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돌계단 올라서니 태산의 정상인 1545m 옥황정이다. 옥황묘 문을 들어서자마자 작은 사각의 울타리에 행운을 염원하는 큼직큼직한 자물통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 안쪽으로 중국인들이 운수 대통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져 넣는다. 한 귀퉁이 나무 섶에는 지전이 꽂혔다. 마침 바람이 불며 바닥에 1위안이 나뒹군다. 어렵사리 왔다고 내려진 선물인가 보다. 앞으로 나아가니 옥황대제 불상이 모셔졌다. 감히 똑바로 올려다보기에 너무 눈이 부시다. 이곳에서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천제를 지냈을 터다. 그로부터 2,200여 년이 유수처럼 흘러갔다. 오늘에야 태산 정상에 올라섰다. 한 계단 한 계단 수천 개의 계단을 밟아야 비로소 정상에 오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다름없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 태산이 있다. 아니 이제는 내 발밑에 태산이 있는 것이다. 오늘에야 태산에 올랐지만 어디 그냥 태산이라더냐. 우리나라 그 어떤 산보다도 더 친숙하게 여겨졌다. 굳이 국내의 유명한 산을 제치고 그토록 태산을 부르짖은 것은 왜일까. 태산에 압도되어야만 했던 대국에 대한 소국이란 시대적인 아픔을 어딘가 지니고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훌훌 털어내고 이것저것 살펴 가면서 들여다본다. 끝내는 하늘 아래뿐 아니라 발밑에 태산이 되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양사언 -
‘양사언’은 조선조 선조 때 문인이요 서예가다. 그가 실제로 태산을 답사까지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태산에 관한 시조를 남겼는데 불후의 명작으로 우리의 입줄에 오래도록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일상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나 복잡해 걱정이 크면, 스스럼없이 ‘걱정이 태산이다.’라고 한다. 또 ‘티끌 모아 태산이다.’면서,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조금씩 쌓이면 나중에 큰 덩어리가 된다고 한다. ‘태산 명동에 서일필’이란 말도 있다. 태산이 쩡쩡 울리도록 야단법석을 떨었는데도 결과는 생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을 뿐이다. 야단스러운 소문에 비해 결과는 별것 아닌 것을 비유한 말이다.