉 오름길 풍경........
10:15 일산봉 250m 정상에........
건너다 본 배부른산(419m).......
이틀 전에 다녀온 봉화산(336m).......
오갈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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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북원초등학교........
10:35 단계공원에........
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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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뒹구는 은행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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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샾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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